“中, 김정남 도우며 ‘김정일 이후’ 준비”








최근 평양 귀국설이 나돌고 있는 김정일의 장남 정남(36·사진)은 차남 정철(26)이 후계자로 부상하기 전까지 술 파티 등을 통해 자신의 측근을 관리하고 장성택과 권력 경쟁을 할 만큼 권세가 만만치 않았다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비서가 28일 공개했다.

황 전 비서는 이날 “김정남은 90년대 초반부터 중국 공산당의 후원을 받아 중국을 드나들며 외화벌이 사업을 했다”면서 “당시 정남은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하던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과 경쟁관계로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정남의 평양 귀국 후 조직지도부에서 활동한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중국의 권유와 북한 내 남아있는 친김정남 세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황 전 비서는 “중국 공산당은 ‘김정일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90년대부터 후계자로 부상하던 정남에게 많은 공을 들이며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중국과 김정남을 연결한 것은 주중 북한대사였고, 상부에는 ‘중국과 김정남이 가까워지는 것이 외화벌이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보고해 뒤탈을 없앴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 시기에 김정남뿐 아니라 연변에 살고 있는 친척을 활용해 연형묵이나 오극렬과 같은 고위 간부들과의 접촉도 시도했지만, 이를 눈치 챈 김정일이 중국과의 관계를 차단하면서 중국의 대 북한 정치작업은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황 전 비서는 중국의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 “차남 정철이가 나이가 들면서(2002∼2003년경으로 추정) 고영희를 배경으로 하여 조직지도부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장성택과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면서 “당시 장성택과 사이가 나빴던 이제강 간부담당 부부장이 정철을 뒤에 업고 장성택을 몰아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장성택은 2003년경 혁명화 교육을 받고 근신했다는 설이 유력했으며 2006년 1월 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당에 복귀했다. 정철과 사이가 극도로 악화된 이 시기에 장성택은 정남과 가까워졌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동아시아의 한 국가 정보기관이 2005년 초부터 중국 베이징과 평양 간에 빈번히 이뤄진 정남과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국제전화를 도청하는 데 성공했으며,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며 김정일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기도 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공개된 적도 있다.

장성택의 실각과 정남의 잇따른 해외 사고(2001년 일본 밀입국 등)로 정철에게 기울어 가던 후계구도는 2004년 5월 고영희의 사망으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택의 복권, 김정일의 비자금과 외화벌이를 담당하면서 김정일의 신뢰 회복, 중국 공산당의 강력한 후원을 배경으로 정남이 본격적인 후계경쟁에 뛰어들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북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는 정남을 지지하는 세력이 상당수 건재해 있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정남의 지지자들이 ‘고영희가 죽었는데 무엇 때문에 장남을 제치고 차남이 후계자로 나서는가’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남의 재기를 너무 낙관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그가 북한 주민들에게 공개하기 어려운 후처 성혜림의 자식인데다 해외 언론에서 망신살을 많이 타 지도자로 결함이 크다는 것이다. 몇 년간 북한에 입국하지 못하고 해외를 떠돈 것이 이를 증명한다는 것.

이에 대해 황 전 비서는 “후계자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결국 김정일이 결심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면서 “김정일이 그와 정남의 출생 배경 등에 대해 함구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우상화 사업을 시작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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