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11월 29일~12월2일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방한 → 12월 1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6자 회담 참가국 정상에게 보내는 서한 작성 → 12월 5일 힐 차관보, 박의춘 북한 외무상에게 부시 친서 전달 →12월 6일 조선중앙통신, 부시 친서 전달 소식 타전.
북한이 6일 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공개한 직후 북핵 현안에 정통한 정부 당국자는 기다리던 북한 반응이 나오자 밝은 표정을 지었다.
전세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 ‘부시 친서’가 나온 데에는 승부사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역할도 컸지만 북한을 잘 아는 한국측의 조언도 한몫 했다는게 외교가의 반응이다.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에 도착한 힐 차관보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는 의장국 중국이 12월 첫째주말 베이징에서 비공식 6자수석대표회담 개최를 추진하고 있음을 확인한 뒤 북핵 신고 문제가 최대 현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포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신고는 핵심적인 작업이자 중요한 이정표(milestone)”라고 말하면서 방북하게 되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신고 문제를 포함, 연말까지 북.미가 서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취재진이 방북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할 조지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가져왔느냐는 물음에 “어떤 편지도 가져가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후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과 만난 힐 차관보는 친서와 관련된 어떤 얘기도 하지 않았다. 기자들도 그가 이미 ‘부시 친서를 가져가지 않는다’고 확인했기 때문에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소식통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힐 차관보는 천 본부장 등 한국측 협상 파트너와의 협의 과정에서 친서의 `효용성’ 등을 내밀하게 타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가 서울에서 11월29일부터 12월2일까지 비교적 장기 체류한 것도 `친서’와 관련한 한.미 협의가 가능했던 요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자리에서 한국 당국자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사실상 모든 것을 결정하는 북한 체제의 속성을 집중적으로 설명했고 그동안 북한과의 협상에서 이를 체득하고 있던 힐 차관보도 충분히 공감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힐 차관보는 북핵신고 국면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비핵화 및 북미관계 정상화와 관련한 부시 대통령의 의지를 친서로서 직접 전달하는 것이 김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하고 설득하는 유효한 방안이라고 판단하게 됐고 상관인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에게 보고하는 등 즉각 실행에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북핵 협상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며 부시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힐 차관보 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북한을 포함해 6자회담 참가국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친서 형식이 채택됐고 가장 먼저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하기로 미국 정부가 결정했다는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친서는 힐 차관보가 방한 중이던 지난 1일 작성됐다고 고든 존드로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이 이날 연합뉴스에 확인했다.
한.미 양국 당국자들은 친서와 관련, 극도로 보안에 신경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힐 차관보의 방북이 사전에 한국 언론에 노출된 것이 보안수준을 더욱 높인 요인이 됐다는 후문이다.
정부 소식통은 “힐 차관보가 지난달 29일 당시 대통령 친서를 휴대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일각에서 그가 거짓을 말한 것처럼 전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게 전개됐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정상 간의 친서는 매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외교수단”이라면서 “이제 공이 북한에 넘어간 이상 김정일 위원장의 화답과 신고 문제에 대한 극적인 결단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