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실험 마친 북한에 이젠 선제공격 안 통해`

▲ 애시턴 카터 전 미국 국방차관보 ⓒ 중앙일보

2007년 한반도 최대의 불안 요소인 북한 핵문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 국방부 차관보로 1994년 1차 북핵 위기를 담당했던 애시턴 카터 전 국방차관보를 만나 새해 북핵 전망을 들어봤다. 현재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본지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북한이 새해에도 핵무장을 강행하면 미국은 북한의 모든 국제 금융거래를 차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터는 북한이 지난해 7월 미사일을 발사하려 하자 페리 전 장관과 함께 워싱턴 포스트에 대북 선제공격론을 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선제공격론은 지난해 7월 4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직전 그것을 막기 위해 효과적인 경고를 던졌던 것”이라며 “북한이 핵실험까지 마친 현 시점에선 대북 선제공격은 불가능해졌고, 의미가 없어졌다”며 선제공격론을 폐기했다. 카터 교수는 대안으로 “이제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강력한 정치.경제적 압박을 북한에 가해 핵폐기를 끌어낼 때”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3개월 만에 재개된 5차 6자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6자회담은 실패작이다. 6자회담은 북한의 행동에 그 어떤 변화도 유도해 내지 못했다. 북한은 6자회담 기간 중 6~8개의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플루토늄을 만들어냈다.”

-6자회담의 어떤 점이 잘못된 것일까.

“6자회담은 이론 자체는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6자회담은 현실에 제대로 부합하지 못했다. 미국.한국.중국 모두 결실 없는 회담 그 자체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6자회담을 유지함으로써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자국민들에게 홍보하려 하는 것 같다. 6자회담은 부시 행정부가 적절한 전략을 개발하지 못하는 한 정말 그렇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회의체로 전락할 것이다. 그 결과 차기 미국 대통령은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핵무장한 북한과 공존하게 되리란 것인가.

“아니다. 미국과 한국.일본 등 동맹국들은 핵무장한 북한과 대치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핵무장한 북한과 절대 공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지금처럼 핵무장을 계속한다면 미국은 무자비하게(unrelentingly) 북한을 압박할 것이다.”

-미국이 대북 군사행동을 감행한다는 얘기인가.

“미국은 북한 김정일 정권을 모든 가능한 수단, 특히 금융과 정치적 수단을 동원해 압박할 것이다. 대북 군사적 압박은 가급적 피할 것이다. 왜냐하면 군사적 조치가 북한에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대북 선제공격론의 주창자 아닌가.

“나와 페리 전 국방장관이 지난해 여름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북한 미사일 기지 선제공격론’은 효과적이면서도 도발적이지는 않은 시점에 북한에 보낸 전략적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건 물 건너간 얘기다.”

-이젠 더 이상 그런 주장을 안 하겠다는 얘기인가.

“북한 핵무기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외과 수술적(정밀폭격) 공격’은 불가능하다. 당시 우리가 거론한 선제공격론은 북한의 미사일 시설을 공격, 우리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하려던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한다면.

“부시 행정부는 현재 의미 있는 대북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 또 북한 문제와 관련해 외부로부터 어떤 아이디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부시 행정부는 분열돼 있다. 북한과의 대화를 찬성하는 국무부 등의 협상파와 대북협상을 반대하는 부통령실.국방부 등 강경파로 분열돼 있다.”

-하지만 요즘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평화협정 공동서명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대화에 적극적 입장을 보이는 듯하다. 또 대북 강경책을 외치던 네오콘들도 퇴장했지 않나. 그런데도 부시 행정부가 협상파와 강경파로 분열돼 있다는 얘기인가.

“부시 대통령은 재임 6년 동안 단 한 번도 행정부 내부의 분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게다가 미국뿐 아니라 다른 모든 6자회담 참가국도 영어 표현에 나오는 것처럼 ‘Talk in the Talk, Not Working in the Work'(회의석상에서 말은 잘하지만 막상 실천에 들어가면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다.”

-남은 임기 2년 동안 부시 대통령은 여전히 대화와 압박 사이에서 헤맬 것으로 전망하나.

“부시 행정부가 대화와 압박 중 하나를 분명히 택할 것 같지 않다. 내 생각으로는 부시는 뚜렷한 정책 노선을 선택하지 않은 채 어정쩡한 자세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새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는 북핵과 한.미 동맹 현안에 대해 전임자 도널드 럼즈펠드보다 합리적 접근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가 대북 정책을 수정할 것으로 보는가.

“게이츠 국방장관은 한반도 문제에 상당한 정보와 안목이 있다. 따라서 게이츠는 북핵과 한.미 관계에 럼즈펠드보다 건설적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분열상을 극복할 열쇠는 부시 대통령이 쥐고 있다. 하지만 부시는 북한 핵문제를 자신이 해결 못하고 후계자에 물려줄지도 모르는 이 비극적 상황을 제대로 인식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통과된 미 의회 수권법안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조만간 대북정책 조정관을 임명토록 돼 있다.

“부시 대통령이 대북조정관을 임명할지 안 할지조차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참모 중 한 명을 임명하는 데 그칠 공산이 크다. 그냥 의미 없는 방식으로 단순히 법규를 만족시킬 수는 있을 거란 얘기다.”

-크리스토퍼 힐 미 6자회담 수석대표가 조정관에 임명된다는 얘기가 있다.

“힐은 이미 실질적으로 그런 (조정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임명된다고 해도 아무 변화가 없을 것이다.”

-대북조정관이 별 볼일 없는 자리란 얘긴가.

“미 의회에서 대북 조정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의 의도는 클린턴 시절 대북조정관을 지낸 빌 페리가 했던 역할을 기대한 것이다. 물론 힐 차관보는 훌륭한 외교관이다. 그러나 지금 힐은 클린턴 시절 페리가 했던 그런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내 얘기는 조정관 감투를 힐에게 씌워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얘기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미국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자금을 1년3개월 넘게 동결해 온 조치는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이 북한의 도발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unforgiving)임을 평양에 강조하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또 북한은 핵무장을 계속하는 한 절대로 압박에서 풀려나지 못할 것임도 잘 강조한 조치였다. 그러나 워싱턴은 동시에 ‘핵개발을 중단하면 자금 동결을 풀겠다’는 메시지도 평양에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미국은 필요한 시점에 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다.”

-북한이 핵무장을 계속하며 협상을 거부한다면 미국의 선택은.

“미국은 재무부.상무부는 물론 국제금융기관을 동원해 북한의 모든 합법.불법적인 금융거래를 조사하고 차단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북한은 자금 이동을 북한 내부에서만 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주체 금융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웃음). 지금 북한은 김정일 체제의 생존을 전적으로 핵무기에 의존하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북핵 대응과 한.미 동맹과 관련해 계속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양국에 충고를 한다면.

“미국은 북핵문제와 관련해 명확한 전략이 없다. 한국과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북핵문제는 한국과 미국뿐아니라 6자회담의 모든 참가국이 책임질 문제다. 한.미 동맹과 관련해선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한.미 동맹의 기본정신을 훼손한 잘못된 행동과 언사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한.미 동맹의 필요성은 두 지도자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의 이익은 양국이 다른 국가에 갖는 동맹의 이익보다 훨씬 크다. 2007년과 2008년에 차례로 등장할 한국과 미국의 차기 대통령들은 그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전임자의 잘못을 고치기를 기대한다.”

-한국은 미국의 대북 압박에 호응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을 중단해야 하나.

“구체적인 정책 문제는 대답하지 않겠다. 다만 한국은 북한에 대한 채찍과 당근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 내가 보기엔 한국의 대북 정책은 이도 저도 아니다. 한국은 북한에 채찍을 제대로 쓴 것도 아니고 당근을 제대로 쓴 것도 아니다. 이는 한국이 북한의 핵무장 프로그램에 별 신경을 써오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애시턴 카터는…빌 클린턴 1기 행정부 시절인 1993~96년 미 국방부에서 차관보로 재직하며 군축.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및 미사일 방어를 담당했다. 당시 대북정책조정관이었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현 스탠퍼드대 교수)과 함께 포괄적인 대북정책 방안인 ‘페리보고서’를 작성했다. 지난해 6월 22일 페리 전 장관과 함께 워싱턴 포스트에 ‘필요하다면 폭격하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북한이 미사일 발사 준비를 계속한다면 미국은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해 미사일 기지를 파괴해야 한다”고 대북 선제공격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예일대에서 중세사와 물리학을 전공한 뒤 옥스퍼드대에서 이론물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에 재직 중 차관보로 발탁됐다. 탁월한 업무 능력으로 국방부가 주는 최고의 상인 공훈메달을 두 번 수상했다.

중앙일보, 강찬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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