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합의 한달] 남북대화 복원..기조변화 `뚜렷’

베이징(北京)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2.13합의’가 나온 날, 한반도의 허리인 판문점에서도 정세 변화를 알리는 또다른 합의가 이뤄졌다.

남북장관급회담 개최를 위한 대표접촉을 갖자는 우리측의 전날 제의에 북측이 선뜻 응해 온 것이다. 절묘한 타이밍에 대화 제의와 합의가 이뤄지면서 7개월 만의 남북대화 복원을 알린 순간이었다.

이어 2월 15일 개성에서 열린 대표접촉을 징검다리 삼아 남북은 2월 27일부터 3월2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20차 장관급회담에서 2.13합의의 이행 의지를 확인하는 내용을 포함한 6개항의 공동보도문에 합의했다.

놀랄 만한 합의는 없었지만 주로 후속 회담 및 행사 일정을 구체화하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열린 지난해 7월 제19차 회담 때부터 움츠러들었던 남북관계가 기지개를 편 것이다.

통일부는 이에 대해 “6자회담과 남북대화를 병행 추진함으로써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의 선순환적 진전을 강화하게 됐다”고 자평했다.

참여정부 평화번영정책의 `두 팔’이 돼왔던 6자회담과 남북회담의 동시 가동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실제로도 대화 재개와 합의과정을 되짚어 보면 겉보기에는 양대 대화트랙의 병행 추진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참여정부 평화번영정책에 별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면을 보면 정책집행 현장에서 작년 말부터 감지되던 변화의 기류가 이젠 확연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게 나온다.

그 변화의 양상은 `병행정책’의 본질적 변화라기 보다는 병행의 틀인 6자회담과 남북회담 가운데 정부가 두는 무게 중심이 한 쪽에 치우치고 우선점이나 선후(先後)가 뚜렷해진 것으로 요약된다.

물론 확실히 무게가 더 실리고 우선점이 된 곳은 6자회담이다.

일각에선 북한의 핵실험 이후 이뤄진 방법론의 미세 조정에 그치지 않고 기조 변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해석의 근거로는 장관급회담에서 잡은 남북대화 일정이 2.13합의가 담은 초기 조치의 이행 시한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 우선 거론된다.

실제로 대북 쌀 차관과 경공업 원자재 제공을 논의할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4.18-21)가 북측의 3월 개최 요구에도 불구하고 영변 핵시설의 폐쇄.봉인 시한인 60일이 만료되는 4월 14일 이후로 잡혔다.

여기에는 쌀이나 경공업 원자재를 북한의 초기 조치 이행을 유도하는 지렛대로 사용하겠다는 우리측 계산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이런 분위기는 6자회담이 열리지 못하고 남북회담만 돌아가던 작년 5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많은 양보를 시사하며 물질적.제도적 지원을 언급했던 당시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당시 노 대통령의 발언은 병행이 여의치 않다면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북핵의 실마리를 풀어보자는 `견인론’의 성격이 강했다는 관측을 낳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연초부터 국내 정국을 달구는 소재가 됐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필요성이나 당위성 측면에서 오히려 6자회담의 뒷전으로 밀려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재정 통일장관은 지난 8일 6자회담이나 남북회담 상황을 지켜보는 게 지금은 중요하다며 “7년 전에는 정상이 꼭 풀어야 할 과제가 있었는데 반해 지금은 주제나 과제가 뚜렷하게 없다”고 밝혀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 같은 흐름의 원인은 지난 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국내적으로 새로운 논란을 낳을 여지도 있어 보인다.

좋게 보면 남북관계가 2.13합의 이행의 추동력이나 촉매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극단적인 시각에서는 남북회담이 6자회담에 종속됐다는 지적도 나오기 때문이다.

한 편에서는 남북관계가 북핵 진전에 순기능을 하며 `보조(步調)’를 맞춰나가는 정도로 보는 긍정적 해석을 내놓지만 다른 쪽에서는 6자회담의 `보조(補助)’로 전락했다는 부정적 분석도 나오는 형국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향후 남북관계 전망도 쉽지만은 않게 만들고 있다.

남북관계가 6자회담의 진전을 추동하면서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많지만 2.13합의의 이행이 삐끗할 경우 바로 남북관계에 직.간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있기 때문이다.

또 북.미 간에는 평화체제 문제도 거론되고 있는 반면 우리측은 20차 장관급회담에서 평화체제에 필수적인 남북군사회담 개최를 제의조차 하지 않으면서 `속도 차이’ 발생을 우려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물론 1994년 제네바합의 당시의 북.미 양자 구도와는 달리 외견상 현재 북핵 협상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주체는 6자 틀이라는 점에서 지금 스탠스로도 북핵과 남북관계 진전을 모두 도모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남북관계에서 주목할 대목은 경협위다.

오는 14∼15일 열차 시험운행을 위한 남북접촉과 4월 10일에는 적십자회담이 잡혀 있지만 경협위에는 북한의 최대 관심사이자 2.13합의 이행 여부와도 맞물린 모양새인 쌀과 경공업 원자재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2.13합의 초기조치를 4월 14일까지 이행할 경우 경협위에서는 쌀차관 50만t 제공 합의서에 서명하고 열차시험운행을 거쳐 경공업 원자재까지 북측에 제공되면서 남북관계가 가속도를 낼 전망이다.

하지만 북.미 간 협상에 돌발변수가 생겨 초기조치 이행에 실패할 경우 정부는 북한 핵실험 이후 다시 한번 쌀과 원자재를 놓고 고민에 빠지는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이런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남북정상회담 개최론이 다시 힘을 받을 수도 있다고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지만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6자회담이 진전을 볼 때까지 남북관계도 주춤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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