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합의 60일] 달라진 미국, 北核 승부수 던졌나

“미국이 달라졌다”

북핵 6자회담 `2.13 합의’ 60일 시한(14일)을 앞두고 미국의 대(對)북한 정책과 입장이 예전과 크게 달라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교정책에서 법과 원칙을 우선시하며 막무가내식으로 상대를 압박했던 부시 행정부 초기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마라톤 대화’도 마다하지 않으며 협상을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는 융통성있고 유연한 태도가 두드러지고 있다.

가장 극명한 사례가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자금 문제다.

미국은 지난 2005년 9월 BDA가 북한의 미 달러화 위조, 대량살상무기(WMD) 거래대금을 돈세탁한 의혹이 있다며 BDA를 `돈세탁은행’으로 낙인찍고 북한 자금 2천500만달러를 동결시켰다.

북한이 1년이 넘도록 6자회담 참석을 거부하며 BDA 자금 동결해제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국은 100달러짜리 초정밀 위조화폐인 `슈퍼노트’ 등 위폐문제는 미국의 화폐금융시스템 근간을 흔드는 불법행위로 묵인할 수 없는 범죄행위이며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완강한 태도를 견지했다.

하지만 `2.13합의’ 이후 미국의 태도는 눈에 띠게 달라졌다.

`2.13합의’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건 일환으로 30일 내 BDA 문제 해결을 합의한 뒤 미국은 약속대로 지난 3월15일 BDA 북한자금 조사를 마무리한 데 이어 마카오 당국이 2천500만달러 전액을 동결해제키로 한 데 대해서도 동의했다.

또 기술적인 문제로 북한자금의 이체가 늦어지는 바람에 북한이 계속 6자회담 참가를 거부하자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를 베이징에 보내 마카오.중국.북한당국과 이례적으로 2주간에 걸쳐 마라톤 협상을 벌이도록 했다.

더욱이 협상 결과 미국은 북한의 요구를 사실상 전부 수용, BDA 북한 자금을 동결이전 상태로 원위치시키는 데까지 양보했다. BDA 자금을 `불법자금’이라며 동결시켰던 명분조차 스스로 철회한 셈이 됐다.

미국의 이 같은 결정은 `2.13합의’를 유지하면서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략적 판단하에 작은 걸림돌에 걸려 북한 비핵화라는 대의(大義)를 그르치지는 않겠다는 승부수로 분석된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들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핵폐기를 유도하기 위해 그간 단호한 행동을 보여온 북한의 `슈퍼노트’ 위조문제에 유화적인 태도로 돌변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달라진 태도는 비단 BDA 문제 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작년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실험과 핵실험에 대한 제재조치로 북한의 무기거래를 전면금지하는 결의 채택을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북한에서 에티오피아로 무기가 수출되는 것을 묵인했다.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소말리아의 이슬람 무장세력과 싸우고 있는 에티오피아가 이 지역에서 종교적 극단주의자들과 싸우는 미국의 정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지만 자신이 주도한 결의를 스스로 어긴 결과를 가져왔다.

다른 유엔 회원국들에게 유엔 대북결의를 준수하라며 북한과의 각종 거래를 금지토록 압박했던 미국으로선 아주 머쓱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유엔 결의 통과 및 BDA 자금 동결 이후 극심한 외화부족에 시달렸던 북한은 이번 무기거래로 상당한 이득을 얻는다는 점에서 미국은 단순히 북한을 봐준 정도가 아니라 적극 도와준 게 됐다.

미국의 이런 파격적인 방침은 북한이 `2.13합의’를 먼저 발로 걷어찰 수 있는 구실을 없애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또 북한의 비핵화를 관철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도 읽힌다.

임기 2년을 채 남겨놓지 않은 부시 행정부는 역대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낮은 지지도, 혼미가 계속되는 이라크 사태, 이란의 핵개발 문제 등 내세울만한 외교적 성과가 없자 북핵문제에서 만회하기 위해 올인하고 있다는 것.

이런 변화된 전략을 토대로 이제 미 행정부는 북한에게 `2.13합의’ 이행을 압박하고 있다.

국무부 숀 매코맥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북핵문제의 걸림돌이 돼온 BDA문제가 풀린 만큼 북한은 북한의 의무사항을 조속히 이행하길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약속대로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방북을 허용하라는 것이다.

매코맥 대변인은 “만약 북한이 6자회담 다른 당사국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들은 (전반적인) 절차와 상황을 재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대북경고를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있어 부시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고집하며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네오콘 등 비판론자들은 벌써부터 부시 행정부가 `무원칙한 협상’을 벌였다고 공격할 태세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정책위원장을 지낸 리처드 펄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북한에게서 믿고 예측가능한 행동을 기대할 수 있는 예를 찾아볼 수 없다”며 `2.13합의’는 부적절한 협상이고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의 주장에 적극 동조했다.

헨리 스팀스 센터의 아시아 전문가인 앨런 롬버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는 이번 조치가 어떤 결과를 낳을 지 모르는 길로 접어들었다”고 꼬집었다.

부시 행정부의 승부수가 실패할 경우 한반도에 몰아닥칠 `후폭풍’이 더 우려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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