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과의 접촉에서 7월 말 6자회담 재개에 전격 합의한 배경에 우리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했는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작년 6월 말 제3차 회담을 끝으로 6자회담은 당초 열기로 합의한 그 해 9월말까지의 시한을 넘겨가며 장외 공방만 거듭해야 했고 이와 비슷한 시기인 작년 7월 고(故)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불허 문제를 시발점으로 남북 당국 간 관계 역시 얼어붙었다.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작년 7월 미 의회의 북한인권법 통과와 11월 미 대선, 지난 1월 미국측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등으로 계속 꼬여만 갔고 2.10 핵무기 보유 선언을 비롯한 북한의 강경 대응으로 대화보다는 대결 국면으로 치닫는 양상이었다.
우리 정부는 북핵 회담과 남북 회담이 동시에 멈춰서는 국면에서 종전부터 견지해온 북핵과 남북관계 병행 전략의 강도를 높이는 동시에, 사태 악화를 막는 외교적인 상황 관리 노력을 펴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했다.
정부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 명의의 서신을 지난해 말부터 3차례 북측에 보내 대화재개를 촉구한 끝에 지난 5월 16일 차관급회담 테이블에 북한을 불러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핵 해결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 작업을 벌였다.
양국 정상은 6월 10일 회담에서 핵 포기시 체제안전을 보장하고 북미 간 ‘보다 정상적인 관계’로 개선을 추진한다는 합의를 봤고 부시 대통령은 `미스터 김정일’이라는 호칭으로 우리의 노력에 화답한 것이다.
이어 평양 6.15 행사에 당국 대표단이 처음 참가하면서 북한의 마음을 움직였다.
특히 평양 체류 마지막 날인 6월 17일 정 장관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5시간 가까이 면담하면서 이런 노력은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언급을 통해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고 미국과 추가협의를 전제로 7월 중 6자회담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처음으로 우리측에 전달,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정부는 그 직후 이태식 외교통상부 차관을 미국에 보내는 등 주변국들에 당국자를 파견, 6.17 평양 면담의 결과를 상세히 설명하는 외교적 노력도 경주했다
지난 달 21일부터 열린 제15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 6자회담 재개에 긍정적인 여건을 만들어나갔다.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 장관을 워싱턴으로 급파했고 정 장관은 북핵 문제에 중심적, 주도적 위치에 있는 딕 체니 부통령을 지난 1일 면담, 북한의 대미 관계개선 의지와 비핵화 입장을 소상히 전하는 메신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정 장관의 미국 방문 후 일주일 만에 제4차 6자회담 개최 합의 사실이 발표된 점은 우리 정부의 역할이 허사가 아니었음을 반증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돋보인 것은 북핵 문제에 있어서 우리측의 `주도적 역할’과 함께 양대 축을 이루는 `창의적 역할’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5월 16일 차관급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시 북핵 문제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한 `중요한 제안(중대제안)’을 마련하겠다고 북측에 제시한 데 이어 6.17 평양 면담에서 그 내용을 설명, 일종의 유인을 제공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