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만시대> ③악바리만 살아남는다

“남한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탈북자 스스로 변해야 합니다.”

국내에 입국하는 탈북자들은 더 이상 정부에서 제공하는 보조금이나 일자리에 의존해서 생활할 수만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남한에서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 자녀에게 보다 밝은 장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특수계층이나 취약계층임을 내세우기 보다 악바리처럼 철저히 적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탈북자의 국내 정착을 돕는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새조위)’의 김영희(43.여) 간사는 “탈북 시기나 북한에서의 배경, 능력에 따라 적응도가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마음가짐”이라며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과 자신을 준비시키는 성실함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2년 입국한 김 간사는 3년 간 국내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공부해 지난해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최근에는 전산세무회계 자격증도 땄다.

북한에서의 경력을 남한 사회에서 활용하고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차별화와 업그레이드’ 방안이었다. 김 간사는 요즘 북한 관련 토론회에 참여하는 동시에 창업도 계획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탈북자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사회 정착의 실마리는 구직”이라며 “조금 더 많은 월급을 좇아 쉽게 직장을 옮기기보다 한곳에서 꾸준히 능력과 기술을 연마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직장에서 탈북자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일차적인 원인이겠지만 당장 ‘화풀이 이직’을 하기보다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특기를 살려나가야 한다는 충고다.

2002년 딸과 함께 입국, 3년 넘게 중장비 제조회사에 다니고 있는 표태식(48)씨는 “지난 4년 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뭐든 열심히 살고자 하는 사람은 산다”면서 “이곳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광산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중장비 조립 기술을 익히고 있다”며 “언젠가는 북한에도 이런 공장을 설립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또 “정착금을 주는 것도 고맙지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며 “도움을 받으면 더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 자립심을 키울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씨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살자’는 생각을 갖고 직장을 다닌다면서 앞으로 글도 틈틈이 쓰고 싶다고 덧붙였다. 올해 딸이 대학 호텔조리과에 입학했다며 웃는 그에게서 생활의 여유를 엿볼 수 있었다.

역시 2002년 입국해 2년째 문구회사에 다니고 있는 박철용(32)씨는 “일하다 보면 직장 옮기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고쳐먹는다”며 “일하다가 조금 스트레스 받고 힘들다고 쉽게 그만두면 더욱 힘들어질 뿐”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이곳에서 겪는 문화적 차이나 언어소통의 문제는 크다고 생각하면 크고 극복하려 노력하겠다고 보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 “꾹 참고 일하면 인정받을 기회가 온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부인과 세 살배기 아들을 둔 그는 “오전에는 판매, 오후에는 배송으로 바쁘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지만 차츰 좋아지지 않겠느냐”며 “지금까지 (남한에서) 적응은 중간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렇듯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자도 있지만 잦은 이직과 가정불화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탈북자 출신인 김승철 북한연구소 연구원은 “한국 사회를 조금 알면 돈만 있으면 잘 사는구나 하는 조급증이 생긴다”면서 여기에 높은 기대심리가 맞물리면서 대부분 6개월에서 1년 이내에 첫 직장을 그만둔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남한에 내려가면 정부에서 어느 정도 대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다”며 “입국 후 이런 환상이 깨지고 생활의 안정을 찾지 못한 결과는 높은 이혼율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위계문화 속에서 형성된 소극적 자세 ▲직장 내 차별에 대한 자의식 ▲폐쇄적인 정보 교류 ▲형식적인 재교육 및 직업교육 프로그램 ▲언어 장벽 등을 탈북자의 정착을 가로막는 안팎의 걸림돌로 꼽았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의 김영자 사무국장은 “탈북자는 분쟁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조정과 합의를 하지 않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수가 많다”며 “사회생활 중 의견이 상충할 때 합의점을 찾아내는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무지개청소년센터의 윤상석 팀장은 “탈북자들이 경쟁 일변도의 생소한 사회생활이나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사회의 인식 전환과 함께 탈북자 스스로 남한 생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자율성과 적극성을 키워 심리적 위축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입국 탈북자 1만 시대를 맞아 이들의 정착을 위한 제도 보완과 함께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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