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뀐 닷새

“`혹시나’하는 기대감이 `역시나’하는 실망감으로 바뀌더니 급기야 회담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로 비화됐다.”

중국 베이징에서 18∼22일 열린 제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를 가까이서 지켜본 한 외교소식통은 이번 회담을 이렇게 총평했다.

◇ `혹시나’ 기대감 =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를 놓고 북미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애초부터 회담 전망이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회담 개막 전에는 일부 고무적인 발언들이 나오면서 어느정도 희망적인 기류가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미국이 전에 없이 탄력적으로 나오는데다 북한도 미국이 제안한 `초기이행조치’에 대해 `추후 답변하겠다’고 말하는 등 직접적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은 점이 주목됐다.

회담 전 곧잘 강경입장을 표명하며 대결 국면을 조성하던 북한 매체도 약속이나 한듯 조용했다.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도 14일(한국시간) 워싱턴에서 가진 회견에서 “성공을 예단하거나 낙관하지 않겠다”면서도 “북한이 9.19 공동성명 이행 방안을 세부적으로 다룰 용의를 시사하고 있다”고 말해 `뭔가 이뤄질 수도 있겠구나’하는 기대감이 서서히 퍼졌다.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각국 대표단 중 처음으로 16일 베이징에 입성하면서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해서는 제재 해제가 선결돼야 한다”고 주장할 때도 `의례 하는 소리’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였다.

북한이 개막일인 18일 기조발언에서 `핵군축협상 불가피론’과 함께 유엔 제재 해제까지 거론하는 등 초강경 입장을 펼 때까지도 각국 대표단은 “원래 처음에는 최대치를 요구한다”고 평가절하했다.

◇ `역시나’ 실망감 =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분위기가 퍼진 것은 북한이 17∼18일 미국의 양자대화 제의를 잇따라 거부하면서부터다.

힐 차관보가 이틀 연속 북미양자회동이 무산된 뒤 18일 저녁에 숙소에 들어오면서 “인내심이 한계를 넘어섰다”고 밝힌 데서도 진한 실망감이 묻어난다.

북미 양자회동은 19일 두 나라 간에 BDA실무회의가 시작된 지 30분 뒤에 성사됐다. 북한이 6자회담보다 BDA회의에 훨씬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자리에서 힐 차관보는 워싱턴 수뇌부의 의지가 실린 제의를 했지만 김 부상은 “금융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한 다른 문제는 논의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 부상도 힐 차관보의 제안에 담긴 `진정성’을 감안해 평양에 훈령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각국 대표단이 이 당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실질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면서 다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평양에서 돌아온 대답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으면서 김 부상은 이후 일관되게 `BDA 해제 선결’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회담 종료일을 하루 미루면서까지 북한의 성실한 대응을 기다렸지만 상황변화는 없었다. 북한은 한국의 설득은 물론 중국의 중재에도 귀를 막았다는 후문이다.

◇ `회담 무용론’까지 비화 = 북한의 고집스런 태도에 대한 실망감은 회담 무용론까지 거론되는 상황으로 번졌다.

일본 수석대표인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국장은 22일 “6자회담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의견들이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고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6자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외교 트랙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힐 차관보도 이날 기자들에게 “우리가 그 비핵화를 향해 제대로 가고있는 지를 평가해봐야 한다”고 거들었다.

미국과 일본의 핵심 당국자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6자회담 무용론’으로 읽혀지는 발언을 쏟아낸 것은 21일 저녁 한.미.일 수석대표가 만찬을 함께 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힐 차관보는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도 “그들(북한 대표단)은 평양으로부터 BDA가 해결될 때까지는 공식적으로 6자회담 주제에 대해 얘기하면 안된다는 훈령을 받았다”고 직설적으로 북한의 협상태도에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각국은 마지막까지 성과 도출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결국 13개월 만에 재개된 회담은 차기 일정도 잡지못한 채 종료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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