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22일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제의한 ‘5자협의’에 지지 입장을 표명함에 따라 아직까지 공식적인 가부(可否)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은 중국이 향후 어떤 판단을 내릴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을 비롯한 미국과 러시아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이 지지 의사를 밝힌 5자협의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중국은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6자회담을 통한 북한 비핵화 협상에 주력하겠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5자협의 취지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직전 중국에 통보한 상태다. 중국은 열흘 가까이 침묵을 유지하다가 이날 우회적인 부정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보인다.
5자협의는 기존 6자회담 틀에서 북한을 제외한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5자가 함께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는 보상이 아닌 제재가 따른다’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5개국 간 상황 인식과 대처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자는 취지에서 우리 정부가 고안한 협의틀이다.
6자회담 의장국이자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의 대북 제재 의지가 분명하지 않자 미국은 중국 설득에 집중하고 있다. 1970년대 미-중 국교수립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대중특사설까지 나오고 있는 상태다.
중국은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과 지난 5월 2차 핵실험에 대해 강력히 비난한다는 입장은 밝히고 있지만,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강조하며 북한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는 제재는 가급적 자제하자는 입장을 취해왔다.
현재 북한은 대외적 도발을 극대화하면서 내부적으로 후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핵문제와 함께 후계 세습에 대한 입장 문제가 맞물려 복잡한 속내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신상진 광운대 중국학과 교수는 “북한 대외무역 90% 차지하는 중국 입장에서 5자협의는 유엔 안보리 1874호에 따라 중국이 대북압박에 적극 나서는 것을 논의하는 장이 될 것”이라며 “이런 판에 중국이 참가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신 교수는 이어 “최근 한미 중심의 대북 제재에 대해 중국은 북한 붕괴의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북한을 배제한 5자회담 논의는 중국에 대한 제재 동참 압박으로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식량, 원유, 상품 공급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5자협의에서 대북제재논의는 사실상 중국이 대북제재의 모든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결국 5자회담은 1:4구도 전개될 것을 아는 중국이 5자협의 입장에 유보적인 것은 이같은 중국의 판단이 깔려 있다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또한 “중국은 동아시아의 핵도미노를 우려 북한의 핵보유를 반대하고 있다는 입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미 일본이 핵무장 능력을 가진 상태”라며 “중국은 북핵 불용 입장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의 지속이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유력 주간지 남방주말(南方週末) 최신호가 “북한의 핵실험 후 중국은 ‘핵 대국’과 ‘핵 소국’에 포위됐다”며 미국, 러시아를 핵 대국으로 인도, 파키스탄과 함께 북한을 핵 소국으로 인정한 것도 중국이 북한의 핵을 용인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던 2006년 10월, 이에 필요한 장비와 시설을 파키스탄으로부터 군수송기를 통해 들여 올 때, 모두 중국 영공을 통과해 들여갔는데 이는 중국 당국의 묵인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로 처음부터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을 묵인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반대로, 대북제재결의 1874호에 찬성했던 중국이 제재에 미온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가운데 마냥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는 상태로 중국도 5자회담이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한 포괄적 논의를 목적으로 한다면 참여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