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北주민과 김정은 ‘우리’로 묶일 수 없어”

▶전날 북한 주민들이 청취한 대북 라디오 방송 중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자유조선방송/8월 11일>


논평-인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핵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핵 개발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인민들이 떠안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김정은 정권은 마치 미국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인민을 보위하기 위해 핵 개발을 한 것처럼 둘러대고 있습니다. 먄마(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참가한 이수용 북한 외무상은 어제 연설을 통해 핵 억제력을 보유한 것은 미국의 끊임없는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압력, 핵 위협 공갈에 시달리다 못해 부득불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결단이었다고 오히려 미국한테 그 책임을 돌렸습니다.


“핵 보유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다. 우리의 핵은 말 그대로 전쟁을 막기 위한 억제수단”이라는 겁니다. 6·25전쟁을 일으킨 것도 김일성이고 호시탐탐 남한을 노리는 것도 김정은일진대 전쟁을 막기 위한 억제수단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또 그 우리란 누구를 두고 말하는 겁니까. 헐벗고 굶주리며 게다가 각종 통제와 검열만 받으며 살아가는 북한 인민들은 절대로 아닙니다. 김정은 일가와 그에 붙어 아첨으로 살아가는 인구의 0.001%도 안 되는 몇몇뿐입니다. 당연히 김정은 일가와 그 졸개들을 우리 인민과 함께 통틀어 “우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핵 개발을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며 “우리”라는 말로 우리 인민과 어물쩍 묻어가려는 것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아주 명백합니다.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 외에 달리 댈 핑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남한에 주둔한 미군 때문에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또한 인민을 볼모로 한 “우리”라는 표현으로 써야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강력한 제재를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민을 위해서였다면 핵 개발은 애당초 생각지도 말았어야 했고 지금이라도 핵무기 따위는 당장 집어치워야 합니다. 카다피도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죽음을 면치 못했다고 공공연히 떠벌리기 전에 리비아 인민에게 고통을 주었던 카다피를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실제로 북한에 개혁개방이 실현되었다면 김정은이 그 자리에 감히 올랐을 수나 있었겠습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민들은 핵을 원하지도 않을뿐더러 김정은과 “우리”라는 단어에 속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인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핵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인민이 원하지도 않는 핵 개발은 성공할 수도 없거니와 3대째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 정권, 반드시 우리 인민들의 심판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그날은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북한개혁방송/8월 11일>


민주주의 강좌-민주주의의 공언(公言)과 현실(現實)


북조선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지난 강좌에 이어 민주주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지난번 강좌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비민주주의적인 주장과 선전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민주주의 공언과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비민주주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표정, 언행 등이 좋다고 느끼거나 인정되는 경우 그것을 따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의 것을 따라하는 사람들의 경향을 ‘모방심리’라고 하는데 이러한 모방심리는 그것을 따라함으로써 자신도 그렇게 되려고 하는 욕망 때문입니다.


특히 사회와 집단생활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우 대중이 좋다고 인정하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아주 많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삶의 보람을 찾거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또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개인의 이기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는 경우, 즉 정치적 공언과 현실이 너무도 다른 것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과 결과들이 개인의 경우에는 개인 자체나 다른 한, 두 사람의 피해로 끝나지만 정치와 관련되면 그 피해는 실로 엄청나게 커집니다. 역사적으로는 일본이 대륙침략을 위해 내세웠던 이른바 ‘대동아공영권’ 주장과 중국에서 1966년부터 10여 년간이나 진행됐던 광란의 ‘문화대혁명’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이나 중국이 내세운 주장과 선전은 아주 훌륭해 보였지만 진실은 부정한 목적과 수단으로의 악용이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우리가 강조하고자 하는 문제가 바로 이처럼 앞에서는 민주주의를 공언하면서 그 뒤에서는 비민주주의적인 것을 행하는 경우입니다. 여기에서 공언이란 많은 사람이나 인민 대중에게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을 공개하여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의 몇 차례에 걸치는 강좌를 통해서 보았듯이 민주주의란 역사와 현실에서 증명된 인류의 가장 훌륭한 보편적 가치입니다. 인민이 주권의 주인이고 인민들에 의하고 인민을 위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니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될 때만이 북조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민대중이 자주적이고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자명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민주주의의 가치 때문에 민주주의는 종종 비민주주의적인 목적에 악용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인민 대중은 항상 민주주의의 공언만 믿고 맹목적으로 따를 것이 아니라 항상 민주주의의 원칙과 기준, 그리고 필요충분조건에 맞는지를 예리하게 판단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의 명목 아래 진행되는 비 민주주의적 정치의 결과로 생겨나는 피해는 전적으로 인민 대중에게 차례지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민주주의는 항상 노력과 투쟁을 통하여 쟁취하여야 하는 귀중한 가치입니다. 자유와 권리는 누가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쟁취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도 스스로 차례지는 것이 아니며 피어린 투쟁으로 쟁취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투쟁과정을 일컬어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인민 대중은 민주주의의 공언만 믿을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공언이 현실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천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검열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화국의 국가 명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돼 있듯이 세계의 많은 나라가 국가명칭이나 헌법에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반드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규정하고 또 선포하는 식의 공언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민주주의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공언 그 자체부터 진정한 민주주의의 제반 원칙과 조건에 맞는지 항상 분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강좌들에서 보았던 민주주의의 정의와 민주주의의 기준, 그리고 민주주의 정치가 되기 위한 필수적 조건들이 만족하는가 하는 것들이 반드시 검열되고 평가되어야 합니다.


실례로 북조선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는 인민대중의 의사를 집대성한 것이므로 진짜 민주주의이고 남조선의 자유민주주의는 소수의 특권층과 착취계급을 위한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가짜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비논리적인 공언입니다. 공화국은 진짜고 자본주의는 가짜라고 하는 일방적인 공언보다는 어느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과 기준과 조건에 맞는지를 검열받아야 비로소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북조선에서 당 위원회나 청년동맹 간부들을 선거할 때 사회 측의 복안을 발표하고는 거수가결을 물어서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 복안이라는 것이 이미 전에 당 조직에서 다 짜놓은 것이고 선거의 형식을 차리기 위한 궁여지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형식입니다. 그런데 선거를 통해 간부들을 뽑는다고 공언을 하고는 실제로는 사회 측의 복안이라는 허울을 씌운 비민주주의적인 수단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공언과 현실의 차이는 또한 시작은 민주주의적이었으나 과정과 결과는 비민주주의적인 현실로 나타나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정치는 인민 대중의 의사를 반영하고 인민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중국의 문화대혁명도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 혁명을 완성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 완전승리를 이룩한다는 명목하에 진행되었습니다.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하고 중국의 발전에 기여한 공헌은 아주 큽니다. 모택동의 처음 혁명의 길에 들어설 때에는 인민을 위한다는 목적이었지만 모택동에 의해 발생한 문화대혁명은 순전히 모택동 개인의 권력욕망을 위해서였습니다.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국인민들이 입은 개인적 피해는 물론이고 중국의 경제, 사회, 문화는 최악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의 피해는 결국 인민을 위한다는 중국 공산당과 모택동의 정치적 공언을 맹목적으로 믿고 추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우리에게 인민이 선출한 지도자나 수령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내세우는 민주주의에 관한 공언과 정치는 반드시 현실에서 철저히 검열하고 평가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의 공언과 현실과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어떤 경우에라도 민주주의의 공언은 이론과 현실에서 철저히 검열받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민주주의 정치의 과정과 결과가 다른 부정한 목적이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항상 철저히 감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공언이 비민주주의적일 때에는 비타협적으로 투쟁하여 진정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도록 투쟁해서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오늘 강좌를 마칩니다. 다음 강좌에서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와의 관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