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살기 위하여」…’국경없는 의사회’ 역작 펴내

“그곳은 인간을 사회적 등급으로 분류하여 불평등을 제도화하고 폭력을 조직적으로 행사하여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철저히 억압하는 나라이다.”

비정부 인도주의 단체인 ‘국경없는 의사회’의 일원으로 북한과 중국에서 북한 난민 구호활동을 벌였던 마린 뷔소니에르와 소피 들로네가 펴낸「이곳에 살기 위하여」(기파랑)는 이방인이 본 북한의 인상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대신 탈북자 세 명의 삶의 궤적을 쫓으며 북한의 인권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남한 출신 전쟁포로의 손녀인 스물네 살의 김태금, 어린 시절 거리를 헤매는 ‘꽃제비’였던 스물세 살의 박복열, 그리고 체제에 충성하는 군인을 남편으로 두었던 마흔 한 살의 고신경.

이들 세 사람은 계층이나 출신지도 다르고,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우리에게 공통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태금과 복열, 그리고 신경의 이야기는 북한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 수십만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태금은 중국으로 팔려가서 착취당한 스물네 살의 여성이다. 조-중 국경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처럼 중국 농부와 결혼하여 매춘 지역에 고용된 수백 명의 북한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거리의 아이가 된 복열은 암시장의 더러운 구석에서 곡식 알갱이를 찾아다니는 꽃제비 소년이었다. 교실을 박차고 나온 복열은 혼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를 포함한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복종하기를 싫어하고, 주변 사람들을 병적으로 불신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신경은 흠잡을 것 없는 출신성분으로 당에 충성하는 모범당원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러나 식량난을 통해 가정은 해체되고, 애끊는 모성으로 이역만리 중국 땅에서 자식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친다. 더러운 행색에 고통스럽게 말을 잇던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들이다.

北 현실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태금, 복열, 신경, 이 세 인물이 지나온 여정의 저변에 폭력과 불의와 야만적 행위가 상징적으로 깔려있다면, 그 이면에는 그들의 용기와 희망이 강하게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자유와 참다운 가치를 누릴 자격이 있는 진정한 생존자들이다”

저자들은 책을 펴내며 “‘국경없는 의사회’ 회원으로서 북한을 위한 지원활동을 하면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파악하게 됐다”며 “우리는 이들이 겪었던 시련과 고통, 좌절을 책으로 엮어냄으로써 그동안 많은 이들이 부인하거나 외면해 왔던 북한의 현실을 명백하게 드러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저자 중 한 명인 소피 들로네는 “한국, 일본, 미국,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연합 등은 탈북자의 위기상황에 대한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면서 “북한 난민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경우 우리는 인권탄압의 공범이 되는 것”이라고 한국의 독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이어 “20년 전 크메르루주 공산정권의 집단 학살을 고발한 캄보디아인들의 증언에도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반신반의하는 입장을 취해왔다”며 “6ㆍ15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외교무드에 도취되어 있는 동안에도 수많은 북한 주민들은 가혹한 정권의 학대를 받으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었다”는 따끔한 충고의 말도 던진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1995년부터 의료와 영양구호사업까지 범위를 넓힌 긴급 지원단을 북한에 파견했다. 북한은 모든 지원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지만 구호사업의 감독은 시작 단계부터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후 취약 주민들에게 접근 할 수 있는 권한과 지원 대책의 투명성을 보장받으려고 노력했지만, 일부 지도층이 지원물자를 착복하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절감하고 1998년 북한에서 철수했다.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