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北, 카드상실 우려한 듯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가 사실상 성과없이 끝남에 따라 북한의 의도와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우선 북한은 검증의정서에 ‘시료채취’와 관련된 문구를 문장으로 삽입하는 데 대해 부담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동안 검증 문제를 ‘불능화.신고-테러지원국 해제.에너지지원’으로 요약되는 2단계 조치가 마무리된 뒤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과거 핵활동에 대한 전모가 드러날 수 있는 시료채취에 합의할 경우,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협상카드를 상실할 수도 있다 점을 우려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9일 “시료채취를 통해 조선(북한)이 추진한 핵계획의 전체상을 파악하는 단서를 얻는 시점이라면 당연히 미국을 비롯한 각측도 상응한 행동조치를 통해 비핵화를 크게 전진시키는 조건을 마련해 놓아야 할 것”이라고 밝혀 미국 등의 추가적인 상응조치가 있어야만 시료채취가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시료채취는 곧 북한의 “핵계획의 전체상을 파악하는 단서”를 얻는 시점, 즉 북한 핵프로그램의 전모가 발가벗겨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오바마 신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시료채취’를 명문화하는 의정서에 합의하면 앞으로 북미간 가장 큰 협상카드를 상실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달 미국을 방문한 북한의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이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초청할 정도로 향후 북미관계 개선에 목을 매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북미협상 과정에서 주요한 카드를 너무 일찍 상실해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번 회담을 앞두고 한.미.일 3국협의가 사전에 이뤄지고 경제.에너지 실무그룹 의장국인 우리 정부가 나서서 경제지원 연계를 언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구도를 용인할 수 없다는 의도도 담긴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그동안 6자회담은 북미가 합의를 하고 나머지 나라들이 이를 추인하는 형식으로 진행돼 왔다”고 상기하고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과 일본이 강력 반발하고 미국이 조율된 입장을 들고 나온 만큼 이러한 구도가 고착되기 전에 깨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시료채취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강경 입장이 협상 실패를 낳았다는 인상을 부각함으로써 한.일 양국에 정치적 부담을 지우고 북미간 양자 논의구도를 유지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회담이 성과없이 결렬된 것에 대한 북한측의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아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떼쟁이’라는 이미지가 재확인됨으로써 미국내 대북여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북미간 협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11일 오전 회담 결렬을 앞두고 북한이 중국측에 “좀 더 논의해보자”는 연락을 한 것도 성과없이 이번 회담이 마무리됐을 때 입을 수 있는 외교적 타격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북한은 내년 1월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미국과 직접접촉을 통해 검증문제를 논의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핵문제가 교착국면에 빠질 때마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힐 차관보와 직접 담판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왔던 만큼 시료채취 문제를 비롯한 핵협상 현안을 북미 양자간 논의를 통해 풀려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북한이 당분간 핵협상 논의를 중단하고 역으로 위기를 고조시킴으로써 이 문제 해결의 절박성을 부각시켜 오바마 행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유도하는 데 주력할 수도 있다.

어차피 현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면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키는 조치 등을 통해 민주당 행정부로 하여금 적극적인 대북대화에 나오도록 하려 할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한.일 양국이 경제.에너지 지원을 검증의정서 문제와 연계시킴으로써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전에 2단계 과정의 완료를 어차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과정에서 대북 압박이 강해지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중단하거나 이미 인출한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작업, 핵무기의 운반체인 미사일 시험 발사 등의 행동도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