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북한, 핵실험 강행한다면 상상 이상 대가 치를 것”

▶전날 북한 주민들이 청취한 대북 라디오 방송 중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자유조선방송/4월 29일>

논평-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상상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28일 성명을 통해 최근 제기되고 있는 4차 핵실험과 관련해 그 이상의 조치도 취할 수 있다고 떠벌렸습니다. 또 핵무기는 그 누구의 인정을 받거나 거래를 노린 흥정물이 아니라며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냈습니다. 이미 함경북도 길주군에 위치한 핵 실험장에선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조만간 핵실험이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핵실험이 강행될 경우 상상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 김정은 정권과 북한 인민들입니다. 국제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김정은 정권의 추가 핵실험에 대해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뿐만 아니라 중국과 로씨야(러시아)도 강한 반대와 제재의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작년에 채택된 유엔 결의안에는 강력한 추가 제재가 자동으로 취하도록 이미 명문화돼 있습니다.

특히 우려되는 건 중국의 제재입니다. 그동안 중국은 핵실험에 대한 제재에 소극적이거나 형식적으로 임해 왔습니다. 북한경제가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만약 강력한 제재를 할 경우 김정은 정권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중국학자들과 일부 간부들 사이에서 핵 개발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김정은 정권을 지지해 주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버릴 수 없다는 게 중국 최고지도부의 판단입니다.

그러나 4차 핵실험이 끝내 강행된다면 이런 상황은 뒤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조·중관계는 장성택 숙청과 김정은 정권의 무모한 도발로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또 중국은 최고지도부까지 나서 핵실험 반대를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4차 핵실험은 중국의 적대감을 폭발시켜 결국 한반도 정책의 근본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김정은 정권은 상상하는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북한개혁방송/4월 29일>

파랑새 체신소-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에서 사는 이정아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두 자식을 군대에 내 보냈다가 다 잃어버리고 북한을 떠난 지도 벌써 몇 년이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고들 합니다. 저는 북한에서 저 자신도 군 장교로 복무했고 두 아들 다 군대에 내보냈습니다.

그러나 두고 보기도 아까운 두 아들이 금강산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두 번이나 무너지는 이 비보를 받고도 제가 오늘까지 견디며 살아온 것은 북한 정권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고 그들이 마땅한 벌을 받게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아직 북한에 남아있는 제 조카에게 저의 이런 마음을 전하고 그리움을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제가 쓰는 이 편지에 북한정권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저의 마음을 담았기에 제 조카뿐만 아니라 저처럼 자식을 군대에서 잃은 북한의 모든 어머니가 함께 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조카 성옥이에게

성옥아, 이모가 북한을 떠난 지도 벌써 몇 년이나 되었구나. 그동안 잘 있었니? 군관이 된 나를 보고 그리도 좋아하며 동네에 큰 자랑거리처럼 떠들던 너의 모습이 지금도 내 눈앞에 보이는 것 같구나.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렀어도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이모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어리광을 부리던 어린 시절의 네 모습만 생생하단다.

이제는 너도 시집을 갔을 것이고 자식도 있겠지만 아직도 이모는 아직도 그것이 잘 믿어지지가 않는다. 남편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애들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밥이나 먹고 사는지 온갖 걱정이 앞선다.

성옥아, 이모는 나름대로 한번 인생을 멋있게 살아보려고 처녀 시절 군에 입대해 군관이 되었고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평양으로 시집을 가 너무나 자랑스럽게 살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때에는 내 동무들도 다 내가 너무 잘 되었다고 부러워하고 나 역시 그것을 큰 자랑거리로 생각하며 살았다. 너의 엄마도 아마 그건 잘 알 것이다.

성옥아,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자랑스러운 일이었기에 두 아들이 성장해 군대에 갔을 적에는 동네에 대고 큰소리를 치며 살았단다.

왜냐하면 김일성 부자에게 온 가족이 충성을 다 하는 것을 그 나라 백성의 최고 본분으로 알았고 또 자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일성이 죽고 난 후 김정일 정권이 점차 인민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몇 년 사이에 온 나라가 빌어먹는 거지 신세가 되었다.

온 나라 인민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하느님으로 떠받들어 모시고 그 사람들을 위하는 길에서는 살아도 영광, 죽어도 영광이라고 교육받고 살다 보니 우린 모두가 바보처럼 속해 살았다는 것을 이모는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생떼 같은 아들들이 발전소 건설장에서 둘씩이나 죽었는데도 마음대로 울 수도 없고, 어디에 대고 하소연 할 데도 없었던 이모의 마음을 너는 다 모를 것이다.

그렇다고 나라에서 우리 집에 돈을 주었니? 아니면 TV 한 대를 주었니?

땅에 떨어지면 깨질세라 놓으면 날아갈세라. 좋은 것만 먹이고 안아주고 업어주며 기른 금쪽같은 내 새끼들을 다 잡아먹고도 김정일 정권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성옥아, 김정일은 제 새끼들은 비행기 태워 제 돈 한 푼 한들이고 경호원까지 붙여 외국으로 유학을 보낼 때 내 자식들은 그 돈을 보태주고 그 나라를 지켜주려고 목숨을 바쳤다.

너도 자식을 낳아서 길러보아서 알겠지만 자식은 어느 부모에게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나는 지금도 그 두 아들이 살아있는 것 같고 길가에서 혹시 비슷한 남자들이 지나가도 따라가서 다시 쳐다본다.

혹시 내 아들이 아닌가 싶어서 아닌 줄 알면서도 이모는 아직도 마음속에서 놓아줄 수 없어서 지금도 내 아들들을 가슴에 안고 살고 있다.

성옥아, 나는 북한에 있을 적에 그 정권에 충실하던 사람들이 해외에서 도망을 갔다는 글을 볼 때마다 이해가 안 갔고, 그 사람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모는 한국에 와서야 북한이 인민들을 어떻게 기만했는지, 그들이 얼마나 부화방탕하게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지를 알고서는 기절할 뻔했다.

세상에 인민들의 눈과 귀를 모조리 틀어막고 외국에 못 나가게 하는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인민들이 외국에 나가면 남의 나라는 잘사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못 살까 하면서 의심을 할까봐 걱정을 한 것이고 더럽고 구린내 나는 저들의 가정사를 알면 인민들이 들고 일어날 까봐 자기들의 집안일은 일체 비밀에 부쳤다.

성옥아, 너는 이모가 하는 말을 잘 새겨들어라. 지금처럼 그런 정치를 계속 유지하면 북한은 100년 후에도 절대로 자유 민주주의국가가 될 수 없다. 날이 갈수록 인민들을 더 억압하고 감시는 더 심해질 것이다.

성옥아, 이모는 지금 한국에서 이모부와 함께 너무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 나이가 많고 자식이 없다고 기초 생활 보조금을 주고 계절 따라 관광도 마음대로 다니면서 너무나 자유롭게 걱정 없이 산다.

북한에서는 먹고 살 걱정이 제일 큰 걱정이지만 한국에서는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겠는가가 제일 큰 걱정이다.

오직, 이모는 너 하나 북한에 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리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모는 두고 온 저 북한이 고향이지만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절대로 북한에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모는 북한정권이 망하고 통일이 되는 날, 이모부와 함께 억울하게 죽은 우리 아들들의 무덤을 꼭 찾아갈 것이다.

성옥아,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너는 아마 잘 알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밤이 깊었다. 그럼 오늘 편지는 여기서 마친다.

다음에 또 편지할게.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있어라.

서울에서 이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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