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정상회동’..북핵 돌파구 찾을까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참여국간의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에도 문제 해결의 전기가 좀처럼 마련되지 않고 있다.

6자회담 재개의 열쇠를 사실상 쥐고 있는 북-미 양국의 대립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고, 이를 지켜보는 나머지 참가국들의 답답함은 가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회담 참여국인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정상들과의 연쇄 회동을 앞두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8일 오전 제2차 세계대전 러시아 전승 6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모스크바로 향한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는데 이어 9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어 6월 중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고, 6월 하순에는 서울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만나 북핵문제를 집중 협의한다.

◇ 마주 달리는 북-미 두 열차 = 북한의 핵실험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가운데에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인 북미 양국의 해결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상대방의 양보만을 강조하며 위협성 발언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스콧 맥클렐런 미 백악관 대변인은 7일 “우리는 강한 억지력을 갖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우리의 능력에 대해 오판해서는 안된다”며 대북 경고를 하고 나섰다.

이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지난 2일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모든 종류의 ’실질적인’(significant) 억지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유엔 안보리 회부설 등 6자회담 이외의 ‘선택’이 거론되는 가운데, 그동안 강조됐던 ‘평화적.외교적’ 해결보다는 ‘억지력’에 무게중심이 실리는 듯한 인상이다.

이를 두고 미 언론들은 “미국이 북한을 파괴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끄덕도 하지 않고 있다.

7일자 조선신보는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행동계획을 세워놓고 있으며 이에 따라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핵실험 강행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6자회담은 미국이 전향적인 자세를 표시하지 않는 한 재개될 수 없다”며 미국의 자세 변화만을 촉구한 것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북한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라이스 장관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에 대한 사과를 회담재개 조건 중 하나로 내세운 데서 보듯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선(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방북 중인 콘스탄틴 코사체프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국제관계위원장도 7일 “평양은 미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분류한 데 대해 흥분해 있다. 공표를 통해 취소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미측은 이미 수차에 걸쳐 “북한은 주권국가”라고 언급했고, 이는 회담장에서 북한과 동등한 자격으로 모든 사항을 협상할 수 있다는 뜻이라면서 북한의 회담 복귀 전에는 어떤 것도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조선중앙통신은 6일 “미국은 우리 제도를 전면부정하고 공존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견지하고 있어 회담에 참가할 수 없다”고 대미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양측은 여전히 6자회담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이 믿을 만한 성의를 보이고 행동하며 6자회담이 개최될 수 있는 조건과 명분을 마련한다면 어느 때든 회담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언론국장도 이날 “우리는 현재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 한중, 북-미 중재 속도 붙나 = 북한과 미국의 장외 샅바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한국과 중국 정부의 중재 행보도 더욱 속도가 붙고 있다.

한중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6일 양국 외교장관은 교토에서 회담을 갖고 상황 악화를 초래하는 북미간 최근의 상호비방전에 우려를 표시하고 ‘대화’만이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 것이 향후 양국의 행보를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이런 공통된 상황인식 하에 이날 모스크바에서 열릴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현 상황의 타개를 위해 북-미 양국 모두 감정싸움을 자제하고, 북핵 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위해 성의있는 자세를 가져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북미간 설전은 상황 타개에 도움이 안되는 만큼, 미국은 좀 더 유연한 자세로 북한이 회담장에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북한도 핵실험과 같은 ‘위험한 도박’을 당장 멈추고 ‘전략적 결단’을 하루속히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을 수행 중인 송민순(宋旻淳) 외교부 차관보는 한중정상회담 결과를 가지고 10일 방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포함한 미 행정부 고위인사들을 두루 만나 북핵 해법 모색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미국내 대북 강경론을 차단해 줄 것도 요청할 것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대북 역할론과 관련해서는 관련국간 입장차가 느껴진다.

한국과 미국 등은 확실한 대북 지렛대를 갖고 있는 중국이 좀 더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이를 여러차례 언급해왔지만 중국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하다.

자신도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다른 참가국들 역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국측의 생각으로 보인다.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이 6일 “중국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만 중국만 역할을 한다고 충분하지가 않다”고 말한데서 그런 불만이 묻어난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북미간의 장외싸움에서 북한 뿐 아니라 미국에게도 역시 그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도 풀이되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수입하는 모종의 품목에 대한 금지를 확대하는 방안을 중국이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7일 보도해 주목된다.

중국은 힐 차관보가 지난 달 26일 방중시 대북 석유공급 중단을 제기한 데 대해 거부의사를 표명했지만 대북수출 금지확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시사했다는 것이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직접적인 대북 지렛대 사용을 극구 꺼렸던 중국으로서도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 등 극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경제의 상당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북한은 지원의 일부라도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에 빠져들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은 이 같은 대북 지렛대를 중국이 사용해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중국 지도부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부시 대통령과 후 주석의 지난 6일 전격적인 전화회담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논의됐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모스크바에서의 한중 정상회담과 미중간의 접촉에서 중국이 대북 지렛대를 사용할 지, 사용한다면 어느 수준에서 이뤄질 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이어 6월중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에 당근을 제시할 것인 지, 압박구도로 몰아갈 것인 지 그 윤곽도 점차 분명해질 전망이다.

◇ 일본과 러시아의 역할은 = 러시아가 북핵문제를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다면 일본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북핵상황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러시아는 외교적.평화적 해결이라는 기본 입장만 유지한 채 어떤 가시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다. 따라서 9일 예정된 한러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러시아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겉으로는 외교적.평화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지만, 일본 언론들은 연일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흘리면서 북한의 핵실험설 등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은 2일 라이스 장관을 만나 “회담이 재개되지 않으면 다른 선택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데서도 일본측의 의중이 묻어난다.

유엔 안보리 회부 등 6자회담 이외의 대안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거론해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셈이다.

급기야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8일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 준비 가속화 정보를 한국과 일본에 전했다면서 미국내 초강경파는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한정적으로 폭격을 검토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까지 보도했다.

하지만 마치무라 외상은 7일 아셈 외무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장에서는 “(북핵실험설 관련) 여러 소문이 오가고 있지만 확실한 정보는 없다”고 한 발 뺐다.

일본 당국자들을 인용한 핵실험설이 연일 터져나오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당국자가 “6자회담에서 일본에게 바랄 것은 없다”고 말한 데서도 현 국면을 타개하는데서 일본의 역할은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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