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영웅시리즈④]”철원 281고지를 재탈환하라”

1951년 11월 3일 21시 30분. 국군과 중공군 사이에 고지전이 치열하게 진행돼던 강원도 철원 중부전선 최전방. 국군 제29연대는 제 9사단의 좌일선 연대였다. 연대는 전선상황을 사단 정보작전상황실에 보고했다.


’21시 30분, 적이 281고지 동북쪽 무명고지 정상에서 3발의 백색 조명탄과 1발의 청색 신호탄을 신호로 제2대대 주진지에 적의 포격이 시작되었음.’



1시간 뒤 22시 30분. 연대의 보고가 이어졌다. 281고지 서북쪽 1㎞ 지점에 있는 무명고지 쪽에서 대대규모의 적이 281고지 정면으로 급습을 감행해왔음. 그리고 대대 우일선인 제5중대의 진전으로는 395고지 북사면의 능선을 따라 2개 소대규모의 적이 서진(西進). 그들의 주력에 대한 양공견제(陽攻牽制)를 꾀하고 있는 듯함’



제29연대 정면에 배치됐던 중공군 제 42군 예하 제126사단의 1개 연대가 집중공격을 취해오면서 중부전선 철원지구 281고지 전투는 시작됐다.



적의 집중공격이 시작되자 제29연대장 박응규(朴應奎) 대령은 즉각 각 대대에 긴급명령을 내리고 현 위치를 지킬 것을 강조했다. 특히 281고지의 주봉을 방어하고 있는 제6중대장 김용진(金容振) 중위에게는 ‘여하한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기필코 281고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다음날 11월 4일 0시 15분. 적은 100여 발의 포탄을 또다시 정상에 집중하고 피리와 나팔을 불면서 광란처럼 돌진해왔다. 제6중대는 육탄대결로 진지를 고수하는데 사력을 다했지만 계속해서 진지는 무너져 나갔다.


거기다 중대의 유선망이 적의 포격으로 두절되고 중대와 대대간의 유일한 연락수단인 SCR-609마저 파괴된다. 이로 인해 상황의 추이를 파악하기 어렵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계속 밀어닥치는 적세(敵勢)로 중대는 고립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전 중대원들은 수류탄과 대검을 양 손에 쥐고 달려드는 적병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적을 폭살시키고 자신들도 장렬히 전사하였다. 결전은 이어졌다. 결국 살아남은 제6중대의 병력은 중대장 외 소대장 2명과 병사 50명뿐이었다.



중대장 김용진 중위는 고립 속에서 더 이상의 사투는 자멸만을 초래할 뿐이라는 판단을 내린다. 그리곤 모두 적중에서 혈로를 뚫고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찾으라는 피맺힌 명령이 이어졌다. 중대의 잔여 병력들은 눈물을 삼키면서 퇴로를 찾아 각개 별로 적을 격파하면서 281고지 동단으로 일단 철수했다. 먼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주위가 밝아왔다. 산골짜기를 메운 화염과 초연 속에는 시체들이 흩어져 있었다.



281고지에서 혈전을 계속하던 제6중대가 철수했다는 사실을 안 연대는 즉시 제3대대에 명령해 제11중대 및 제12중대로 하여 281고지에 대한 반격을 감행토록 했다. 이에 양 중대는 반격전을 감행한다. 그러나 281고지에 도사린 적의 항전은 계속됐다. 이에 연대장 박 대령은 이의 타개책으로 제3대대의 잔여병력인 제9중대와 제10중대를 투입하기로 결심한다.



두 중대는 곳곳에서 진격을 저지하는 적을 물리치면서 계속 돌격선까지 약진하여 전진으로 돌입했다. 약 1시간동안에 걸친 격멸전 끝에 마침내 281고지의 선반부를 탈환하는데 성공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제9중대가 정상 20여m 전방에 이르렀을 때, 적은 모든 자동화기를 동원해 아군의 돌진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기 시작했다. 적의 화망에 부딪친 중대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적의 자동화기를 격파하기 전에는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이때 박기석(朴基錫) 이등중사가 포복으로 중대장 곁으로 급히 다가왔다. ‘중대장님! 저에게 돌격대원을 주십시오. 우리의 돌진을 가로막고 있는 놈들의 기관총을 파괴하고 중대의 진로를 열어 놓겠습니다. 죽음으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박 중사는 결의에 차 있었다. 중대장은 박 중사의 의연한 대답에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돌격대 편성을 허락했다. 최재효(崔在孝) 하사를 비롯하여 7∼8명의 중대원들이 돌격대를 지원하고 나섰다. 여기서 박 중사는 최 하사를 비롯한 4명의 대원을 선발해 돌격대를 편성했다.



‘중대장님! 기필코 놈들의 기관총진지를 격파하겠습니다.’ ‘성공을 빌겠다!’ 적탄이 비 오듯했다. 중대장에게 출발신고를 하고 난 박 중사는 대원들과 함께 앞으로 포복해 나갔다.



적의 기관총진지는 절벽 위에 설치돼 있었다. ‘놈들의 기관총진지를 파괴하는 것은 우리 돌격조의 다시없는 책임이다. 나와 최 하사가 먼저 이 절벽을 기어오를 테니, 너희들은 그 뒤를 따라 올라와라!’ 그는 최 하사와 함께 암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암벽의 높이는 약 15m. 박 중사와 최 하사를 선두로 한 돌격대원들은 아슬아슬한 곡예를 보이면서 전진으로 접근해 올라갔다.



무사히 절벽 위까지 올라간 박 중사와 최 하사는 각각 적의 기관총진지로 돌입하여 수류탄을 투척했다. 순간, 요란한 폭음과 함께 2개의 기관총진지가 일시에 박살이 났다. 죽음을 각오하고 적진으로 용감히 돌입한 박 중사와 최 하사의 필승의 신념이 불가능해 보였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어 나머지 대원들이 돌입해오자, 5명의 돌격대원들은 힘을 합해 잔적들을 무찔러 나갔다. 당황한 적은 드디어 사분오열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돌격대원들이 적의 기관총진지를 박살내자, 돌격선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9중대는 이때를 놓칠세라 함성을 울리며, 총검과 수류탄으로 백병전을 강요하면서 정상으로 돌진했다.


돌격대원들과 합세해 지리멸렬한 상태에 있는 적을 모조리 소탕한 중대원들은 이날 오전 11시 50분에 281고지를 재탈환하는데 성공한다.



아군은 적의 무모했던 공세를 격파해 철원 북쪽의 현 진지를 고수하기에 이르렀고, 이 전투에서 281고지를 재탈환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박기석 이등중사와 최재효 하사는 충무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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