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北후계] 걸음마 뗀 ‘3대세습’ 험로예상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월 셋째 아들 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한 이후 북한은 `3대 권력세습’ 구축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사실 작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질 때까지만 해도 북한의 권력승계 준비는 전혀 안 돼 있었다고 봐야 한다.


와병 당시 김 위원장의 나이가 66세로 한창이었고 후계자를 서둘러 정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아 후계자를 지명한 것은 아무래도 김 위원장의 건강이 여전히 마음 놓기 어려운 상태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서둘러 후계자로 정한 김정은에게 권력 승계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는 점이다.


북한측 주장에 따르면 김정은 1982년생으로 올해 27세에 불과하다. 게다가 정치 경험은 고사하고 당이나 내각에서 공적인 일을 맡았던 경력이 전무하다.


실제로 북한 내에서 김정은의 존재는 일반 주민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김정일 위원장의 극소수 측근들을 제외하면 권력층 내에서도 인지도가 매우 낮다고 한다.


북한으로서는 김정은이 김정일 위원장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주입시켜야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의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권력을 승계받을 때처럼 김정은도 ‘탁월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지도자로 주민들에게 각인시켜야 함은 물론이다.


김 위원장이 올 한해 아픈 몸을 이끌고 작년보다 77% 많은 154차례(12월18일 현재)나 공개활동에 나선 것도 후계구도와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김정은을 공개활동에 데리고 다니면서 `후계자 수업’의 일환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고 동시에 그의 존재를 널리 알리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런 흐름상 북한은 내년에 ‘탁월한 후계자 김정은’ 알리기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체제의 안정과 관련해서는 화폐개혁과 부동산관리법 등 경제 관련 법률의 시행을 통해 확보한 재원을 주민들의 생활고 개선에 투입, 민심을 우호적으로 돌리는 한편 미국, 일본과의 대화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김정은 후계 구도’를 언제 공식화할지는 매우 가변적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한은 이른바 `강성대국’ 건설 원년으로 정한 2012년에 당대회 등을 열어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를 공식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면 언제라도 그 시점은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김 위원장은 현재 만성신부전증으로 정기적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는데, 유전적인 심장질환 때문에 장기간의 투석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될 경우 내년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일(10월10일)에 맞춰 `김정은 권력 승계’를 선포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김정은 후계 구도’가 공식화된다 해도 김정은이 당장 북한의 권력기관을 장악해 주요 정책 결정과 인사에서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정일 위원장만 해도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10년간 정치경력을 쌓은 다음 1974년 후계자로 내정됐고 6년 후인 1980년에 가서야 `후계자 지위’가 대내외적으로 공식화됐다. 정치경력을 처음 쌓기 시작한 때부터 따지면 16년, 내정 시점부터 봐도 6년 후에야 후계자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건강하게 활동하는 상태에서 오래 동안 아버지의 후광을 받으며 정치적 입지를 다지다가 공식화 시점에는 `후계자’ 지위에 걸맞은 권력을 확고히 장악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로서 권력을 장악한 과정과 비교하면 지금의 김정은은 아직 권력승계의 걸음마도 제대로 떼어놓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 과정이 상당히 험난할 것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다.


한 북한 소식통은 “북한의 권력층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눈치보기가 매우 심각하다고 한다”며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됐다고 해서 기반이 허약한 그에게 쉽사리 권력이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북한 소식통도 “지난 1년간 김정은은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냈지만 별로 반영되지 못했다”면서 “특히 주요 인사 결정에는 거의 관여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처럼 아직은 기반이 허약한 김정은이 북한의 3대 세습 권력자로 확고히 서려면 고모부인 장성택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김정일 위원장 입장에서는 아들 정은한테 권력을 넘겨주기 위해 매제인 장성택을 강력한 `후견인’ 으로 선택해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그러나 장성택이 손에 쥔 권력을 순순히 넘겨줄지는 미지수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김정은을 후계자로 추천한 장본인으로 알려진 장성택 국방위원(노동당 행정부장 겸직)은 현재 김 위원장의 업무를 보좌하면서 사실상 최고 실권을 휘두르고 있으며, 북한의 실질적 최고 기구인 국방위원회 등 권력 핵심부에 측근들을 많이 심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정치적 야망이 큰 김정은의 성격상 그가 김 위원장이 만들어 주는 `업적쌓기’ 속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세력확장에 나설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대북 소식통들은 김정은이 구사할 수 있는 권력 장악 수단 가운데 하나로 이른바 `비밀파티’를 꼽는다. 김정일 위원장도 후계자 시절부터 측근들을 결집해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비밀파티를 애용했다고 한다.


실제로 김정은은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김 위원장의 측근 비밀파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김 위원장의 허락 하에 군부와 노동당 실세들을 불러 모아 자주 비밀파티를 여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번은 김정은이 김 위원장이 주재한 비밀파티에서 “핵으로 남조선을 위협해 쌀을 갖다 바치게 하겠다”는 식의 돌출발언을 해 참석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북한 문제 전문가는 “북한이 김정은 업적쌓기를 하고 김정은 후계 구도를 공식화한다고 해도 권력 승계 과정은 험난할 것”이라면서 “대외적 요소보다는 오히려 내부의 권력투쟁이 후계체제 구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