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변수’ 정계개편 촉매제 되나

차기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새판짜기 논의를 일거에 날려버린 북핵실험 파문이 역설적으로 정계개편을 가속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지난달 열린우리당 김근태(金槿泰) 의장과 고 건(高 建) 전 총리 등의 잇단 정계개편 불가피론이 제기되면서 후끈 달아올랐던 정치권의 합종연횡 담론은 북핵파문의 와중에서 수면 위에서 자취를 감춘 형국이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북핵파문은 정치권 제정파의 이념적 좌표와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제공함으로써 내년 대선을 앞둔 정계개편의 핵심 키워드인 `지역과 이념’에서 이념코드가 맞는 집단끼리의 동류화 인식을 강화해 줬다는 지적이다.

대북 포용정책의 유지여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확대를 포함한 대북제재의 수위, 남북간 교류협력 사업 지속문제 등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대응방식을 놓고 제정파와 대선주자군의 이념과 철학에 맞춰 교통정리가 이뤄질 개연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각 정당과 정치세력의 입장은 종국적으로는 내년 대선에서 이들이 표방할 대북정책과 궤를 같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북핵파문은 대선정국을 관통하는 중요한 변수로 계속 작용할 공산이 커 보인다.

우선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이 “한반도 무력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대북 제재조치에 반대한다”는 `온건론’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무엇보다 한미동맹 강화에 무게중심을 두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조치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주도하고 있다.

한때 정치권 일각에서 무성했던 `한-민공조(한나라당-민주당 공조)’는 지역적 외연을 보완하는 의미있는 결합이 될 가능성이 엿보였지만, 이처럼 이념적 괴리를 좁히기에는 양측의 거리가 크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열린우리당 최재성(崔宰誠) 의원은 1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안보문제를 정치공세로 이용하는 한나라당의 태도는 잘못됐다”며 “전쟁이냐, 평화냐의 갈림길에서 대북 포용정책을 힘있고 소신있게 추진해 나갈 때 평화세력이 대결집하는 정계개편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해 안보를 코드로 한 짝맞추기가 불가피할 것임을 주장했다.

여야 내부로 눈을 돌려보면 상황은 여당 쪽이 오히려 가변적이다.

핵을 손에 쥐게된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서 한나라당은 진보성향의 고진화(高鎭和) 의원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강경대응 기조의 당론에 있어서 일사불란함을 보이고 있고, 이명박(李明博) 전 서울시장,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 손학규(孫鶴圭) 전 경기지사 등 `빅3′ 대선주자들의 시각에서도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권내에서는 북핵 대응을 놓고 재야 출신, 386 그룹 등 진보진영의 생각과 전문가 집단으로 분류되는 중도.우파간의 의견차이와 내재된 갈등이 감지되는 분위기이다. 북핵위기가 자칫 여권발(發) 정계개편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여당내 재야파를 이끌고 있는 김근태(金槿泰) 의장은 “무력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PSI 확대참여는 절대 안된다”면서 외교당국의 PSI 참여확대 검토 방침에 제동을 걸었고, 이달초 귀국한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도 “포용정책의 틀을 흔들어선 안된다”며 대체로 김 의장과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여기에다 재야 및 386 출신을 주축으로 한 여당 의원 77명이 13일 포용정책 유지와 PSI 참여확대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힘을 보태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중도.보수성향 의원들을 중심으로 여당이 정부와 지나치게 대립각을 세우거나 미국, 일본 등 우방과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전폭적인 지지를 유보한 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여당 핵심당직자는 15일 “지난 13일 오전에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정장선(鄭長善) 김부겸(金富謙) 비상대책위원, 강봉균(康奉均) 정책위의장, 원혜영(元惠榮) 사무총장 등이 미국과 일본에 대해 강한 표현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양형일(梁亨一) 의원 등 당내에 이 문제를 고민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범여권 주자의 한 사람인 고 건(高 建) 전 총리는 대북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추진을 중단해야 하며 비상안보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등 다소 `보수적인’ 해법을 내놓고 있는 점은 여권내 중도.보수파의 지지를 견인해낼 개연성도 있어 보인다.

북핵위기와 정국의 상관관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지지기반을 공유하고 있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텃밭민심 쟁탈전이다.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이 지난 11일 전남대 강연에서 “햇볕정책 실패론은 해괴한 이론”이라며 포용정책 유지 필요성을 강조한 것을 놓고 여당내에서는 “DJ가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며 찬성하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원칙없이 오락가락하는 현 정부의 포용정책은 다르다”며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호남과 진보성향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우리당과 민주당의 경쟁이 북핵대응 문제를 계기로 표면화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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