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2일자 조선일보 사설 “허구로 드러난 ‘역대 最上 한·중 관계’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는 한중 양국 간의 핫라인이 불통일 정도로 북핵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중국을 놓고, 박근혜 정부의 친중외교는 완전히 실패한 만큼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을 하려면 작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이른바 ‘전승절 친중외교’를 시도하였을 당시에 비판했어야 했다. 만약 조선일보가 사후에 결과를 놓고 비판을 하려면 1월 8일자 조선일보 주필이 쓴 칼럼도 스스로 비판을 해야 했었다.
대통령은 작년 중국 전승(戰勝)기념일에 미국의 눈 흘김과 일본의 비난을 무릅쓰고 시진핑 주석·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천안문 사열대에 섰다. 한국은 그때 이래 지금껏 알게 모르게 그 값을 치러왔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한국을 대하는 미국 태도에서 그 앙금과 흔적을 다시 읽는다면 지나치게 과민(過敏)한 반응일까. 박근혜 시대의 간판 대중(對中) 외교가 중대 시험대에 섰다. 중국의 응답 여부에 성패(成敗)가 걸렸다.
이 컬럼을 쓸 당시 강석천 주필은 아직 박 대통령의 대중외교가 실패했다고 단정하지도 않았으며 칼럼의 부제목은 “북한에 석유·식량이란 당근 공급하는 중국이 채찍 들어야”로서 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북한을 강하게 제재해야한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바로 박근혜 정부가 친중외교를 통해 얻으려는 목표였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친중외교의 실패는 한국의 중국에 대한 ‘러브콜’ 보다는 중국의 한국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로 일어난 결과다. 한국정부의 친중외교를 비판적으로 본다면 지나치게 순진했다는 점이고, 긍정적으로 본다면 비록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였지만 이제 중국의 본심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아직 전승절 친중외교의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외교란 스토리텔링과 비슷하여 작용과 반작용, 대응과 역대응의 연속이다. 지금부터 한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친중외교는 성공으로 파악될 수도 혹은 결정적인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거꾸로 말해 그것은 중국의 한반도 외교와 정책의 총체적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한다.
따라서 국가위기의 순간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친중외교의 책임을 현 정부에 묻고 있는 한국의 일부 정치집단과 한국 언론은 결코 책임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중국의 속셈을 파악한 지금, 4차 핵실험 이후 한국의 외교적 대응의 책임소재는, 외교가 국가의 총체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치집단, 한국의 언론 및 국민에 달려 있다.
우선 국가원수의 전화를 받지 않고 있는 중국의 외교적 결례, 아니 상상을 절(絶)한 몰상식, 과거 보다 훨씬 빨리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고 나온 의도에 대해서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과거 12월이나 1월에 북한이 대륙간탄도탄과 핵실험을 할 경우, 2월 전후 유엔제재가 시작되고, 3월 전후 북한 정권은 대미대남 핵전쟁 위협을 하였다. 그리고 5,6월 정도 되어야 주한중국대사가 기자회견 등에서 ‘한반도 문제는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유엔제재를 사실상 무력화시킨 후, 북한과 중국의 무역이 급증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이번에 4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도발을 더 이상 ‘일상적인 일(business as usual)’로 간주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한미일과 함께 북한의 동맹국 중국마저 강한 제재의 필요성에 동의할 경우 김정은 정권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중국이 갖게 되었고, 따라서 아직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하는 중국은 초반부터 강한 제재에 대한 총체적 거부의사의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박근혜-시진핑 전화회담이 중국의 의도에 대한 북한의 의구심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였을 것이다.
다른 한편 중국의 거친 외교적 행태는 중국이 앞으로 있을 대북제재에 대한 국제조율 과정에서 몸값을 올리는 행보로 파악할 수도 있다. 아예 한국 대통령의 전화조차 받지 않는 상태에 비해 앞으로 취할 중국의 태도 모두를 ‘중국의 양보’와 ‘입장 완화’로 팔겠다는 것이다. 바로 북한이 지금까지 북핵회담에서 수없이 사용하여 재미를 본 전술, 즉 비행동(non-action)에서 나와 협상에 응하는 것 자체에 대가를 요구하는 방법이다.
한국은 중국의 이런 의도와 전술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중국을 더 이상 북핵문제 해결의 주역으로 인정하지 말아야 하며, 이점은 중국 스스로 주장하고 있는 바다. 즉 한미일은 중국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북한 정권을 압박할 수 있는 강한 군사적 대응수단 및 북한 정권을 흔들 수 있는 비군사적 제재를 빠른 시간 내에 실행에 옮겨야 한다. 특히 한국은 독자적으로 북한정권의 취약점을 흔들 수 있는 전방위 대북정보유입을 시작하면서 그것을 기정사실화해야 한다. 중국이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의 태도를 취하든, 아니면 강한 대북제재를 반대하던 한국은 여기에 반응할 필요도 비판할 필요도 없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한국이 북핵문제에서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현 수령전체주의를 지탱하기 위해 북한사회에서 정보폐쇄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 지 아는 사람이라면 바로 대규모 정보유입이 북한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동안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지나치게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도 잘못이었다. 석유와 식량공급 중단은 단기적으로만 가능한 물리적 제재수단이며, 중국이 북한 정권의 붕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렵다. 이미 핵실험을 해버린 북한에게 단기적 제재수단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기껏해야 다음 핵실험까지의 시간을 길게 잡아달라는 애원 이상일 수가 없다. 따라서 설사 중국이 석유와 식량공급을 줄이더라도 그것은 외교적 제스처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한국은 개성공단을 통해 1년에 1억불의 현찰 및 개성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고 동시에 대규모 자발적 인질을 허용하면서, 중국에게는 북한에 제공하는 원유와 식량 공급을 중단 내지는 줄여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는 논어의 구절과는 완전히 배치된다. 바꿔 말해 중국은 한국이나 국제사회의 요구를 거부할 논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한국은 중장기적으로 북한 정권이 존망의 위기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그러나 합법적이고 평화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 경제제재 및 대북정보유입을 가속화해야 한다. 이때 대북정보유입을 ‘심리전’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북한사회 정보화’라고 불러 그 평화적 성격과 북한주민의 올바른 정보에 접할 권리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만일 북한이 이런 상황에서 도발을 하거나 도발의 기미를 보일 경우 한국과 미국은 북핵문제가 아니라 북한문제를 정리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즉 김정은 정권에게 ① 체제붕괴 ② 대남도발(전쟁위협) ③ 북핵포기 간에 선택지를 분명하게 주어야 한다. 동시에 한국과 한국의 동맹국이 선호하는 선택지의 우선권도 바로 이런 순서임을 암시해야 한다. 바꿔 말해 시대착오적인 북한 정권과 춤을 추기 보다는 북한정권의 붕괴는 물론 북한의 도발이나 전쟁위협에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즉 ‘북한이 방아쇠를 당기고 한국이 만든다’는 것이 북한 급변사태의 공식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시진핑이 먼저 한국의 대통령에게 전화를 청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이 북한문제에서 스스로 주역이 아님을 자복하였지만 동시에 배척당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전승절 친중외교는 이미 한국의 자산이 되었다. 한국은 중국의 이해를 배려할 만큼 이미 하였고, 여기에 응답하지 않은 중국에 대해서는 더 이상 중국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가?
따라서 지금처럼 6자회담 한미일 수석대표가 모여 의견을 조율하고, 중국의 입장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결코 옳은 길이 아니다. 중국은 6자회담 개최를 강하게 주장할 것이 명백하지만, 6자회담은 늪이다. 실제로 6자회담이 개최되면 북한은 여러 선택지를 갖게 된다. 오랫동안 시간을 끌면서 그 어떤 합의를 해주고, 합의를 지키지 않고, 6자회담을 떠나고, 다시 핵실험을 할 수 있다. 6자회담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과 미국은 투자한 노력이 아까워서 손절매하지 못하며, 다른 뾰족한 방법도 없으니 회담에 매달리다가 북한에게 당해왔던 것이 지금까지의 과정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6자회담 초대수석대표를 하고 국정원 1차장을 역임하였던 외교관 출신 이수혁씨는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6자회담 재개가 현실적 대안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수혁씨는 북핵폐기를 위해 중국은 결코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과 미국이 쓸 수 있는 경제제재의 효과 역시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 두가지 판단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수혁씨는 북핵폐기의 수단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보유라는 현실에 눈을 감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 보다는 6자회담이라도 재개하여 북한을 설득하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매우 논리적인 판단으로 보이는 이수혁씨의 6자회담 재개론은 그러나 단견이다. 왜냐하면 북한이 6자회담에서 핵폐기 내지는 동결에 진정성을 갖고 동의할 가능성은 0%이며, 차라리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을 위해서 6자회담을 이용할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이에 안보절벽이 현실화될 때까지 한국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망상에 가까운 희망을 갖고 소진해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아무 때라도 판을 깨고 나올 수 있는 6자회담 재개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과 미국에게는 오로지 정신적 자위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즉 이수혁씨의 6자회담 재개론은 6자회담에 시간을 탕진하여 북핵문제 해결을 완전히 포기하고 북한에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하자는 주장과 사실상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수혁씨의 6자회담 재개론은 명철하게 분석해볼 가치가 있다. 즉 한국과 미국이 아직 소진하지 않은 북한 제재와 체제압박의 수단이 무엇인지 검토하고, 필요하면 북한의 핵보유보다 위험성이 적은, 그러나 위험성이 없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수혁씨의 6자회담 재개론은 이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