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급제 논란’ 탈북자 분석] “주민의 입, 국가 직접통제”

▲ 식량을 받기 위해 줄 선 주민들 <사진:연합>

지금 북한에 “10.1일부터 배급망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라”는 내각 전화지시문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부 지시사항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내각에서 농업성과 양정총국간 올해 농사작황과 관련하여 회의 소집, 각 도 시 군의 양정부문 일꾼들에게 배급소를 정비할 데 대한 지시가 내려졌다”고 말했다.

DailyNK 중국 취재팀과 만난 북한 무역업자들은 “9월부터 식량공급을 ‘정상화’하려고 한다”고 언급, 북한의 식량공급 체계에 중대한 변화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이번 내각 지시문을 둘러싸고 식량 안정세 회복인가, 아니면 시장경제 후퇴냐로 여론이 분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당국이 식량공급체계를 변화시켜 주민 내부결속과 체제안정을 찾으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식량으로 주민 ‘입’ 통제

북한이 ‘먹는 문제’를 장악하여 주민들을 다스린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김일성은 ‘인민생활을 책임지는 것이 노동당의 최고 목표’라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배급제에 의한 식량공급체계를 만들어 놓고, 식량을 매개로 농간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엄하게 처벌했다.

90년대 중반 식량난 이후 주민들의 자본주의적 생활영역이 확산되었다. ‘너(김정일)를 믿다가는 다 죽는다’는 개인주의 의식이 전 사회에 만연했다. 결국 김정일로부터 주민들이 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일은 이러한 현상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2002년 7월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실시, 주민들의 임금을 올리는 등 새로운 시장경제체제를 시도했으나, 장마당 물가는 폭등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북한당국은 식량공급체계를 장마당 공급 중심에서 다시 국가공급 중심으로 바꾸어 국가가 ‘먹는 문제’를 다시 통제함으로써 주민 내부단속을 하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전통적인 배급제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주민들에게 직접 쌀을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주민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 김정일 정권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주민결속이다. 평양에서는 김정일을 찬양하는 대집단체조가 계속 열리고 있으며, 과거와 달리 지방 주민들까지 공연에 동원하고 있다. 10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집단체조 공연을 4백만 명 이상이 볼 것이라고 한다.

식량공급체계 더 혼란스럽게 될 수도

90년대 중반 식량이 기본 장사품목으로 등장하면서 사재기, 되거리(식량을 다시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 지원미 부정반출로 식량 농간이 많아졌다. 장마당에서 식량과 물건을 막 바꾸는 등 옥수수는 물건의 가치를 평가하는 ‘북한산 달러’와 같이 취급될 정도였다.

최근 10년간 북한 곡물 생산량 (자료:FAO,WFP)
1995-1996
407만 7천 톤
1996-1997
287만 4천 톤
1997-1998
283만 8천 톤
1998-1999
378만 3천 톤
1999-2000
342만 1천 톤
2000-2001
257만 3천 톤
2001-2002
365만 7천 톤
2002-2003
396만 9천 톤
2003-2004
415만 6천 톤
2004-2005
?

북한주민들이 한해 먹는 양식은 군량미를 제외하고 하루 1만 톤(95년 기준)가량으로 보고 있다. 주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일년에 360만 톤 이상의 식량이 있어야 한다. 03-04년 식량 생산량을 보면 415만 6천 톤(WFP 자료)으로서 군량미를 빼고 모자라는 식량은 89만 톤 수준으로 추산됐다.

식량공급을 정상화 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자면 가능한 양 만큼의 계산이 나와야 한다. 북한의 공식적인 경지면적(국가에 등록된 쌀 생산 토지)은 약 200만 정보, 90년대 중반 홍수와 산림황폐화로 인해 경지면적이 적지 않게 유실되었다. 경지면적이 적지 않지만 한해 생산량은 정보당 1톤도 못 나오는 곳이 많다.

이번 식량 생산이 작년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타산은 남한의 50만 톤 비료지원이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마철이 지나면서 농사작황도 자연기후의 영향을 더는 받지 않을 것을 본 것이다.

앞으로 국제사회의 지원미도 북한당국이 주요 독점판매 자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올해 북한에 제공된 식량은 남한의 50만 톤을 포함, 중국 15만 톤, 미국 5만 톤, 국제기구 10만 톤 등이다.

북한당국은 중국, 러시아와 공조를 강화하면서 핵 문제를 둘러싸고 더 많은 식량지원이 있을 것으로 타산하는 듯하다. 그러나 식량비축이 없는 북한의 실정상, 불투명한 내년 식량생산과 불규칙적인 국제사회의 지원이 식량공급정책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한영진 기자 (평양출신 2002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