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성명 2주년] 北 핵포기 결단했나

지난해 10월 핵실험 이후 북한은 북핵 6자회담과 관련,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는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9.19 공동성명에 따르는 행보를 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행보와 관련, 북한문제 전문가인 길정우 박사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갖고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은 북핵 위기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고, 게다가 북미관계 정상화라고 하는 한걸음 더 나아간 논의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말의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은 올 들어 2.13합의에 따라 영변 5MW 실험용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등의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검증단의 방북을 허용하고 폐쇄 절차에 들어갔다.

북한은 특히 불능화 문제와 관련, 미.중.러 3국 핵기술팀의 방북을 먼저 제안하고 이례적으로 판문점을 통한 입북을 허용했을 뿐 아니라 영변 원자로 등 핵심시설의 설계도면까지 보여주는 등 불능화 의지를 과시했다.

이달 초 제네바에서 열린 6자회담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에선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크리스토퍼 힐 미 차관보에게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에 사용될 수 있는 알루미늄 관을 제3국에서 조달했다고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알루미늄관의 수입 목적은 우라늄 농축이 아닌 다른 데 있다고 말했지만, 2.13합의 이행의 제2단계인 신고.불능화 문제에서 핵심쟁점인 우라늄농축 프로그램 의혹과 관련해 처음으로 구체적인 사실을 털어놓음으로써 해결 자세를 나타낸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행보는, 9.19 공동성명을 전후해 불거진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로 핵문제가 1년여 겉돈 끝에 미국이 압박 위주에서 협상과 보상 쪽으로 대북 접근방식을 전환하면서 시작됐다.

BDA 문제의 여파는 마침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중간선거 패배 후 대북접근 방식을 선회하고 특히 BDA 해결 과정을 통해 북.미간 기초적인 신뢰가 쌓임에 따라, 현재로선 북한의 핵문제 해결 행보가 점점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북한의 이러한 변화 배경으로, 특히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직접 임기내 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의 교환 의지를 표명할 정도로 북한의 숙원인 대미관계 정상화의 전망이 선 것을 들 수 있다.

더욱이 올해 65세인 김정일 위원장의 신병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만큼, 후계 준비가 시급하고 이를 위해선 북한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을 유리하게 정착시키는 게 김정일 위원장으로선 다급하고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즉 핵문제 해결을 통해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등 대외관계를 크게 개선시키고, 동시에 북한에 대한 외국의 투자를 유치해 경제를 회생시키는 게 김 위원장에게 최우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한동안 레임덕 등을 우려해 후계문제를 외면해 왔던 김정일 위원장이 최근 건강이 별로 좋지 않으면서 후계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김 위원장도 식량난과 경제난에 허덕이는 거덜난 국가를 후계자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대미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꿈꾸어오던 이른바 ‘강성대국’ 건설의 토대를 후계자에게 넘겨주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은 앞으로 핵문제의 해결 의지는 거듭 확인해 나가면서도 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철저히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추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BDA 해결 과정과 2.13합의 초기단계에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견지했듯 앞으로도 불능화에서 기존 핵무기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이 원칙을 고수해 나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북한 당국의 대미불신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에서 동시행동원칙에서 벗어난 핵포기는 자칫 북한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미 중간선거 이후 나타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행보를 통해, 북한은 오히려 핵문제 해결에서 다급한 쪽은 이라크 등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고 외교적 성과를 올려야 하는 미국이라고 보고 살라미(잘게 썰기) 전술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큰 틀에서 북한은 미국의 대북접근 의지를 평가하고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포괄적 논의 틀인 6자회담을 통해 미국의 적대정책 변경과 에너지 및 경제지원을 이끌어내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북미간 신뢰의 동력은 아직 부족한 상황으로 보이는 만큼, 구체적인 쟁점에서는 북한이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르는 상응조치 문제로 속도조절을 해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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