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D-30] 북핵과 한반도 정세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과 북한 핵문제는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에 부산 APEC정상회의가 한반도 정세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쏟아지고 있을까.

APEC은 설립 취지가 역내 경제성장에 기여해 궁극적으로 지역 경제공동체를 추구하자는 것인 만큼 의제도 무역ㆍ투자 자유화와 기술ㆍ경제 협력이 주류였다.

이 때문에 북핵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북핵이 역내 최대 현안인 동시에 원활한 경제협력을 저해하는 불안정 요인이라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왜 APEC이 북핵에 중요 변수가 되는지를 알 수 있다.

북핵 6자회담에 참가하는 6개국 가운데 북한을 뺀 5개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마당은 APEC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양한 형태의 양자 및 다자간 정상외교를 통해 막힌 정세를 뚫고 새 흐름을 만들어 나가기에는 더없이 좋은 자리인 것이다.

그렇기에 북핵 문제는 APEC 정상회담에서 이번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간 APEC 정상회담에서도 정상들의 공동의 목소리로 발표되는가 하면, 한미일이나 한미, 미중 등 다양한 양자회담 기회를 통해 해마다 북핵 메시지가 나왔다.

2002년 10월 북핵 문제가 불거진 지 열흘만에 멕시코의 로스 카보스에서 열린 제10차 APEC에서는 정상들의 특별성명이 나왔을 정도였다. 정상들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고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결의한 것이다.

이는 선언적이기는 하지만 북핵 위기 초기에 긴장과 혼돈이 뒤섞인 상황에서 북핵의 큰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2003년 방콕과 2004년 산티아고에서 열린 APEC에서도 활발한 양자접촉을 북핵 협상의 조속한 재개나 평화적 해결 원칙에 대한 입장이 정상들의 입을 통해 나왔다.

방콕회의 때는 한미정상회담 자리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다자 틀내 대북 안전보장 의사를 밝히면서 북한의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낸 적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 부산 APEC은 종전과는 왜, 어떻게 다르기에 올 연초부터 북핵 해결의 기대를 모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을 지 궁금증을 낳고 있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올 1월29일 베를린에서 “부산 APEC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국제적으로 선언하는 역사의 순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일찌감치 이번 부산 APEC 정상회의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하루 뒤 다보스포럼에서 “APEC 전에 6자회담이 성과를 축적해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면 탈냉전의 역사적 상상력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은 APEC이 새 역사 창조의 장이 돼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 표시로 읽혀졌다.

APEC이 북핵의 파고를 넘어 한반도 냉전 해체와 평화체제 구축, 나아가 동북아 평화와 안정이라는 역내 최대 관심사에 대한 전환점이 되기를 희망한 것이다.

이런 기대의 바닥에는 북핵 해결에 주도적, 창의적 역할을 해 온 우리 정부가 이번에는 APEC 의장국이라는 점이 깔려 있었다.

우리측은 한때 북한의 정부 대표까지 초청, `작품’을 한 번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이러 저러한 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한 상태이다.

이 같은 기대와 의지에 부합하듯 지난 2월10일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과 함께 대결로 치닫던 북핵 문제도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 5월 남북대화가 다시 열리고 북한의 핵포기시 북미간 보다 정상적인 관계 를 약속한 6월10일 한미정상회담, 6월17일 정동영 장관-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등을 통해 13개월만인 7월말 6자회담이 재개되고 9월19일에는 공동성명이 나왔다.

이에 맞춰 한반도 정세도 종전 APEC정상회담을 앞둔 시점과는 달라졌다.

2002년 APEC이 핵문제 발발 직후 열렸고 2003∼2004년은 6자회담이 진전을 보지 못한 `막막한’ 상황이었던 반면 이번에는 6자간 `9.19 공동성명’이라는 성과의 바탕 위에 정상들이 모인다는 점에서 가장 차이가 크다.

이런 흐름은 마치 APEC정상회의라는 정점을 향해 달려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6자간 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를 재확인하고 북한의 핵포기와 다른 참가국의 상응조치를 명시했고 북미ㆍ북일 관계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별도의 포럼을 추진하자는 내용까지 담아냈기 때문이다.

종전 APEC이 6자회담에 시동을 걸거나 상황 악화 방지에 주력했다면 이번에는 가속페달을 밟거나 진전을 도모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가능해졌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이번 APEC에서는 참가국 정상들이 9.19 공동성명의 성과를 확인하는 동시에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공감대를 마련하지 않겠느냐는 낙관적인 전망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기회에 국제적으로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확인하고, 한반도 냉전구도의 해체를 넘어 평화체제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한다면 정부의 한반도 평화 이니셔티브가 정상들의 한 목소리로 공인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인 것이다.

아울러 평화체제 구축과 함께 맞물릴 수도 있도록 정부가 구상하는 북방경제 추진을 위한 밑그림도 제시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이번에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부시 미 대통령 등과 별도의 정상회담을 준비 중이어서 평화체제 협상 출범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APEC정상회의 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후 주석의 방북 가능성을 점치고 있으며 북일 관계의 진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의 모습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신중해 보인다.

이는 APEC 정상회의에 앞서 11월초 제5차 6자회담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적 상황은 APEC 때 이뤄질 북핵 논의의 방향을 예상하기 어렵게 만들고 그에 따른 불확실성은 오히려 종전 APEC보다 더하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정부 당국자도 “제5차 6자회담의 향방이 APEC 상황을 좌우할 것 같다”고 말했다.

9.19 공동성명을 통한 `공약 대 공약’ 합의의 바탕 위에 이를 실천하기 위한 `행동 대 행동’을 5차회담에서 구체화해야 하지만 이행방안 합의는 4차회담의 공동성명 합의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성명 발표 다음 날부터 경수로 제공 문제를 놓고 북미간에 현격한 시각차이를 드러낸 것은 이런 관측이 억측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이다.

이런 상황 탓에 5차 회담이 잘 풀린다면 우리 정부가 APEC을 통해 북핵을 넘어 평화체제 논의까지 꺼낼 수 있겠지만,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정상외교를 통해 돌파구 모색에 주력하는 양상을 띠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정부 관계자는 “APEC정상회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성과를 거두려면 11월초 베이징에서 열리게 될 제5차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합의돼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5차 6자회담이 APEC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다 예정대로 열리더라도 `끝장 토론’으로 간다면 APEC 기간에 맞춰 휴회할 수도 있어 이번 정상회의에서 어떤 그림이 그려질 지는 6자회담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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