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단둥서 만난 北화장품…“흥미 끌지만 지갑은 못 열어”

북한 간부와 돈주(신흥부유층) 여성들에게 쇼핑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시내 백화점에는 ‘평양-단둥’ 사이를 운행하는 기차 ‘K28’을 타고 ‘원정 쇼핑’을 즐기는 평양의 명품족들이 종종 발견된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북한산 화장품을 판매하는 상점도 확대되는 추세다. 상점에선 한국산, 중국산과 함께 진열된 북한산 화장품이 유혹하듯 고객들을 맞는다. 그 중에 단연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신의주화장품공장, 평양화장품공장에서 각각 생산된 ‘봄향기’와 꽃분홍색 ‘입술연지’였다.

이와 관련, 북한 김정은은 집권 이후 화장품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직접 공장 시찰에 나서 최첨단 설비와 기술력 구축을 지시하는 등 품질개선을 독려해왔다. 특히 2015년 2월 평양화장품공장을 방문해선 “외국 상표의 마스카라는 심지어 물에 닿아도 그대론데 우리 제품은 하품만 해도 번져서 너구리 눈이 된다”고 지적, 제품의 질(質) 향상을 촉구하기도 했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시장화’는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적 풍요로움’이 새로운 계층 분류 기준이 되면서, 이른바 문화적 계급으로 사회도 재분류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북한에서 생산된 화장품은 북한 내 사회변화 척도로 이해되면서 ‘북한산’이라는 점만으로도 고객들의 흥미를 끌고 있었다.

북한 화장품, 고객 마음 사로잡는 방법은 세계적 브랜드 모방?



▲ 중국 단둥의 한 화장품 가게에서 판매되는 북한산 향수(지난해 12월 말). 북한산 향수 ‘옥류(右)’의 화장품 용기 디자인은 프랑스 명품 화장품 랑방(左)의 외관과 매우 흡사하다./사진=데일리NK

북한은 화장품 판매 전략으로 보통의 후발주자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사용하는 ‘미투(me-too)’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제품의 ‘질’을 담보할 수 없는 북한 입장에서 초고가의 명품 화장품이나 인기 상품의 ‘모방’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다소 손쉬운 방법을 통해 고객을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프랑스 ‘랑방(LANVIN)’ 향수와 비슷한 외관을 가지고 있는 북한산 향수 ‘옥류’의 화장품 용기 디자인은 북한 당국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김정은이 랑콤(LANCÔME), 샤넬(CHANEL),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 시세이도(SHISEIDO) 등 해외 화장품 브랜드를 줄줄 읊고 있고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질적 생산을 강조한 것도 ‘모방’ 전략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내 인기상품 ‘봄향기’도 등장…질과 포장 분야 현대화 꾀해



▲ 단둥에서는 북한 신의주화장품공장에서 생산된 ‘봄향기(左)’와 평양화장품공장에서 생산된 ‘입술연지(右)’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사진=데일리NK

단둥 화장품 가게에서는 북한에서도 유명한 제품인 ‘봄향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도 주력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봄향기’는 다기능성 천연화장품으로, 북한 당국은 보습과 미백, 노화방지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또한 북한 특산품 ‘개성고려인삼’을 주성분으로 하면서 공장 인근 약수를 사용해 품질이 좋다고 한다. ‘봄향기’는 단둥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100위안(약 1만 7천 원)정도로 판매되고 있었다.

단둥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중개인에 따르면 단둥에는 통상 정상적인 루트(공장)로부터 공급받은 화장품만 판매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 내부에서는 이른바 ‘8·3제품’이라는 가품(假品)이 유통되기도 하지만 중국에 수출되는 제품은 주로 정품(正品)만 취급한다는 것.

이와 관련 중개인은 “단둥에서 판매되는 북한산 화장품은 수출 계획에 따른 정상적 유통경로로만 거래되기 때문에 8·3제품은 시장에 유입되기 어렵다”면서 “북한산 화장품은 관광 상품으로서 매력이 충분히 있고, 최근엔 제품의 질도 (과거에 비해)좋아지고 포장도 많이 현대화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8·3제품’이란 북한 내 생필품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추진된 생산 증대운동인 ‘8.3인민소비품창조운동’을 통해 생산된 제품을 의미하는데, 주로 각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내 가내 작업반에서 생산한다. ‘8·3제품’은 공장의 노동자가 원료를 따로 구해 만들거나 화장품 용기를 빼돌려 생산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같은 외형의 제품일지라도 ‘8·3제품’은 공장에서 생산된 정품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이 과정에서 북한 화장품 브랜드의 양대산맥인 평양화장품공장과 신의주화장품공장의 명암도 엇갈린다. ‘8·3제품’이 정품으로 둔갑, 판매되다보니 신의주화장품공장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평양화장품공장 제품의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북한 내 소식통에 따르면 ‘봄향기’ 인기에 편승한 ‘8·3제품’이 많이 등장한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평양화장품공장 제품 ‘입술연지’, 5점 만점에 3점…상점 구석으로 밀려



▲ 북한에서 모든 연령대의 여성이 즐겨 찾는다는 ‘입술연지’. ‘입술연지’도 단둥 시내의 화장품 가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사진=데일리NK

단둥 화장품 가게에선 평양화장품공장에서 생산된 ‘입술연지’도 찾아볼 수 있다. ‘입술연지’는 북한에서 모든 연령대의 여성이 즐겨 찾는 대중적인 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화장품공장은 1962년 4월에 창립해 최근 ‘은하수’라는 상표로 각종 화장품을 생산하고 있고, 북한 내부에서는 소위 김정은이 ‘밀어주는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다만 ‘세계에서 통용되는 화장품’을 만들겠다는 북한 당국의 목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상점을 직접 방문해 ‘입술연지’의 테스터(tester)를 이용한 김경민(29) 씨는 “다소 잘 뭉개진다”면서 “별 5개가 만점이라면 3개를 주고싶다”고 평가했다.

김 씨는 “가격 면에서 외국제품과 비교해봤을 때 78위안(약 1만 3천 원)으로 저렴한 편이긴 하지만 북한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신기할 것일 뿐 제품 자체로만 봤을 때 구매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질 높은 화장품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외국 제품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런 현상을 반영한 듯 ‘입술연지’는 한국 및 다른 외국제품에 밀려 상점의 맨 끝에 진열 돼 판매되고 있었다. ‘흥미’를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구매’로 이어지기에는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북한산 화장품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 당국은 ‘화장품 사업’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의 화장품 사업 강조 이면에는 김정은이 내세우고 있는 ‘자강력’과 ‘인민생활 제일주의’가 있다고 진단했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는 5일 데일리NK에 “북한이 화장품의 질적 향상을 강조하는 것은 자강력 강조와 인민생활 제일주의를 연결시켜 인민생활의 작은 부분까지 체크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높이려는 의도”라면서 “북한이 말하고 있는 ‘우리식 세계화’의 경제적 측면을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 교수는 “인민들에게 삶이 달라졌다고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은 다름 아닌 경공업 부문”이라면서 “북한 당국이 ‘경공업 성과’(화장품 질적 향상)에 대한 자랑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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