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해결사’ 힐, 부시도 녹였나

‘북핵 해결사’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위상 변화가 놀랍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힐 차관보 2일 아침 백악관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과 조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는 딕 체니 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남미 순방 중인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대신한 에릭 에델만 국방차관, 조슈아 볼튼 백악관 비서실장,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 보좌관 등이 참석했다. 부시 행정부 수뇌부가 모두 모인 이 자리에서 힐 차관보는 베이징 6자회담 결과를 보고하고 부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3일 베이징 2단계 북핵합의 발표에 맞춘 성명에서는 라이스와 힐 대사를 비롯한 북핵 협상팀의 헌신과 노고를 치하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기까지 했다.

대통령과 부통령, 국무,국방장관, 백악관 비서실장, 국가안보보좌관이 모두 참석한 자리에서 북핵 협상 결과를 직접 보고하고, 대통령이 성명으로 노고를 치하하는 어제 오늘의 일들은 힐 차관보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실감케 하기에 충분하다. 한 마디로 뜬 셈이다.

워싱턴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핵협상은 힐의 원 맨 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달라진 힐의 위상은 과거 부시 행정부 강경파들의 틈바구니에서 대북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그의 모습과는 딴 판이다.

힐은 2005년 초 2기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동아태차관보로 발탁돼 북핵 해결사로 기용됐지만, 한 동안은 북한과 직접 대화조차 허용되지 않을 만큼 권한이 미미했다.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을 주축으로 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실권자들은 북한이 스스로 영변핵시설을 폐쇄하기 전에는 북미간의 직접 대화를 허용할 수 없다고 고집했다.

힐은 이런 압박 속에서도 2005년 7월 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석하기로 한 베이징 만찬 자리에 중국 대표가 참석하지 않은 계기를 포착, 김계관 부상과 양자회담을 갖고 이를 9.19 공동성명으로까지 연결시키는 뚝심을 발휘했다.

이후에도 힐은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 주도로 이뤄진 ‘방코델타아시아(BDA)’라는 대북 금융제재에 걸려 시련의 날들을 보내야 했으며, 어렵사리 뚫은 방북 길도 체니의 반대로 체념한채 울분을 삭여야 했다.

강경파들의 장벽 속에서도 힐이 끝내 부시의 완고한 마음을 녹이고 대북 협상정책을 이끌어내기까지에는 라이스의 신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꼽힌다.

힐을 북핵 해결사로 발탁한 사람은 다름 아닌 라이스.

부시의 재선과 함께 국무장관에 지명된 라이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05년 12월 주한 미국 대사로서 일시 귀국 중이던 힐이 백악관에 들렀을 때 한반도 관련 질문을 던지며 면접시험을 치렀고, 곧이어 그를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로 불러들였다.

힐은 이후 시간이 지날 수록 두터워지는 라이스의 신임을 바탕으로 북핵협상의 비전과 방안을 설명하고 라이스는 다시 부시를 설득, 부시가 마침내 “나는 결심했다. 모든건 북한 지도자에게 달렸다”고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사이에 힐은 북핵협상과 관련해 라이스 장관과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통화하고 협의하는 핫라인 체제를 구축한데 이어 부시 대통령에게까지 직보하는 시스템을 확보했다.

힐은 지난달 초 시드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참석 중인 부시 대통령에게 제네바 북미협상 결과를 직접 브리핑했다. 이번엔 체니까지 배석한 가운데 부시에게 북핵 협상 결과를 보고했으니 채 한 달도 안돼 대통령과 마주앉아 북핵문제를 보고하는 위치에 이른 셈이다.

이처럼 날로 드높아지는 힐의 위상과 달리 미국 내 대북 강경파들의 입지는 지리멸렬하다.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존 볼턴 유엔대사가 물러난데 이어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비확산 차관보,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 잭 크라우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등 북핵 협상에 ‘딴지’를 걸어온 강경파들도 속속 퇴진했다.

국무부 협상파들과는 자리를 함께하는 것조차 기피했던 이들 강경파는 6자회담이 열릴 때마다 온갖 까다로운 지령들을 내려보내며, 북한에 대한 압박을 주문하곤 했으나 이젠 그런 걸림돌은 거의 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강경파들은 6자회담에 임박해 북한-시리아 핵커넥션 의혹을 흘리며 북핵협상 저지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역부족과 세불리만 실감해야 하는 형국이다.

과거 같으면 협상을 좌초시킬 수도 있었을 악재인 북한-시리아 핵커넥션 의혹에도 아랑곳없이 베이징 6자회담은 순항했고 2단계 북핵합의가 타결됐다.

힐은 북-시리아 핵커넥션 의혹과 관련, “그런 문제가 있을 수록 6자회담을 강화해야 한다”며 “강경파들의 비판에 대꾸하다가는 일을 못한다”고 공개회견에서 일축하기도 했다.

이제 북한에 대한 부시의 완고한 마음까지 녹인 힐의 다음 숙제는 무엇일까.

핵무기 포기를 바라지 않는 북한 내 강경파라고 힐은 꼽았다.

힐은 2일 기자회견에서 북핵 협상은 핵무기를 포함한 완전한 핵포기 없이는 결코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며, 이를 위해서는 북한 군부와 핵포기를 바라지 않는 북한 내 강경파를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힐이 오래 전부터 북한 방문을 갈망해온 것도 강경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을 설득하고 싶어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을 그가 아는 지 모르지만, 그는 머지 않아 북핵 해결의 마지막 걸림돌인 북한 내 강경파들과의 대좌를 위해 방북 길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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