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양보’ 발언과 향후 한반도 정세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는 언급과 함께 남북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9일 울란바토르 발언이 향후 한반도와 주변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상회담의 경우 북핵 문제와 연계한다는 종전과는 달리 ‘조건’을 붙이지 않고 일단 하자는 것이어서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미국과 일본 등의 주변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 지도 관심거리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이러한 대북 유화책이 위폐와 마약, 탈북자 수용, 요코다 메구미씨 사건 등을 소재로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미ㆍ일 행정부와 충돌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우려의 시각도 내놓고 있다.

시기적으로 다음 달에 김대중(金大中. DJ) 전 대통령의 방북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예정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일단 노 대통령의 울란바토르 발언은 이를 지원하기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발언에는 ‘많은 양보’를 통해서라도 답보 상태의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미 행정부에는 ‘압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미 행정부가 북한을 향해 위폐, 인권 압박이라는 채찍을 든 것과는 달리 한국이 ‘많은 양보’라는 당근을 수단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려 한다는 데서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노 대통령의 울란바토르 발언은 동포 간담회에서 참석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이미 ‘정리된’ 구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작금 북핵문제와 관련해 북미간 대결이 계속되고 있어 한반도 정세가 좋지 않고, 그래서 한국이 중간에 끼어 뭘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간 신뢰에 바탕을 두고 미국을 설득하는 방안을 찾으려는 차원에서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종전 정부의 대북정책의 기본 방침이 북핵 해결과 남북관계 의 ‘병행론’이었다면 9일 노 대통령의 울란바토르 발언은 병행이 불가능하다면 어느 한 쪽이라도 진전을 시켜 다른 한 쪽을 끌도록 하는 ‘견인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최근 청와대에서 집중적인 토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폐와 마약, 인권 등 현안과 관련한 북미간 대결로 인해 북핵 6자회담이 장기적인 교착상황으로 치달아 자칫 대화의 모멘텀 마저 상실될 수 있는 작금의 위기상황에 대해 통일, 외교, 안보 당국자들이 난상토론을 벌였고 여기에서 병행론에서 견인론으로의 방향 전환에 의견이 모아졌다는 것.

노 대통령의 울란바토르 발언이 현재의 북핵 교착을 푸는 승부수라는 시각도 있다.

북핵 6자회담이 미국의 마카오 소재 중국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건과 관련한 대북 금융제재, 탈북자 문제 직접 개입을 통한 대북 인권 압박과 그에 대한 북한의 반발 등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재개와 진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 ‘많은 양보’와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언이 나왔다는 것.

사실 작년 연초에도 6자회담의 장기 교착으로 시작해 난데없는 북한의 2.10 핵무기 보유국 선언과 그로 인해 북미가 팽팽히 대립했지만 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통한 6.10 정상회담과 그에 이은 6.17 정동영-김정일 평양 면담으로 분위기가 반전돼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담은 ‘9.19 공동성명’으로 이어진 바 있다.

정부는 북미간 대결이 구조화돼 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특히 미국내에서 대화를 통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는 ‘협상파’의 입지가 좁아지는데 주목하고 있다.

때문에 현재의 교착상황을 돌파하려면 무엇보다 북핵 6자회담이 조기에 재개돼 진전을 이뤄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방법론적으로는 북한을 설득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다음달로 예정된 DJ 방북에서도 북핵 6자회담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논의가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적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모멘텀 유지 차원에서라도 회담에 가능한 빨리 복귀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9.19 공동성명’ 마저도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교수는 “현실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은 북한의 양보”라고 강조하고, “그러나 그 양보는 미국의 압박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며 한국이 나서서 설명하는 게 필요하며 DJ 방북을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북미간 대립으로 인한 북핵 교착 정국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그런 대로 우호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지난 달 제18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도 북측은 국군 포로 및 남북자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하는 등 남측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해 눈길을 끌었으며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 당국간 대화에도 적극적인 의지를 비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울란바토르 발언이 북한 측과의 ‘교감’ 속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2000년 6.15 정상회담의 약속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이 DJ 방북을 수락해 ‘1.5 정상회담’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도모하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 아니냐는 추론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지난 달 9∼13일 도쿄(東京)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 회의에서 끝내 불발되기는 했지만 북측은 당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회동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우리측에 요청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어떤 양자채널보다도 남북간 채널이 잘 가동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노 대통령이 ‘많은 양보’를 언급한 것도 북측과의 교감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실제 북한 내에는 군부를 중심으로 개성과 금강산 개방 결단에도 불구하고 남측은 해준 게 무엇인가라는 강한 반발 기류가 있으며 반대급부 제공 차원에서 노 대통령의 ‘많은 양보’ 발언이 나왔다는 분석이 그 것.

노 대통령이 “(북한이) 개성공단을 열었다는 것은 소위 옛날식으로 말하면 남침로를 완전 포기한 것이며 금강산도 서로 싸움하면 대단히 중요한 통로인데 열었다”고 북한의 변화를 강조하며 “우리도 믿음을 내보일 때가 됐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어 보인다.

이미 노 대통령은 울란바토르 발언을 통해 대북 메시지를 전했고 그에 대한 북한의 반응만 남았다는 점에서, 이제 국내외의 시선은 다음달 DJ 방북에 모아지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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