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합의 한달] 미국의 입장

“`2.13합의’의 초기이행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감을 갖게 됐다”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지난 6일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뉴욕회담을 마친뒤 내린 평가다. “회담이 매우 유익했으며 양측이 `2.13 합의’에서 60일간 이행토록 규정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낙관적인 기대를 갖게됐다”는 것.

힐 차관보의 이 같은 발언은 2.13합의 한 달을 맞은 미국 정부의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측의 전략적 결정 여부에 대한 불신감을 떨치지 못해온 미국측은 북한측의 이행조치에 전에 없이 후한 점수를 주며, 벌써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사전 준비로 관심의 초점을 옮기는 모습이다.

힐 차관보는 북미간 뉴욕회담에서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한 전반적인 문제 뿐 아니라 2.13 합의 1단계 조치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도 장시간 유익한 토론을 가졌다고 밝혀 양측이 2단계의 핵심과제인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와 불능화, 경수로 등 대북 추가지원 문제를 깊이있게 논의했음을 시사했다.

특히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파기의 단초가 된 고농축우라늄(HEU) 핵프로그램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 변화는 괄목할만 하다.

힐 차관보는 2.13 합의 이후 미국 내 초청 강연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북한과 이미 HEU 핵프로그램 문제에 대한 상당한 논의를 했으며, 양측이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북한이 HEU 프로그램 관련 장비를 사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이용해 핵무기 프로그램을 정말로 진전시켰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의견을 밝힘으로써 이 문제는 충분히 해결 가능한 것임을 내비쳤다.

이와 함께 미국 내 관련 전문가와 정보책임자들도 북한의 HEU 프로그램 관련 정보가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음을 잇따라 밝혀,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상징처럼 여겨져온 HEU프로그램 문제는 오해에서 비롯됐으며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인식은 순식간에 확산됐다.

2.13 합의 한 달이 지나면서 두드러진 또다른 변화는 양측이 관계정상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보다 큰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힐 차관보는 북미 양측이 뉴욕회담에서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만들어내기 위한 ‘메커니즘’을 논의하기로 합의했으며, 미국은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대체할 평화 메커니즘을 어떻게 창출할지를 밝히기 위한 절차가” 시작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북미 수교와 관련, 북한측은 특히 상호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데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연락사무소 없이 곧바로 수교를 향해 가는 `급행’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천명한 2.13 합의에 따라 미국이 직접 취해야 할 조치는 방코 델타 아시아(BDA)의 북한 동결계좌 해제와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담 개최 두 가지 정도였다.

BDA 문제에 대한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힐 차관보가 30일 내 해결을 직접 천명했고, 북미 금융실무회담 미국측 대표인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금융범죄담당 부차관보가 이미 마카오를 방문해 금융제재 해제 절차를 밟은 만큼 관련 수순은 모두 마친 상태이다.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1차 회담도 뉴욕으로 북한측 김계관 대표를 초청, 이례적인 환대와 예우 속에 깊이있는 대화를 나눔으로써 2.13합의는 충분히 이행된 셈이다.

불과 두 세 달 전까지만 해도 예상하기 어려웠던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이 같은 과감하고 빠른 대북 행보에 대해 보수 진영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유엔을 무대로 미국 외교를 지휘했던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대사는 북핵 외교 비판의 선봉에 나서 2.13합의가 북한의 나쁜 행동을 보상하는 ‘나쁜 합의’라며 곧 깨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니컬러스 에버슈타트 미국경제연구소(AEI) 연구원도 이 합의가 부시 행정부의 전략적 실수라고 맹비난했다.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이 사표를 낸 것도 2.13합의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으며, 백악관 내 네오콘(신보수주의) 인사들과 특히 딕 체니 부통령의 반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과거 북핵 협상이 진전을 보일 때마다 역풍을 일으키며 강력한 차단막을 쳐온 이들 강경파 인사들의 공세는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과의 협상에 반대해온 강경파의 대부격인 딕 체니 부통령이 2.13합의에 별다른 제동을 걸지않고 있는 점은 부시 행정부의 커다란 변화로 지적되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모든 게 가능하다’

힐 차관보가 입버릇처럼 밝혀온 부시 행정부의 이 같은 정책은 이제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수교를 비롯한 `모든 게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