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영웅시리즈②]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돌격 앞으로’ 외쳐

강원도 김화의 수도고지는 일련의 능선으로 그 모양이 마치 손가락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었다.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던 당시 남과 북은 한 치의 땅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3.8선 인근에서 치열한 고지전투를 진행중이었다.


1952년 9월 6일. 중공군 제35사단은 수도고지 남쪽 5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663고지 정면을 담당하고 있던 아군 제26연대 전 전선에 일제히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적은 여러 발의 신호탄 발사와 함께 663고지 정상의 중대지휘소와 제2대대 지휘소 일대에 연막탄을 집중시켰다.


관축상의 요충점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된 수도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북한군의 공격이 이어졌다. 아군의 강력한 방어에도, 적은 기필코 수도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공격을 단념하지 않고 아군의 방어진지로 공격을 가해왔다.


적의 전면적인 공격을 당하기 시작한 수도고지의 제5중대 1소대 장병들은 사력을 다해 결전을 벌였으나, 제1소대장 홍창원(洪昌遠) 소위 이하 전 소대원들이 모두 전사하고 고지를 적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제26연대는 적에게 피탈된 수도고지를 재탈환하기 위해 9월 9일까지 맹공을 가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공격임무는 이제 제1연대와 교대된다.


이때 수도사단 제1연대 연락장교로 복무하던 안익진(安益鎭) 소위가 소대장을 지원한다. 제 7중대 1소대장으로 임명된 안 소위는 필사적인 돌격전 전개를 소대원에게 명령하고 자신은 소대의 선두에 섰다.


안 소위는 ‘돌격 앞으로!’를 외치면서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제1소대가 용감하게 돌격을 감행하자, 나머지 소대도 돌격을 감행한다. 안 소위를 선두로 무사히 수도고지 정상까지 돌입한 제1소대는 즉시 제5, 6중대와 합세하여 적의 공격을 완전히 저지하고 수도고지를 확보했다.


1953년 1월 20일, 그는 충무무공훈장을 수여받는다.


1952년 10월 6일 18시 20분. 중공군 제12군은 수도고지 일대에 약 6,000발의 포탄을 집중했다. 20분 후 2개 중대규모의 적은 제26연대 3중대가 방어하고 있는 수도고지를 공격해왔다. 제3중대는 적을 유인하여 포격으로 궤멸했다. 그러나 적은 18시 50분, 또 다시 2개 소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해왔다.


이에 제3중대 2소대와 3소대는 소대장의 진두지휘로 수도고지 북록과 동 북록에서 온갖 화기로 적을 격멸했다. 끝내 진지의 산병선은 돌파됐다.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전우들의 전사는 계속됐다.








▲들것에 실린 한국군 병사의 모습. 출처: 전쟁기념관


제2소대 3분대 소속의 신병인 유희만(兪熙萬) 일등병은 전사한 자동화기 사수의 총을 꺼내들었다. 그는 진전으로 육박해오는 적을 사살하였다. 진지를 향해 돌격해오던 2개 분대규모의 적은 유 일등병의 자동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수류탄 공격을 가해왔다.


유희만 일등병은 침착하게 주변에 떨어진 적의 수류탄을 되받아 던진다. 자동화기 사격을 가하자 정면공격이 불가능해진 적은 우회침투로 5발의 수류탄을 호에 투척했다.
 
순간적인 행동으로 화기와 함께 나와 위기를 모면한 그였다. 재차 수류탄을 투척하는 1개 분대의 적을 등 뒤에서 사살 후 측사(側射)로 인접부대를 엄호하였다. 또한 진내사격으로 적이 후퇴하는 가운데 적 지휘관을 사살해 진지를 사수한 그는 이 전투로 소대방어진지를 사수한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수도고지전투에서 세운 혁혁한 전공으로 그는 1953년 1월 13일, 을지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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