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특파원 3개월 추적⑤] 北 온성진료소 소장 부부의 ‘엽기행각’

▲ 진찰중인 북한의 의사. (기사내용과는 무관)

“시, 군급 병원이나 지방 진료소에는 약이 없습니다. 의료기구라고 해봐야 외과용 수술도구 뿐입니다. 맹장염이나 급성출혈, 골절상 같은 경우는 환자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마련해 병원을 찾지만 고열, 소화기 장애 등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국가에서 배급을 주지 않으니 의사들은 외과수술이라도 해서 환자들에게 돈을 받을 수 있는데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으니 의사들도 먹고 살기 힘들어요. 그래서 직장을 옮기거나 장사에 나서게 되니 병원은 텅텅 비는 것이죠.”

“일제 때만도 못한 의료수준”

지난 4월 탈북, 현재 연변자치주 룽징(龍井)에 거주하고 있는 전직 의사 김명철(가명)씨는 “병원에 약도 없고, 의사도 없고, 환자도 없다”며 “지금 북한의 의료수준은 일제시대만도 못하다”고 말했다.

또한 김씨는 “국가에서는 ‘사회주의 의학은 예방의학이다’는 김일성의 교시를 앞세우고 있지만 예방의학은 커녕 급성 환자들에게 초보적인 응급처치 체계까지도 완전히 망가졌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요즘 조선(북한)에서 의사를 찾는 사람들은 딱 세가지 부류인데, 첫째 부류는 낙태를 하려는 여성들, 둘째 부류는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장기 여행에 나설 생각으로 ‘가짜 진단서’를 만들려는 사람들, 셋째 부류는 전쟁대비용 의약품과 간부용 비상약품을 제대로 확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돌아다니는 ‘6.24 검열 그루빠’ 사람들뿐”이라고 말했다.

북한주민들은 김일성 사망 직후부터 병원이나 진료소들이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의사’나 ‘보건일꾼’을 대하는 태도까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 의약품, 수술기구를 비롯해 난방이나 먹거리까지 환자들이 직접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닥치면서 일반 주민들에게 병원의 문턱은 갈수록 높아져 갔다. 이제 북한에서 병원, 진료소는 당간부들이나 국가일꾼, 부유층들이나 찾을 뿐이다.

온성군 삼봉 A 진료소장 부부 희대의 엽기행각

생활곤란에 닥친 의사들의 부정비리가 갈수록 늘어날수록 의사라는 직업의 명예도 땅바닥에 곤두박질 치고 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약품들을 빼돌려 잇속을 차린다’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하고,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턱도 없이 비싼 돈을 요구한다’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보통 의사들이 1회 왕진비용으로 요구하는 돈은 지역에 따라 북한 돈 5천원에서 1만원 사이며, 맹장 수술 같은 외과수술은 북한 돈 2~3만원에 달하는 현금이나 물품을 요구한다. 일반 노동자가 약 1달 동안 ‘병가휴가’를 받을 수 있는 진단서를 끊는데 북한 돈 5천~1만원 정도다.

지난해 가을 함경북도 온성군에서는 삼봉 A진료소 소장 부부가 빚어낸 희대의 엽기 사건이 주민들의 입방에 오르내렸다.

A진료소 소장은 낙태 수술로 유산시킨 태아 사체를 모아 삼봉세관의 고위 간부로 근무하던 아내를 통해 중국의 밀수업자들에게 내다 팔았던 것. 중국 일부 농촌지역에서는 간질, 결핵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낙태한 태아가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는 풍습이 퍼져 있다.

2년 동안 십 수 차례 불법거래를 해온 A진료소 소장 부부의 엽기행각은 삼봉 주민들의 신소를 통해 온성보위부에 포착되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북한 돈 170만원을 온성보위부에 바친 덕에 재판도 받지 않고 20여일 만에 풀려났고, 소장의 아내는 여전히 삼봉세관에서 근무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국 원조 의약품, 주민들 비싼 돈에 구입

병원과 의사를 찾지 않는 주민들은 모든 것을 장마당에서 해결하고 있다.

대부분 주민들은 의사를 찾지 않고 장마당의 약장사들에게 증상을 상담하고 약을 구입한다. 장마당의 약장사들은 라진, 원산, 신의주, 남포 등의 도매상들에게 약을 구입해 오거나, 중국 여행자들이나 장사꾼들로부터 약을 제공 받는다. 주민들의 주장에 따르면 도급(道級)병원이나 대학병원 등에서 몰래 빼돌려지는 약들도 장마당에 흘러 들어간다.

장마당에 팔리는 대부분의 약은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중국산 저가 약품들이며, 약 장사들은 의약품의 포장 상태에 따라, ‘한국 약’ ‘유엔 약’ 등으로 분류한다. 보통 한국산 약으로 불리는 것들이 가격이 제일 높고, 중국산 약들이 가장 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주민들이 가장 애용하는 약인 중국산 진통제 ‘정통편’은 1알에 북한 돈 70~100원이다. 중국산 페니실린 주사약은 조선돈 200~300원, 원조물자로 들어온 페니실린 주사약은 북한돈 700~800원까지 나간다. 중국산 감기약 ‘청평풍’은 1알에 조선돈 10~15원, 식염수는 20~40원, 포도당은 농도에 따라 650~900원 사이에 판매되고 있다.

가정용 의료 기구는 혈압기와 청진기 2개 1세트에 북한 돈 2만5천원, 자석 달린 부황기 1세트는 북한 돈 1만원, 중국산 침통 1세트에 300원 이상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정부는 대북보건분야 지원을 위해 남북경협기금에서 매년 1천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는 올해 북한의 결핵퇴치 사업에만 110만 달러를 지원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끝).

김영진 특파원kyj@dailynk.com
권정현 특파원kjh@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