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북·미 요소’에 주목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대선에 대한 논평을 요청받자 짤막한 ’모범답변’을 내놓았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한국인 자신들의 일이다. 그러나 중국은 어떤 후보자가 당선이 되든 중·한 양국 사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선린·우호·협력 관계가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으로 믿는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4년 후.

제17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를 1년 가량 앞두고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등 대선을 향해 뛰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이 최근 중국을 방문해 당·정 요인들을 만나고 갔으나 중국은 공식적으로 한국의 대선, 또는 특정 인물에 대해 아무런 관심 표명이나 논평도 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한국의 대선 관련 동향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4년 전 선거 당일 류 대변인의 준비된 ’모범답변’ 처럼 한국의 대선은 한국인들의 일이고, 다른 나라의 정치적 사건에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1년 후 선거 당일이 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아직 대선 구도가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은데다 현재 대선을 둘러싼 중요한 이슈도 별로 없는 상황이어선지, 당국의 방침에 따른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중국 언론 역시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주목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정·군의 정책결정을 위한 자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여러 싱크탱크들은 다음 대선 결과가 한반도 및 동북아정세에 미칠 영향, 한·미 관계의 기조변화 가능성과 함께 특히 중국의 전략적 이익 문제에 중점을 두고 조사·분석·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중국은 우선 한국의 대선을 통한 정권 이동이 한반도 정세 및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한반도정세가 동북아정세는 물론 자국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사회발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제 자국의 대미 관계라는 문맥 속에서 남·북한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으나 북한이 동북아정세의 불안 요소로 작용하지 않도록 억제하기 위해서는 한·중 양국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대선에 거는 기대를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중국 주요 싱크탱크의 전문가들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이 북한에 경제적 실리를 안겨줌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북한이 ’당근’은 주는 대로 받고도 한국에서 그토록 반대하는 핵실험을 함으로써 한국 국민이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데 주목하고 있다.

북한은 첫 남북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업지구 및 금강산 관광 등 남북 화해·교류·협력 프로세스가 대대적으로 추진되면서 한국인들의 대북 태도와 관념에 중대한 변화가 생기고 적대감이 현저히 감소해 가는 마당에 한국 당국의 ’체면’을 무시하고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한국 정부는 실망하고, 언론은 그 원인을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찾고, 일반 국민은 분노해 정부를 질책하고, 보수파는 대북 경제지원이 북한에 핵무기 개발을 위한 자금과 시간을 제공했다고 몰아붙여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심각한 좌절상태에 빠졌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중국은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 관계에서 몇 차례의 곡절을 겪으면서도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 온 한반도 정세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으로 일단 불안의 조짐을 나타내고 있고, 이에 과격한 방법으로 대응할 경우 동북아 전체의 긴장 고조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정부가 대북정책에 대한 국내 여론 악화, 미국의 반대, 핵실험 실시 직후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거부 등에도 불구하고 무력적 수단에 의한 북핵문제 해결을 반대하면서 평화적·외교적 수단에 의한 해결을 강력하게 주장한 데 대해 중국이 높이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한·미 동맹관계의 변화 또는 재정립 움직임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이를 포함한 ’미국 요소’가 한국 대선에 미칠 영향에도 주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관심의 초점은 그러한 움직임과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의 안정이라는 문제에 모아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중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반도 및 동북아지역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남북이 화해·협력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특히 한반도 통일 후의 반미정서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미국은 바로 이 때문에 한반도 긴장 조성을 마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포용정책 추진과 남북 화해 프로세스를 방해하고 있으며, 북한 핵실험으로 자국의 의중이 찔리자 이를 빌미로 한국에 포용정책을 수정하도록 압박, 남북 사이를 떼어놓음으로써 한·미 동맹관계를 공고히 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주한미군 재배치 및 주둔비용 분담 문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 한·미 간의 주요 현안을 둘러싼 한국 자체의 국론분열과 양국 동맹관계 균열 조짐 등이 다음 대선에서 일정한 정도의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경제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은데다 주택정책 실패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대외적으로는 북한 핵실험으로 대북 포용정책이 부정되고 한·미 동맹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당 후보가 내년 대선의 승리자가 될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여당이 재집권을 하더라도 현재의 외교정책이 수정될 가능성이 크고, 한·미 동맹관계 보완에도 착수해 한층 더 타당한 방법으로 자주외교를 펴 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내년 8월24일로 수교 15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북한 요소’와 ’미국 요소’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지금까지와 같은 기조를 그대로 유지해 나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압도적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