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5년] ①비핵화 어디까지 왔나

2002년 10월4일 평양. 북한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은 “우리는 HEU (고농축우라늄) 계획을 추진할 권리가 있고,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만들게 돼있다”고 방북 중인 미국 특사 일행에게 천명했다.

미국 정부는 이를 근거로 10월17일 ‘북한이 HEU 계획을 시인했다’고 전세계에 선언했다. 북한은 미국의 발표가 있자 HEU 계획을 시인한 적이 없다고 밝힌 뒤 “미국이 없는 것을 있다고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른바 2002년 10월의 HEU 파동으로 시작된 2차 핵 위기는 즉각 북.미간 제네바 합의를 무효화시켰고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몰고 왔다.

미국과 북한의 벼랑끝 대치가 지속되는 가운데 2003년 4월 베이징에서 중국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북한이 단 한차례 3자회담을 했다.

그리고 다시 만나지 않을 것 같던 양측은 우여곡절 끝에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에 합의했다. 2003년 8월27일 베이징에서 제1차 6자회담이 중국 국빈관 격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개막했다.

사흘간 진행된 1차 회담은 북한과 미국간 첨예한 의견차이만 확인하고 별다른 소득없이 끝났지만 협상의 유용성을 확인했다. 그 결과 2004년 2월 다시 2차 6자회담이 열렸고 그렇게 지금까지 5년이 흘렀다.

2004년 6월 열린 제3차 6자회담까지 북.미 양측은 이른바 HEU의 존재 여부를 두고 지루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그러면서도 한반도 비핵화의 길을 모색했고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국가들이 이에 대한 보상조치를 제공하는 ‘일괄타결’ 방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을 중심으로 한 미국내 강경파들의 입김이 강화되면서 북한은 협상장을 떠나 2004년 가을의 미국 대선 결과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결국 공화당의 부시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북한의 기대는 무산됐다.

하지만 2기의 부시 행정부는 1기 때와 달랐다. 특히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인 콘돌리자 라이스가 실세 국무장관에 부임하면서 네오콘의 역할은 서서히 축소됐다.

그 사이 북한은 힘을 과시했다.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선언을 한 것이다. 그리고 5월에는 영변 5MW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천개의 인출 완료를 선언했다. 2005년 7월 13개월만에 6자회담이 재개됐다. 1단계 4차 회의에서 접점 가능성을 찾은 6개국은 다시 9월에 2단계 6차회의를 속개해 마침내 ‘9.19 공동성명’을 도출하는데 성공했다.

6자회담이 열린 지 2년여만에 가까스로 향후 비핵화로 가는 긴 여정을 담은 조감도를 만든 것이다.

성명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며 이를 위해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하고 조속한 시일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했다.

대신 미국은 핵무기 또는 재래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며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하는 한편 6자회담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에너지 지원 용의를 표명했다.

이른바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북한이 비핵화를 취한 수준에 맞춰 이에 대한 보상조치를 제공하는 기본 개념이 확립된 것이다.

하지만 9.19 공동성명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방코델타아시아(BDA)내 북한자금 동결 문제로 불거진 이른바 ‘BDA 사태’로 다시 오랜 교착국면을 보내야했다. 그 와중에 북한은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에 이어 10월 마침내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안 채택 등으로 극한대치로 치달을 것 같던 6자회담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핵실험이후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했다. 그 결과 2007년 1월 베를린에서 미국과 북한은 6자회담 시작 이후 처음으로 사실상의 양자회담을 했다.

미국내 협상파를 대표하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간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에서 BDA 해법과 이른바 1차 비핵화 조치의 윤곽이 마련됐다.

이를 바탕으로 2007년 2월 제5차 6자회담이 재개됐고 6자 차원의 비핵화 1단계 비핵화 시공도면에 해당되는 2.13합의를 만들어냈다. 합의의 골자는 비핵화 2단계인 영변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에 맞춰 중유로 환산해 100만t의 에너지 지원과 테러지원국 해제 등 안보조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합의에 따라 그해 6월에 BDA 사태가 풀린 뒤 곧바로 북한은 핵시설 폐쇄에 들어갔고 중유 5만t이 북한에 제공됐다.

이어 다시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부상이 9월 제네바에서 회동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제6차 6자회담 2단계회의의 결과로 비핵화 2단계 시공도면이라 할 수 있는 ‘10.3합의’가 발표됐다.

불능화와 신고를 그해 말까지 완료하기로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북한의 과거 핵활동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규명할 핵 신고서가 어려운 과제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치열한 수싸움 끝에 북한과 미국은 2008년 4월 싱가포르에서 양자회담을 열고 타협안을 찾았다. 이른바 우라늄농축(HEU와 연관된 문제) 및 북한의 핵확산 문제와 플루토늄 문제를 분리하는 방안이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2008년 6월 자신들의 과거 핵활동을 담았다는 신고서를 중국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고서 내용을 확인하는 검증문제가 걸림돌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북한과 미국은 현재까지 어려운 협상을 지속하고 있다.

검증협의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북한의 1990년초 핵활동과 HEU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를 규명해야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을 신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지난해말 미국측에 전달한 알루미늄관이나 지난 5월초 미측에 제시한 1만8천822쪽의 핵 관련 자료에서 ‘HEU 흔적’이 노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HEU 진실게임’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검증 협의가 늦어지면서 북한의 신고서 제출에 맞춰 미국 정부가 약속한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도 미뤄지고 있다.

북한은 현재 ‘신고-검증 분리 전술’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플루토늄과 우라늄농축 및 핵확산 부분에 대한 검증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6자는 7월에 열린 수석대표회담을 통해 불능화 작업과 에너지 지원을 10월말까지 완료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북한이 약속한 불능화 조치는 전체 11개 중에서는 8가지가 완료됐고 ▲폐연료봉 인출 ▲미사용연료봉 처리 ▲원자로 제어봉 구동장치 제거 등 3개 조치가 아직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대선 정국으로의 전환 등을 감안할 때 적어도 이달 안에는 북한과의 검증협의를 마무리하고 6자회담 차원의 협상을 재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외교소식통은 “최근의 움직임을 보면 적어도 9월 초까지의 시간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서 “북.미간 협의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경우 검증 이행계획서 마련을 위한 6자회담의 동력이 회복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 대선정국 등을 감안할 때 협상 동력은 현저하게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6자회담이 검증의 고비를 넘어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고 나아가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로 작용하는 외교적 공간이 될 지, 아니면 끝내 진실을 밝히지 못해 다시금 그 효용성에 의문부호를 달게 될 지 갈림길에 서 있다. 후자의 경우 한반도에 핵위기가 다시 고조될 수 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