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北, 테러지원국 해제 명시 주력 예상

북한이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6자회담에서 연내 불능화 및 핵 프로그램 신고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로 ‘연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및 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를 합의문에 적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나 미국은 이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북.미간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7일 미국의 대북 “정치적 상응조치가 6자 합의문에 포함되느냐 아니냐는 별도 문제”라며 “지난번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와 같이 북미간 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미국이 6자가 모인자리에서 밝히긴 했지만, (이번) 합의문서에 들어갈 필요 없거나 들어가기를 원치 않는 것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미국이 합의문에 테러지원국 연내 해제를 명시하지 않으려는 입장임을 시사했다.

미 행정부로선 미국내 여론이나 대외 이미지 등의 측면에서 북한의 요구에 따라 사전 약속을 명문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꺼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BDA에 동결됐던 북한 계좌의 해제에 대해서도, 2.13합의에 명시하지 않은 채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BDA와 관련된 (대북)금융제재 문제를 30일 내에 해결할 것이며, 이를 중국 등 6자회담 참가국에 오늘 통보했다”고 밝히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선 BDA와 불능화 문제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랜 북미간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대미 불신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테러지원국 연내 해제 문제에 대한 힐 차관보의 발언, 최근 북한과 시리아간 핵협력 의혹 제기,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북 ‘야만정권’ 발언 등 미국측 움직임은 북한의 대미 불신을 다시 심화시켰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27일 베이징발 기사에서 이달초 제네바 실무회의 합의 내용과 관련, 힐 차관보가 회의를 마친 뒤에는 북한의 의무사항만 강조하고 테러지원국의 연내 해제 등 미국측 ‘의무’에 대해선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이 제네바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의에서 약속한대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 정치.안보적 상응조치를 합의문에 반드시 명기해야 하고, 이것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에는 일방적인 불능화를 할 수 없다면서 미국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테러지원국 해제 등 미국측 상응조치의 합의문 명기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북한도 연내 불능화.신고 역시 명시할 수 없다고 버팀으로써 자칫 이번 6자회담이 극한 상황으로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선신보는 27일 기사에서 “핵시설 무력화(불능화)는 조선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더이상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할 때 취하게 될 조치”라고 강조, 북한이 불능화 문제에서는 동시행동 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할 것임을 드러냈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도 25일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 도착 일성으로 “그동안 이룩한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가 합의를 보면 비핵화 과정이 계속 추진되어 나갈 것이고, 합의를 못보면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있다”고 미국을 압박했다.

김 부상의 이 말에 대해 조선신보는 “미국이 쌍무 협상에서 조선측에 약속한 행동을 막판에 와서 주저할 경우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북한은 김정일 정권에 대한 시각이 변하지 않은 부시 행정부의 말을 믿고 합의문에 테러지원국 해제를 적시하지 않을 경우 자칫 자신들만 무장해제 당하는 ‘가장 우려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1월 북미 베를린 회담에서 미국이 “6자회담 초기조치 합의 뒤 30일 내에 BDA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 대 말’의 약속을 하자 5차 3단계 회의에서 2.13합의를 했으나 법적.기술적 문제로 실제 송금이 이뤄지지 않게 되자 버티기 모드로 들어갔었다.

결국 미 행정부가 직접 중앙은행까지 동원해 송금을 실행해 BDA문제가 사실상 해결된 단계에서야 비로소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영변원자로 동결 등 초기이행조치에 들어갔다.

그러나 북한 역시 6자회담 판이 깨지기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BDA 때처럼 미국이 기자회견이나 별도 문서를 통해 테러지원국 해제를 명확히 하는 선에서 최종 합의를 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연내 해제한다’와 ‘연내 해제를 논의한다’는 등 표현 방식을 두고 북미간 논의가 곡절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당연히 합의문에 테러지원국 문제를 명시하려고 할 것”이라며 “결국 이 문제를 어떻게 매듭짓느냐가 이번 회담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