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北韓> ① 수세로의 전환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농성전을 벌이는 형국입니다.”

한 당국자는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등장 이후 북한이 대내외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을 자신보다 세력이 큰 적을 상대로 성안에서 싸움을 벌이는 상황에 비유했다.

보급로가 차단돼 먹을 것을 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적을 앞에 두고 성안에서는 ‘결사항전’만이 난무할 뿐 협상을 하자는 주장은 나라를 팔아먹자는 이야기로 여겨질 뿐이다.

북한은 왜 농성전을 택하게 됐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9년 ‘페리 프로세스’가 시작되면서 6.25전쟁 이후 적대적 상대방이었던 한미일 3국으로부터 실체적 존재를 인정받고 자신에 찬 행보를 시작했다.

미국과는 미사일 문제를 협상으로 풀어가는 동시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2000년 6월 분단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또 10여개 서방국가와 잇달아 수교한데 이어 김정일 위원장이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납치문제를 시인하는 ‘고백외교’를 통해 국교정상화를 향한 첫걸음을 뗐다.

한미일 3국으로부터 존재를 인정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내부 경제개혁에도 박차를 가했다.

2001년 10월 ‘경제관리지침’을 통해 북한 관료와 주민들에게 경제적 신사고를 요구한데 이어 2002년 7월부터 임금 및 물가 인상, 공장ㆍ기업소 경영개선 등 경제개혁을 추진했으며 같은해 9월 신의주를 홍콩식 ‘일국양제(一國兩制)’ 형태의 특구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사회 진입과 내부 경제개혁을 위한 북한의 행보는 미국에서 부시 행정부의 집권과 함께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불거지면서 급격히 움츠러 들었고 급기야 미국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위적 핵 억제력’을 강조하고 나서게 됐다.

핵 문제로 대북압박의 명분을 쥔 미국이 남북 간 경제협력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면서 남북교류는 속도조절을 강요받을 수 밖에 없었고 대북 국교정상화를 향해가던 일본은 납치문제를 거론하면서 미국의 압박정책에 보조를 맞췄다.

또 미국은 핵이 아닌 북한의 위조화폐를 거론하면서 금융제재에 나섰고 북한은 ‘핏줄을 죄는 조치’라고 반발하면서 6자회담의 테이블을 떠난 뒤 지난 5일에는 결국 ‘대포동 2호’를 포함해 7발의 미사일을 발사하고 말았다.

미국의 금융제재를 받고 있는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는 2천400만달러가 묶여있고 이 금액은 공식환율을 적용할 경우 북한 예산의 1% 정도, 시장에서 통용되는 암시장 환율을 적용하면 예산의 20%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런 가운데 내부적으로 경제개혁을 위해 이뤄지던 세대교체는 과거회귀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제도적으로 반시장적인 정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남북관계에서도 국가보안법 철폐, 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 등 구태의연한 ‘근본문제’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99년 이후 북한이 보여준 모습이 국제사회를 향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접근이었다면 2003년 이후 모습은 스스로 고립을 향하는 수세적인 모양새다.

북한은 왜 수세적으로 변화하는가.

우선 미국과 대립각을 곧추 세우고 있다는 점은 북한의 행동반경을 좁히고 공세적 정책결정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다.

내부적 자본 고갈에 시달리는 북한의 입장에서 개혁.개방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미국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의 정책결정은 미국변수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북한 내부적으로 강경보수세력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는 것도 북한을 소극적 정책결정으로 이끌어가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북한의 강경정책이 미국과 일본의 강경세력의 입지강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강경한 대북정책은 북한 내 군부 등 강경세력의 득세로 연결되고 있는 셈이다.

노동당에 강성 군부인사들이 충원되고 남북간에 합의한 열차시험운행이 갑자기 중단된 것도 결국은 이러한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수세적 움직임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비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미사일 개발저지를 위해 제재의 고삐를 죄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외무성 대변인이 결의안 채택 후 발표한 성명에서 그동안과 달리 6자회담에 대해 부정적 입장만 피력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의 논리, 미국의 군사적 대응카드가 많지 않다는 현실, 계속된 대북 압박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은 강경한 노선을 견지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북한은 파국 속 핵과 미사일 능력을 굳혀갈 수도 있는 만큼 ‘주고받기식’의 대화와 협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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