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북한] 對美 `경색→대화’ 급선회②

북한의 대외정책을 말하면서 미국과 중국을 빼놓기는 어렵다.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나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 구도, 미중 두 나라의 국제적 위상 등을 볼 때 북한의 외교정책은 거의 매번 이들 두 나라와 얽힐 수밖에 없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상반기에 경색 국면으로 치닫았다가 하반기에 유화 분위기로 반전되는 흐름을 보였다.

상반기에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 강행이 미국 주도의 유엔 대북 제재와 정면 충돌하면서 험한 대치국면이 이어졌다.

반면 하반기에는 중국 국경 근처에서 북한 경비병에 붙잡혀 억류돼온 미국 여기자 문제를 협상하면서 북미 관계가 풀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 문제를 단판지으러 북한에 들어갔고 결국 이를 계기로 두 나라 사이의 빙결이 조금씩 녹아 12월 보즈워스 특사의 방북으로 이어졌다. 꽁꽁 얼어붙었던 북미 두 나라 간 첫 공식 대화가 올해 마지막 달에 가서야 열린 것이다.

사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북미 양국 관계가 그렇게 나빴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마바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운동을 하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북한이나 이란의 지도자와도 만날 수 있다고 공언했다. 북한은 이에 화답하듯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을 20일 앞두고 발표한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미국에 대한 비난을 극도로 자제했다.

특히 이 공동사설에는 `조선반도 비핵화’에 대해 상당히 유화적으로 언급한 듯한 대목이 들어있어 눈길을 끌었다. 다름 아닌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우리 공화국의 자주적인 대외정책의 정당성이 갈수록 힘있게 과시되고 있다”고 한 부분이다.

이를 놓고 2006년 1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2008년 말에는 핵 검증문제로 6자회담을 결렬시킨 북한이지만 올해에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진의가 어디에 있었든 결과적으로 북한은 미국의 관심을 끄는데 실패했다.

취임 전부터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노선을 표방한 오바마 대통령이었지만 김정일 정권과의 직접 협상 카드를 꺼내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북한의 ‘6자회담 선(先)복귀’라는 원칙론적 입장만 되풀이해 북한의 조급증을 부채질했다.

미국으로서는 192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경제위기가 당장 `발등의 불’이었고, 외교적 비중에서도 북한보다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이 선순위였던 것 같다.

멀리 떨어져 신경전만 벌이던 양국 관계를 `급전직하’ 악화시킨 사건을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였다. 때마침 핵개발 의혹을 받던 이란이 2월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해 잔뜩 긴장이 고조돼 있던 터였다. 그런데 북한이 두달 후인 4월 장거리로켓 ‘광명성2호’ 발사를 강행하자 미국 등 국제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장거리로켓 발사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를 결의하자 북한은 ‘6자회담 복귀 불가’를 거듭 확인하면서 불능화 상태의 핵시설도 원상복구하겠다고 맞섰다. 그것도 부족했던지 북한은 그 다음달인 5월 `2차 핵실험’이라는 초강수를 던졌고 이에 유엔은 무기금수, 화물검색, 금융제재 등의 대북제재를 골자로 하는 안보리결의 1874호를 채택,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최악으로 치닫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대치국면은 뜻밖에도 북한의 미 여기자 억류라는 `악재’에서 해빙의 실마리를 찾았다.

북한은 3월 북중 국경지역에서 취재중이던 미 커런트TV 여기자 2명을 `월경 혐의’로 체포, 중형을 선고한 뒤 억류중이었다. 그런데 수면 아래서는 미국측 고위 인사가 협상에 나설 경우 이들 여기자를 석방할 수도 있다는 `시그널’을 은근히 보냈다.

이에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8월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난 뒤 여기자들과 함께 귀국했고 북한은 이를 계기로 그동안의 강경기조를 조금씩 풀어갔다.

우선 남한에도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했고 추석 때는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서울에 온 북한의 조문특사단이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한 것도 연초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올해 북미 관계의 대미는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통령특사의 방북으로 장식됐다. 12월 8일 평양을 방문한 보즈워스 특사는 현정부 출범후 첫 대북 대화를 열어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6자회담 재개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북미 관계가 험악하게 돌아가던 때를 생각하면 상당한 관계 개선을 이루고 내년을 기약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한편 전통적 우방인 북한과 중국 사이에도 올해에는 `냉온 국면’이 크게 교차했다.

수교 60년을 맞은 양국은 올해를 `우호 친선의 해’로 정할 만큼 돈독한 사이였으나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이후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대해 중국이 거부권을 포기함으로써 분위기가 급랭했다.

그러나 북미 두 나라 사이가 조금씩 풀리면서 북중 관계도 비슷한 흐름을 탔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다음날인 9월 중국의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에 갔고, 10월 초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뜻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 때 “조(북)미 양자 회담의 상황을 지켜본 뒤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할 것”이라는 발언을 해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체면을 살려줬고, 원자바오 총리는 같은 달 한.중.일 회담에서 `김위원장이 미국뿐 아니라 한국,일본과도 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는 취지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을 빼면 올해 북한의 외교적 성과 가운데 프랑스와 접촉 채널을 연 것이 눈에 띈다.

북한은 11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자크 랑 하원의원으로부터 평양 문화협력사무소 개설을 제안받고 이를 받아들였다. 비록 문화협력사무소이긴 하지만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외교관계가 없었던 프랑스와 상시적 접촉채널을 열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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