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합의 한달] 합의 이행..그 후는

이목지신(移木之信).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9일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꺼낸 말이다.

사기(史記)의 `상군열전(商君列傳)’에 나오는 말로 ‘남을 속이지 않으며 약속한 것을 실행한다’는 의미다. 반대말이 식언(食言)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송 장관의 이 말을 2.13합의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에 따라 북한은 60일 이내에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의 폐쇄.봉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를 통한 감시.검증 ▲포기 대상인 핵 프로그램 목록 논의라는 자신의 의무를 착실히 완수한다.

이에 맞춰 나머지 5개국은 중유 5만t 상당의 에너지 지원을 하고 미.북-북.일간 관계정상화를 위한 양자회담을 진행하며 ▲비핵화 ▲경제.에너지 지원 ▲동북아 다자안보 실무그룹 회의 가동에 적극 나선다.

지난주 뉴욕과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된 북.미, 북.일 양자 회담(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 IAEA 사찰단의 오는 13일 방북, 이번 주중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실무그룹회의 등은 2.13 합의가 일단 순항중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북한의 태도로 볼 때 오는 19일의 제6차 6자회담은 물론 ’60일 시한’에 해당하는 다음달 14일까지의 전망도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

믿음을 훼손하는 움직임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연내 북.미 수교합의설’이나 ’18개월 내 비핵화 실천 로드맵 마련’ 또는 ‘평화체제 조기 구축’ 등 각종 시나리오 등이 외교가에 나돌고 있다.

특히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0일 베이징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테러지원국 삭제 등 현안들을 하루빨리 북.미 사이 전략적 이해관계에 맞춰 함께 해결하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가 됐다”고 말함으로써 낙관적 시각에 더욱 무게감을 주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총부리를 겨눈 북한과 미국이 관계정상화를 한다는 말은 핵문제 해결을 넘어 지구상 마지막 남은 냉전의 섬,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바람이 밀어닥치는 것을 의미한다.

김 부상은 특히 “앞으로 힘을 다해 빨리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수립함으로써 한반도에 냉전의 산물을 없애 버리자고 (미국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는 북한의 태도가 어떤 가에 따라 향후 논의의 방향이나 속도가 정해질 것으로 여겨져 왔다. 김 부상의 발언은 결국 북한도 평화체제 논의에 흔쾌히 동참할 것임을 확인해준 셈이다.

김 부상은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는 4개국만 논의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4개국만이 논의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입장은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 한국의 위상을 분명히 하려는 한국과도 맥이 닿아있다.

지난 5-6일 뉴욕에서 진행된 북.미 양자회담의 결과나 김 부상의 발언 등을 종합해보면 2.13합의에 따라 ’60일 이내에’ 약속한 것들이 착실하게 추진될 경우 새로운 협상의 기운이 한반도를 휘감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실무적으로만 볼 경우 일단 완전한 핵 프로그램 신고에 이어 핵폐기의 초기단계인 불능화(disablement) 조치가 추진돼야 한다.

특히 불능화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2.13합의 발표 당시만 해도 이른바 `광의의 초기조치’ 또는 ‘(핵폐기를 위한) 초기조치의 다음 단계’라는 뜻으로 다소 추상적으로 사용되던 불능화 개념이 최근에는 ‘핵폐기 초기단계’라는 뜻으로 보다 분명해졌다.

한.미 양국은 이미 북한이 불능화 단계까지 이를 경우 ‘과감한 거래’를 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여러 곳에서 거론되는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나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 시점도 북한이 ‘돌이킬 수 없는 폐기’의 첫 단계인 불능화에 돌입하는 순간이 될 수 있다.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에 이어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적극 나설 경우 곧바로 연락사무소 개설이나 연락사무소 개설 없이 곧바로 대사관급 외교관계 수립 논의에 착수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게 외교가의 전망이다.

북.미 관계 차원을 넘어 6자 차원에서는 중유 95만t에 달하는 에너지 및 인도적 지원 등이 북한에 제공되면서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개선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된다.

아울러 남북한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차원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 포럼의 가동이 예상된다. 또 동북아 차원에서는 6자회담의 한 실무그룹으로 자리잡은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실무그룹도 가동되면서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북아의 평화 메커니즘 구축이 화두가 될 전망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불능화 조치까지 얼마나 자신들의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지가 향후 북핵 협상의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불능화 조치는 `60일 이내에 이행해야 하는’ 초기조치가 끝나는 시점(4월14일) 이후부터 대략 6개월에서 최장 1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불능화까지 이르기에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김계관 부상이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의 전액 해제를 촉구하면서 `일부 해제’의 경우 ‘상응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데서 보듯 철저하게 ‘동시 행동원칙’에 따라 북한과 나머지 5개국이 첨예한 신경전을 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전문가 차원의 일이긴 하지만 영변 핵시설 폐쇄 및 봉인 과정에서 북한과 IAEA 사찰단이 예기치 못한 충돌을 빚을 수도 있다.

여기에 한국은 물론 미국과 북한 내부에서 현재의 협상구도를 반대하는 강경파 등이 방해책동을 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직 신뢰의 토대가 굳건하지 않은 북한과 나머지 5개국이 돌발변수에 걸려 전체 협상을 그르칠 수 있다는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외교소식통은 “뉴욕 북.미회담에서 보듯 핵심당사국인 북.미 양측이 상당한 믿음을 보이는 상황을 감안할 때 대체로 흐름은 낙관적”이라면서 “하지만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예상치 못한 악재가 생길 수 있는 만큼 관련국 모두 약속을 실천하는 믿음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