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DJ 구명’ 문서공개 의미

김대중도서관이 6일 처음 공개한 1980년 ‘김대중(DJ) 내란음모사건’ 직후 미국의 DJ 구명운동을 보여주는 여러 기밀문서는 미국의 정치적 고려가 구명운동에 짙게 깔려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런 정황은 그 동안 국내 현대사학계에서 이미 ‘사실’(史實)로 인정되고 있지만 이번 김대중도서관의 문서 공개로 당시 백악관의 의도와 신군부가 정권의 정당성을 걸고 미국과 ‘거래’를 시도해 ‘성공’한 과정이 더욱 명확해졌다.

이날 공개된 문서는 DJ가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인 1980년 9∼11월 백악관과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비망록, 한국 한국 정세분석 최고위 비밀정책팀인 ‘체로키’의 비밀문서로 당시 미국 수뇌부의 DJ 구명운동에 대한 의중이 담겨 있다.

1980년 5월17일 전두환씨를 위시한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5ㆍ17조치를 단행하면서 DJ와 문익환 목사 등 26명을 구속, 7월31일 내란예비음모 등 혐의로 군법회의에 기소했다.

DJ는 그 해 9월17일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미 백악관 수뇌부의 적극적인 DJ 구명운동 이유는 1980년 10월20일 대통령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이희호 여사의 DJ 구명편지를 받고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브레진스키는 이 편지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이곳(백악관)의 구명문제에 대한 사정을 살피려 장교를 보냈다. 그에게 ‘김(DJ)가 사형을 당하면 미국내 수많은 단체가 항위시위를 분출할 것이며 이렇게 되면 북한에만 혜택이 돌아갈 것’을 명확히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군부는 DJ의 목숨을 담보로 백악관에 ‘거래’를 위한 밀사를 보냈고 백악관은 ‘인권’을 구실로 DJ의 감형을 요구하는 막후접촉을 벌였던 것.

당시 한국의 정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당한 뒤 소용돌이에 빠져 12ㆍ12 군사반란,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종교계 등 전세계 인권옹호세력의 관심과 비난의 초점이었고 한국의 대표적인 재야 민주인사로 국제적인 지명도가 있었던 DJ는 군사정권의 ‘희생양’으로 인식된 상황이었다.

군대를 동원한 폭압적인 5ㆍ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던 백악관은 전두환 정권이 ‘DJ 사형’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오자 사정이 복잡해졌다.

사형을 묵인하자니 이 편지의 예측과 같이 국내 인권세력의 반발에다 군사반란 으로 집권한 신군부를 인정하는 셈이 되고 그렇다고해서 신군부를 ‘민주주의’, ‘인권’을 명분으로 몰아내자니 내정간섭이라는 외교적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군부를 퇴출했을 때 이를 대체할 만한 정치세력이 없어 북한의 위협과 한국의 질서유지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도 백악관의 고민거리였다.

정권의 정당성과 미국의 ‘승인’이 절실했던 신군부도 ‘DJ 사형’이라는 카드를 쥐고 표면적으로 미국의 ‘인도적 결정’을 유도, 결국 한미관계 정상화라는 목적을 달성했다.

사실상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를 받아들인 백악관도 이 부담을 덜기 위해 ‘정권 승인’이라는 카드로 DJ의 감형을 신군부에 요구하며 뒤늦게나마 명분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는 한ㆍ미간 거래였지만 이날 공개된 문서에서 미국은 ‘인도적’이라는 단어를 한결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김대중도서관 측은 “한국 군사정부가 정권안보를 위해 미국과 은밀히 DJ구명문제를 놓고 거래했음이 확인됐으며 미국도 한국의 인권이나 민주주의보다 안정과 질서를 확보하려고 구명운동에 나섰다”고 의미를 설명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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