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대북제재 여파로 중국과 북한 주요 은행거래가 중단된 틈을 타 북한 금융관련 해외 파견일꾼들이 대북 송금 과정에서 고율의 수수료를 착복하는 등 개인 재산 불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상황에 밝은 중국의 한 소식통은 25일 “중국 시중 은행과 북한 조선무역은행의 거래가 차단 된 것이 북한 금융담당 일꾼들에게는 오히려 호재가 됐다”면서 “평양에는 ‘현지사정이 어렵다’고 보고해 ‘외화벌이 계획’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평양에서 파악하기 힘든 차명계좌를 이용해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소식통은 “조선광선은행 중국 단둥(丹東)대표부 리일수가 대표적인 인물”이라면서 “북한과 중국 간 환(換)치기 장사를 할 수 있는 중국 차명계좌를 통해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광선은행은 북한 내각의 주 외환거래 은행으로 대중무역과 관련한 송금 업무를 주도해 왔다. 이 업무에는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김정은 일가(一家)의 해외 비자금 관리 및 ‘충성자금’ 조성을 지휘하는 곳이다.
북한의 유일 외환은행이었던 내각 산하 조선무역은행이 2000년대부터 지급준비금 고갈로 사실상 운영이 중단된 데 이어 국제사회의 금융제재 대상으로까지 지목되자 조선광선은행이 그 역할을 대신해 급부상했다.
지난 2일 중앙선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조선광선은행은 외형상 조선무역은행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711국이란 이름을 가진 특수기관으로 리동림 총재 아래 김귀철 주하이 대표부, 리일수 등이 북한의 검은돈을 세탁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선광선은행은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직접 지시 통제 아래 김 씨 일가의 외환비자금을 관리하는 특수 금융기관”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리일수의 현지 활동을 소상히 알고 있다는 북한 무역일꾼 박 모씨는 데일리NK와 만남에서 “본래 경공업 분야를 매개로 해외에서 충성자금을 만드는 것이 조선광선은행의 사명인데, 리일수와 같은 은행 책임자들은 국가사업은 외면 채 자기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평양의 중앙당 부부장들도 못타는 최신 벤츠 승용차를 몰고 단둥에서 제일 비싼 식당이라는 궈지쥬디엔(國際酒店)을 제 집처럼 드나들면서도, 다른 외화벌이 단위들이 조국에 돈 보내는 일이 바빠서(어려워) (대북송금을) 부탁하면 수수료를 20~30%나 요구한다”고 말했다.
중국현지에서 벌어지는 환치기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리일수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면, 우선 리일수는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중국인에게 중국의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는 북한에 돈을 보내고 싶어 하는 북한 무역일꾼 A와 거래를 시작한다. A가 리일수의 차명계좌에 50만 위안(元)을 입금하면, 리일수는 A에게 신의주에 있는 자기 심복 B를 찾아가 돈을 찾아가라고 말한다.
A는 북한 내 자기 심복 C에게 전화(중국산 휴대전화)를 걸어 신의주에 있는 B를 찾아가 돈을 찾게 한다. 실제 거래는 중국 내에서 이뤄지지만 북한 내에서 자금이 이동해 실제 송금 효과와 똑같다. 이때 신의주의 B가 A의 심복 C에게 건네는 돈은 수수료 20%를 뗀 40만 위안이다.
A가 운용하는 북한 내 현금은 리일수가 마련해 준다. 리일수는 역으로 북한에서 중국으로 돈을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도 이런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에 중국과 북한 양쪽에서 상당한 현금을 운용하고 있다. 이런 방법은 국내 입국 탈북자들이 북한의 가족에게 돈을 보낼 때도 사용된다. 다만 이 때 송금 브로커는 중국 조선족이 대부분이며 이용되는 계좌는 대부분 국내 차명계좌들이다.
수수료는 송금금액이 커질수록 올라간다. 송금액이 커지면 중국 정부의 추적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리스크 비용’을 올리기 때문이다. 대략 10만 달러(약 60만 위안)를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30%까지 수수료가 올라간다는 것이 박 씨의 설명이다.
박 씨는 “각 단위가 경쟁적으로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에 나와 있는데, 사업이 잘되서 돈을 좀 번다해도 조국(북한)에 돈을 보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같은 (외화벌이) 일꾼들은 쉽게 중국에 다시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번 조국에 들어가면 사상총화다, 사업보고다하면서 복잡한 일도 많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리일수 같은 사람을 통해 돈을 들여 보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박 씨와 같은 외화벌이 일꾼들이 리일수와 같은 인물에게 의존하는 실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소식통은 지적했다.
소식통은 “북한 일꾼들은 중국에서 번 돈을 축소해서 평양에 보고하는 버릇이 있다”면서 “북한의 은행 망이나 은행 간부들을 통해 돈을 보내면 중앙에서 그 돈을 모두 확인하기 때문에 소속단위 상급 간부에게만 몰래 돈을 보낼 목적일 때는 환치기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일꾼들은 중국을 나오는데 필요한 경비나, 중국에서 체류비, 사업비, 이런 걸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결국은 국가에 들키지 않고 자기 돈을 챙기기 위해 20~30%나 되는 고율의 수수료를 물고도 환치기를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소식통은 이어 “리일수가 환치기로 챙기는 돈이 연간 1천만 달러가 넘는다는 소문도 있다”면서 “아마도 이렇게 번 돈의 일부는 리일수의 뒤를 봐주는 리동림이나 김귀철, 혹은 평양의 고위층에게도 흘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리일수가 이처럼 단둥의 환치기 시장에서 거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북한 외화벌이 단위들끼리 투서와 고발, 이전투구가 난무하는 단둥에서 리일수가 장수하고 있는 배경으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현지 인맥 ▲오랜 중국 현지 경험 ▲김경희를 뒷 배경으로 하는 소속기관의 권력이 꼽히고 있다.
박 씨는 “리일수가 중국에서 활동한 지는 어림잡아 십수 년이 넘는 것 같다”면서 “중국어도 잘하고, 중국의 고위관리와 친분도 두텁고, 중국의 금융시스템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다른 외화벌이 일꾼들이 넘볼 수 없는 그 만의 실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돈을 보내는 일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비록 리일수가 수수료는 많이 먹지만, 사고나 협잡이 없어서 금액이 클수록 그에게 매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리일수는 은행원으로서 영업노하우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식통은 “리일수는 영업집조(營業執粗:사업자등록증)를 갖고 있는 중국 법인체 대표를 찾게 되면 술과 돈, 향응을 제공해서 적극적으로 친분을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친분이 어느 정도 쌓이게 되면 곧바로 “조국(북한)에 계좌하나만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넣는다. 조선광선은행 평양 본점에 중국인 명의의 계좌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계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실무적 경비는 리일수가 모두 부담하며, 관련 서류작업도 모두 대행해준다. 그 대신 계좌에 부여된 고유번호는 자신이 갖는다.
소식통은 “리일수는 조선광선은행 소속 간부이므로 기본 임무는 은행 업무다. 실제 거래액이 있던 없던, 중국인 계좌를 많이 만들면 외국인 고객을 많이 확보한 셈이 되니 모두 자기 실적이 되는 것이다. 또 필요할 때는 이런 중국 사람들 계좌를 통해 평양에 돈을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중국은행들의 거래 중단 및 중국 정부의 불법거래 차단 요청으로 상황이 많이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올해 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계좌를 통해 평양에 돈을 송금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상부에 보고하기 위한 공식적인 실적이 필요할 경우 자신이(혹은 계좌주인이) 평양 본점 중국인 계좌에 돈을 송금하고, 소지하고 있는 계좌 비밀번호를 평양의 심복에게 알려줘 돈을 인출하게 해 윗선에 상납하는 방식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인 계좌를 꾸준히 유치하는 리일수의 수완이야 말로 평양에서 그를 높게 평가하는 핵심 근거가 되는 듯 하다.
그러나, 박 씨는 리일수가 언제까지 승승장구할지, 외화벌이 일꾼들의 환치기를 북한당국이 언제까지 묵인해 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예상했다. 지금 리일수가 주도하는 환치기는 단순한 개인 착복을 뛰어 넘어, 북한의 외화벌이 체계 전체를 교란시킬 수도 있는 중범죄라는 우려다.
그는 “모든 외화는 기본적으로 중앙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간부들이 중앙으로 올려야할 충성자금에 손 대는 일을 리일수가 방조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파견 외화벌이 단위들의 본국 송금업무를 대행하기 위해 출발한 은행 일꾼이, 국가를 속이고 자기 부를 축적하는 외화벌이 일꾼들의 편의를 봐주는 일로 개인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소식통도 “리일수가 환치기로 챙기는 이익은 결국은 김정은에게 가야할 돈”이라면서 “더구나 자신이 노력해서 번 돈이 아니라, 다른 단위들이 노력해서 번 돈을 앉아서 떼먹는 꼴이라 언젠가는 다른 단위의 반발을 부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식통은 이어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는 중국에 나오는 외화벌이 일꾼들이 모두 ‘우리는 1호 비준(김정일 승인)을 받았다’고 자신을 내세웠는데, 요즘에는 ‘김경희 동지가 비준했다’ ‘000동지가 비준했다’고 말하는 등 ‘1호’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최고지도자도 예전만 같지는 않은 모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