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상봉] ‘통역’으로 나선 아들·며느리

“뭐라고, 뭐라고 하는 거야”, “아버지가 월남자라고 해서 이남에서 해를 받지 않았느냐 하는 말이에요”

15일 대한적십자사 본사의 화상 상봉장에 나온 안석준(99)씨는 북쪽에 두고 온 딸 진애(77)씨와 아들 진근(62)씨를 침대에 비스듬히 앉은 채 맞았다.

70세 때 중풍에 걸려 몸이 불편하고 귀도 어두운 안씨는 북쪽의 아들이 화상상봉에 앞서 보내준 북쪽 부인의 사진을 보면서도 누군지 모를 정도로 연로한 상태.

“그건 어머니 사진이에요”라는 북쪽 아들의 말을 안씨가 알아듣지 못하자 남쪽에서 재혼한 부인과 사이에서 자란 딸 선화(52)씨가 “본처, 아버지 본처에요. 아버지가 매일 얘기하셨잖아요”라고 수차례 설명하며 ’통역’을 자처했다.

북쪽의 아들 금수(59)씨와 며느리 김영희(52)씨를 화상으로나마 보기 위해 한적 본사를 찾은 남쪽 아버지 박신범(98)씨도 침대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어눌한 박씨의 말을 금수씨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자 금수씨의 남쪽 이복동생인 성복(51)씨가 아버지 말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 주고, 형의 말을 다시 아버지에게 큰소리로 얘기해 줬다.

휠체어를 탄 어머니 김경순(92)씨를 모시고 온 아들 병순(61)씨도 북측의 막내 이모 애실(66)씨와 조카 영희(45)씨의 얘기를 김씨에게 큰 소리로 설명해 주며 통역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이날 한적 화상상봉장에 나온 남측 이산가족 1세대들은 모두 90대의 고령자들.

대면상봉이 이뤄지는 금강산까지 올라가기 힘겨운 고령자들이 자택과 가까운 곳에서 북측 가족, 친지들을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 맞춰 화상상봉 대상자가 선정됐기 때문이다.

한적 관계자는 “북쪽 이산가족들이 남측 가족을 찾아 상봉을 요청해도 나이가 많아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산가족 1세대들이 점점 연로해지는 상황에서 조속히 상봉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