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는 쥐어짜면서 대화해야 효과적`

한국을 찾은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右)가 김영희 대기자와 대담하고 있다.

만난 사람 =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중앙일보)

“네오콘(힘의 외교를 강조하는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분명히 쇠퇴했다. 대신 대화와 실용주의적인 접근을 중시하는 미국의 전통 외교 방식이 부활했다.”

존 아이켄베리(52)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난달 28일 본사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북핵의 완전 폐기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김정일 정권의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2년도 채 남지 않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임기 내에 핵 폐기 단계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서울국제포럼(이사장 이홍구, 회장 한승주)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이날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주최한 세미나 참석을 위해 서울에 왔다.

-귀하는 2002년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9, 10월호에 테러와의 전쟁을 표방하는 부시 대통령의 대외 정책을 신제국주의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라크 전쟁을 포함해 그간 동맹국이나 적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 정책이 당신의 주장을 증명했다고 봅니까.

“그렇습니다. 부시 행정부 안에는 네오콘적인 특이한 세계관을 가진 관료가 많았어요. 그들은 9.11테러 사태를 도구로 삼아 힘을 바탕으로 한 일방주의 외교를 추구했어요. 선제공격이나 적극적으로 미국에 위협이 되는 정권들의 교체를 추진하는 정책이었지요.”

-네오콘의 전성시대는 간 것 같은데 지금부터 미국 외교 정책이 크게 변화할 것 같습니까.

“물론입니다.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큰 문제, 북한과 이란 핵 문제 이슈에서 그동안 행정부 안에서 두 가지 정책이 서로 경쟁해 왔어요. 하나는 악과는 협상할 수 없다는 네오콘적인 시각입니다. 그들은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 안심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그런 시각은 이제 역사 속에 묻히고 있다고 봐요.”

-포린 어페어스지에 기고한 위의 글에서 선제공격을 추구하고 절대우위를 점하는 미군의 군사력 때문에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이 전쟁 억지력을 갖추기 위해 대량 살상무기 개발로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는데, 북한의 핵 개발도 그렇게 볼 수 있습니까.

“한 나라가 핵을 보유하고자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어요. 북한의 경우는 핵개발을 9.11사태 훨씬 전, 그리고 부시 정부가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시작했죠. 만일 한 정권의 최종 목표가 생존이고, 그 정권이 맞서고 있는 강대국의 주요 안보 정책이 정권교체라면 핵 억제력은 생존의 주요 수단이 될 것이란 사실은 분명합니다.”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피해 온 부시 정부의 태도에 변화가 감지되는데 이 변화가 근본적인 정책의 변화라고 봅니까.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국무부가 주도하던 미국의 전통적 외교 정책이 다른 진영의 실패로 인해 컴백했다는 분명한 신호가 보입니다. 전통적 외교 정책이란 대화를 중요시하며 실용주의적인 접근을 하는 정책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아직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닙니다. 행정부 내부에서 아직은 논쟁이 계속되고 있어요.”

-이라크는’민주주의 확산을 통한 평화’가 실패한 경우입니다. 6자회담 참여국들 중 5개국은 사실상 북한에서’경제적 지원을 통한 평화’를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의 핵 포기와 경제 지원의 교환이라는 방식이 효과를 낼까요.

“북한에 대한 접근 방법은 압력과 대화를 병행한다는 겁니다. ‘쥐어짜면서 대화한다(Squeeze and Talk)’는 방식이죠. 북한 핵실험 후 중국이 평양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나, 미국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을 동결한 것 같은 압력들이 북한 정부로 하여금 대화에 응하고 잠정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북한에 대한 접근법은 핵 프로그램을 돈으로 사들인다는 것입니다.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정상적인 국가로 국제무대에 복귀하게 하고, 경제적으로도 포용한다는 것이죠. 부시 행정부 1기를 지배했던 시각은 악과는 협상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위협을 제거하려면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강경파들의 철학이었죠. 과거 4년 동안 이 철학이 콜린 파월의 포용 정책과 대결해 오다 일단은 포용 정책이 승리한 겁니다.”

-북한의 핵 포기를 경제적 지원으로 살 수 있다고 봅니까.

“확실히 알 순 없지만 역사를 보면 정권이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는지를 북한이 판단해 행동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핵 억제력이 정권의 생존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직접 대화나 체제 보장같이 다른 방법으로 정권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굳이 최종 도박인 핵 보유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시 2기 행정부가 끝나기 전에 이런 단계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는 회의적입니다.”

-수퍼 파워로 부상하는 중국이 막강해진 힘을 대외적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으로 봅니까.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평화적인 역할을 할 만한 강한 유인책이 있다고 봅니다. 경제와 에너지 등이죠. 외부 사회도 같은 이유에서 중국에 정치적.경제적 지원을 해 평화롭게 가도록 협조할 만한 충분한 동기가 있습니다.”

-중국이 경제 발전을 이루면 민주화 요구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텐데 민주화 요구가 중국의 외교 정책엔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까.

“단기적으로 민주화 요구에 의해 내부 혼란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공산당 지도부가 민주화 요구를 다른 쪽으로 돌리려고 민족주의 분출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만과의 양안 관계에서 위기를 조성하면 일본과 미국이 어쩔 수 없이 지역 분쟁에 말려들어갈 가능성도 있어요. 중국 국내 정치에서 민주화 요구가 강하게 일어나면 단기적으로는 예측이 매우 어려운 위험 상황이 올 것으로 봅니다.”

-그간 부시 행정부의 북한에 관한 강경책과 한국 노무현 정부의 민족자주 노선은 한.미 양국 간에 오해와 마찰을 불러왔습니다. 이는 양국 정부가 동맹관계의 관리에 실패한 결과인가요, 아니면 두 대통령 간의 노선 차이 때문인가요.

“두 나라 정부에는 이데올로기적으로도 분명한 노선 차이가 있습니다. 양쪽이 의견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한.미 양국의 합의로 2012년이 되면 6.25 이후 50여 년 만에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옵니다. 장기적으로 이 문제가 동북아시아 안보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동맹의 조건이 바뀌고 발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이 스스로의 안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자 하는 요구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방향으로 안보 동맹이 바뀌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환영할 수 없는 것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벌주려는 의도에서 전작권 전환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또 동맹관계의 중요성 자체를 무시하거나 줄이려는 시도도 안 됩니다. 앞으로도 한.미 양국은 안보적으로 같은 배에 타고 있을 겁니다. 두 나라의 이혼은 안 됩니다. 나는 전작권 전환의 세세한 합의조건보다는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동기나 충동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귀하는 이번 서울 국제포럼에서 인권혁명으로 국가 주권이 쇠퇴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인권 개입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인권 개선이 미국 외교 정책의 근간이어야 한다는 강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인권 추구로 인한 긍정적인 결과도 많았어요. 소련 연방 국가들의 인권 탄압에 대한 관심이 냉전에서 자유주의 진영의 승리로 귀결되기도 했지요. 그러나 인권을 강조하는 노력이 실패를 자초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너무 폐쇄된 국가입니다. 내부에 인권 단체가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들 단체와 공동 보조를 취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에 대한 압력이 유일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북한 정부가 인권 상황을 개선할 가능성이나, 개방을 추구할 가능성도 작습니다. 그래서 북한 정부에 인권 압력을 강화하는 노력은 자멸적(Self-defeating)이 되는 것입니다.”

-인권은 과연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 간섭을 정당화할 만큼 보편적인 가치입니까.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라고 봅니다. 그런데 ‘인권 침해가 다른 국가 내정에 간섭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가’란 질문은 또 다른 복잡한 문제입니다. 인권 침해 사례를 몇 건 알아냈다고 해서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인권 침해에 대응할 수 있는 국제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고, 각 국가에 인권을 존중하도록 좀 더 실용적인 압력을 넣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장기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봐요.”

-귀하는 미국이 북한의 정권 교체를 노리기보다는 핵 확산을 막는 과거의 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이 최후의 저지선(red line)을 후퇴시켜 북한의 핵 수출 저지에 주력하라는 겁니까.

“선택 가능한 방안 중 일부입니다. 억제와 봉쇄가 북한 같은 국가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쥐어짜면서 동시에 대화하는 방법으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없다면 봉쇄 정책이 유일한 대안일 수 있어요. 만약 6자회담 등의 협상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지역적 협력을 통한 봉쇄 정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공격받은 북한이 남한에 즉각 보복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력 사용보다는 봉쇄 정책으로 돌아가는 게 차선책입니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아이켄베리는 …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로 국제관계.외교 분야의 전문가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을 ‘신제국주의’라며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시카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조지타운대와 펜실베이니아대 강단에도 섰다. 1990년대 초반엔 국무부에서 근무했다. 브루킹스연구소.외교관계협의회(CFR) 등 주요 싱크탱크와 민간 연구소에도 몸담았다. ‘승리 이후'(2001)는 미국 정치학회가 가장 뛰어난 국제 역사.정치학 책에 주는 ‘슈뢰더 저비스’상을 받았다. ‘경쟁자 없는 미국'(2002),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와 제국주의 야망'(2005)도 그의 주요 저서다.

정리=최지영 기자 / 사진=오종택 기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