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만시대> ②중국으로 U턴..새터민의 ‘차이나드림’

“사실 중국이 한국보다 살기가 편해요. 물가도 싸고 뭔가 새로운 사업 기회가 있을 것도 같구요….”

작년 11월 중국 선양(瀋陽)에서 만난 새터민 김춘명(가명.37))씨는 정식으로 여권이 나온 작년 초부터 선양, 다롄(大連), 단둥(丹東)을 두어 달에 한 번꼴로 다녀가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변변한 직업을 찾지 못한 그였지만 98년 북한을 나와 2004년 한국에 입국하기 전까지 조그만 장사를 하면서 살았던 중국 땅에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

중국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김씨는 중국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조선족 교포와 한족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무역을 해보려고 이곳저곳 열심히 시장조사를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머리도 식히고 친구들도 만날 겸해서 다시 발을 들여놨던 중국이 이제는 그의 미래를 밝혀줄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김씨는 “중국에는 한국에 없는 신기한 물건들이 많습니다. 가격도 놀랄 만큼 눅하구요(싸구요). 적은 자본으로도 충분히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곳”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런 측면에서 칭다오(靑島)에서 한국과 무역을 하고 있는 정춘매(가명.31)씨는 동료 새터민 사이에서는 ‘차이나드림’을 성공시킨 드문 사례로 꼽히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정씨가 북한을 나온 것은 지난 98년. 그는 칭다오의 조그만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아 2004년 한국에 입국하는 데 성공했다.

하나원을 수료한 뒤로 그는 다시 중국으로 복귀해 자기의 사업을 꾸려 보겠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칭다오에 살면서 쌓아 놓은 인맥을 이용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현재 그는 중국에 집과 승용차도 마련해놓았지만 수입은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다만 그를 잘 아는 한 친구는 “매달 중국에 내는 세금이 인민폐로 10만위안(약1천200만원)이 훨씬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2004년 6월 한국에 입국한 새터민 채진수(가명.41)씨는 작년 10월 단둥(丹東)에 조그만 공장을 꾸린 초보 사업가.

북한에 있을 때 군부에서 운영하는 무역회사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그는 처음부터 ‘한국에 들어가면 중국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터였다.

2005년 상반기부터 채씨는 옌지(延吉)와 단둥을 드나들면서 시장조사를 했다. 처음에는 훈춘(琿春)에 김치공장을 차리려 했다가 중국의 내수시장을 겨냥해 단둥에 합성수지 원료가공 공장을 꾸렸다.

처음에는 자본이 없어 좌절도 겪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사귄 한족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세운 공장은 올 4월부터는 정상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채씨는 “중국 공장에 원료를 공급할 공장을 청주에 세우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이 계획까지 잘 실현되면 앞으로 북한에도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새터민 ‘차이나드림’의 원조로는 91년 귀순한 가수 김용씨가 꼽힌다. 그는 오래 전에 중국으로 눈을 돌려 사업체와 호텔 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으로 진출을 꿈꾸는 새터민이 늘고 있는 이유로는 한국에 입국하기 전 중국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짧게는 4∼5년 씩 생활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역시 탈북자 출신인 북한이탈주민후원회의 한 관계자는 “새터민들이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구축한 인맥들이 바로 한국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에 거주하는 새터민 김모(43)씨는 “국내에서 적응하기 힘든 탈북자들이 새로운 탈출구로 중국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보다 싼 물가 역시 새터민을 중국으로 유인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탈북지원단체의 한 관계자는 “매달 정부에서 주는 정착금이나 생계비면 중국에서는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누릴 수 있다”며 “이런 매력 때문에 중국과 한국을 번갈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