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7년] 남북관계-북핵 선순환 가능한가

“여론 탓이다”(남), “외세 논리다”(북).

지난 1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끝난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대북 쌀 차관 제공을 놓고 벌어진 양측간 공방의 단면이다.

당시 북측은 외세의 논리를 앞세우지 말고 민족끼리 합의한 대로 쌀을 달라고 촉구한 반면 남측은 북핵 `2.13합의’의 이행 상황에 따라 국민 여론이 납득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논리를 펴며 맞섰다.

이는 쌀 차관이 한반도 정세, 특히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조성된 북핵 기상도와 연동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 때문에 쌀이 이젠 한반도 정세의 잣대가 됐다는 관측이 제기되는가 하면 심지어 쌀 차관이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의 두 가지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리트머스시험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실제 작년 7월 우리 정부는 쌀 차관을 유보했고 10월 북한 핵실험 이후에는 아예 말도 꺼낼 수 없는 상황까지 갔다가 2.13합의에 힘입어 지난 4월 40만t 제공에 합의했지만 2.13합의 이행 지연으로 북송이 막혀 있다.

이런 쌀과 북핵의 `악연’은 2002년 10월 불거진 북핵 사태가 사실상 남북관계의 최대 변수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줬지만 참여정부의 `북핵-남북관계의 병행 발전’ 전략의 기조 변화를 둘러싼 논란을 가열시켰다.

기조 변화의 이면에는 남한과 북한, 미국 등의 논리와 전략이 각축하는 역학관계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실제 미국의 이른바 `속도조율론’과 북한의 `민족공조론’이 맞서고 그 사이에 낀 국내에서는 북.미 양측의 논리가 혼재하는 가운데 `한미공조론’이나 `퍼주기’ 논쟁까지 가세한 복잡한 형국이다.

이런 변화는 정부의 북핵-남북관계 병행 정책의 과거를 되짚어 보면 뚜렷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정책은 원래 6자회담을 통한 북핵 해법과 남북회담을 통한 남북관계 진전 노력을 동시에 추구해 상승작용과 선순환을 기대하고 종국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와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2005년 상황은 이런 전략이 주효한 사례로 꼽힌다.

2004년 김일성 조문 불허 조치 등으로 남북 당국간 관계가 냉각되기 시작해 이듬해 2월10일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으로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던 당시 1년 간의 공백을 깨고 5월 16일 이뤄진 남북차관급회담이 그 시작이었다.

이 회담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미스터 김정일’ 지칭이 나온 한.미 정상회담(6.10), 북한이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내비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7면담, 북.미 베이징접촉(7.10), 대북 200만kW 직접송전계획인 `중대제안’ 공개(7.12), 6자회담 재개(7.26) 등을 통한 북핵 9.19공동성명으로 이어졌다.

5월 차관급회담에서 대북 비료 지원을 결정하고 나중에 6.17면담을 낳은 6.15당국행사에 합의한 것이 이런 선순환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다.

또 9.19공동성명이 나오기 직전 평양에서 열린 제16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을 설득했고 뉴욕에서는 유엔 정상회의 수행차 있던 한.미.중.일.러 외교장관들의 `고공 플레이’가 베이징 협상장과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9.19공동성명이 탄생했다.

그 후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6자회담이 경색된 뒤에도 선순환의 단초를 마련하겠다는 우리의 노력은 남북관계와 6자회담에서 모두 시도됐다.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며 물질적.제도적 지원을 언급한 지난해 5월9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몽골 발언이 남북관계를 통한 돌파구 모색이었다면, 같은 해 9월14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구체화하기로 합의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6자회담 중심의 외교적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 두 가지 움직임 사이인 7월5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있었고 이로 인해 정부의 방점이 남북관계에서 6자회담으로 이동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정부의 남북관계-북핵 병행정책은 BDA로 인한 불투명한 정세 속에서 가용한 방법부터 먼저 구사해 그 결과로 선순환을 몰고 오겠다는 의도로 비쳐졌다.

하지만 작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은 대북 여론 악화를 몰고오면서 우리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좁혔고 정책기조의 조정 폭을 크게 만든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이런 정책 기조의 변화 조짐은 본질적 변화라기 보다는 병행의 틀인 6자회담과 남북회담 가운데 정부가 두는 무게 중심이 6자회담에 치우치고 이에 따라 우선점이나 선후(先後)가 뚜렷해진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지난 2월말 제20차 장관급회담 당시 쌀 차관을 논의할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일정을 2.13합의가 담은 초기 조치의 이행시한(60일)인 4월14일 이후인 4월18일부터로 잡은 것이 이런 분석의 근거가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남북관계와 북핵상황의 속도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속도 논란은 올해 쌀 차관 북송이 임박한 지난 5월 4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남북관계 진전은 2.13합의, 9.19공동성명과 조율돼야 한다”며 “병행추진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고 서로 속력을 내는데 조율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확산됐고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실제 우리측은 제13차 경협위에서 쌀 차관에 합의하면서 구두로 “북한의 2.13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제공시기와 속도를 조정할 수 있다”고 통보했고 이에 따라 5월 하순으로 합의했던 쌀 북송을 사실상 보류한 상태다.

우리 내부에서는 미국측의 속도조율론에 대해 북핵 해결을 위한 전략적 스탠스인 만큼 당연하다는 긍정론과 남북관계의 앞지르기를 견제하는 논리에 가깝다는 반론이 팽팽하다.

정부 부처 간에도 쌀 차관 등 특정현안을 놓고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6자회담 2.13합의 이행에 `올인’하고 있는 정부의 입장에 비춰 2.13합의가 이행되기 전에는 자체동력을 찾지 못한 채 겉도는 남북관계가 계속될 전망이다.

또 2.13합의가 이행된다면 결과적으로 북핵과 남북관계의 선순환이 가능하겠지만 북핵 상황이 정체할 때마다 남북관계의 속도를 문제삼는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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