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정치]증고비 못넘은 북핵

“진실의 문을 끝내 열지 못했다.”

2008년 12월11일, 북한의 과거 핵활동을 검증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채택하기 위해 나흘간 진행된 제6차 6자회담 3차 수석대표회의가 끝난 뒤 회담장인 댜오위타이(釣魚臺)를 빠져나온 정부 당국자는 6자회담의 현주소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의 말대로 2008년 한해 최소한 북한 비핵화 2단계를 마무리하고 3단계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를 놓으려했던 관련국들의 노력은 결국 성과를 보지 못했다.

12월8일 시작된 북핵 6자 수석대표회담이 예정된 사흘간의 일정을 하루 연장해 11일까지 열렸지만 의장국인 중국이 발표한 의장성명에는 검증문제가 이번 회담의 의제로서 논의됐다는 점만 담겼을 뿐 검증의정서와 관련된 협의내용은 없었다.

어쩌면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그만큼 6자회담의 동력이 사그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되던 2007년 10월 초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채택된 북핵 10.3합의는 불능화와 신고, 그리고 이에 상응한 에너지 지원과 테러지원국 해제를 그해 말까지 완료하기로 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해를 넘겼지만 핵 신고와 이를 검증하는 문제를 놓고 벌어진 북한과 미국간 줄다리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상황에서 ’승부사’ 기질이 농후한 미국의 6자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절충의 미학’을 발휘했다.

그는 북한이 신고서에 담기를 꺼리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해외 핵확산 의혹은 공식 신고서에 담지 않는 대신 비공개 양해각서에 담고 북한이 의장국 중국에 제출할 신고서에는 플루토늄을 생산.추출하는 내용만 담기로 하는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다. 북한도 동의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6월26일 중국에 신고서를 제출했고 이를 축하하듯 영변 핵시설 가운데 상징성이 큰 냉각탑을 폭파했다. 미국도 곧바로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한 절차에 들어가 해제한다는 내용을 의회에 통보했다. 45일내에 의회의 반대가 없을 경우 테러지원국 해제는 현실화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미국은 신고 내용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검증하기 위해서는 검증의정서가 필요하다고 압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7월에 열린 6자 수석대표회담은 어설픈 검증합의를 도출했다. 그 내용을 보면 ▲6자의 전문가로 검증체제를 구성하고 ▲검증조치는 시설방문, 문서검토, 기술인력 인터뷰 및 6자가 만장일치로 합의한 기타조치를 포함하며 ▲필요할 경우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관련 검증에 대해 자문과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북한의 동의와 협조가 없이는 북한의 신고 내용을 검증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당연히 미국내 강경파는 물론 한국과 일본 등이 반발했다.

특히 ’시료채취’ 부분을 놓고 북한과 나머지 참여국간 이견이 첨예하게 맞섰다. 원자로에서 인출한 사용후 연료봉 시료, 재처리시설에서 방출된 액체 폐기물 시료, 원자로 건물 내외의 환경 시료 등을 채취해 분석하면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량, 재처리 횟수, 원자로 가동 주기, 재처리 기간, 심지어 플루토늄의 품질까지도 추정할 수 있다.

게다가 최신 첨단기술은 시료분석을 통해 나노(10억분의 1)나 피코(1조분의 1) 단위의 핵물질도 검출할 수 있어 은닉시설까지 추적할 수 있다. 플루토늄 핵프로그램을 넘어선 UEP 보유 여부까지 추적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자신들의 핵능력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했는지 북한은 ’시료채취는 다음 단계에서나 가능하다’며 완강히 거부했고, 미국도 테러지원국 해제를 유보시켰다.

이에 북한은 진행중이던 핵시설 불능화를 중단하는데서 더 나아가 복구에 착수하는 위협전술로 맞섰다. 임기 말에 몰리고 미국의 대선을 앞둔 부시 행정부는 다시 타협을 선택한다. 힐 차관보가 평양으로 들어가 10월2일 북한과 ’검증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정부는 10월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미 국무부는 ’시료채취와 법의학적 방법을 포함한 과학적 절차’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부인했다. 시료채취에 합의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미 간에는 명확한 문서합의도 없었다는 전언이 들려왔다.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12월4∼5일 싱가포르 북.미회동이 진행됐지만 허사였다. 직후에 열린 베이징 6자회담도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고 만 것이다.

이번 회담의 결렬은 6자회담의 운명을 말해주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002년 10월의 ’HEU(고농축우라늄) 파동’으로 촉발된 2차 핵위기를 풀기 위해 부시 행정부가 선택한 6자회담이 2003년 8월 출범 이후 5년여만에 동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6자회담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서슬퍼런 감시를 뚫고 2005년 9월 비핵화의 조감도인 9.19 공동성명을 만들어냈고 이를 토대로 비핵화 2단계를 마무리하는 상황까지 연출하는 등 성과도 적지 않았다.

협상이 교착국면에 빠지자 북한은 전대미문의 핵실험을 강행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곧 끝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앞으로 북한을 상대해야 할 미국의 주역은 오바마 신정부다. 오바마 차기 대통령이 6자회담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그리고 북핵 문제를 얼마나 정책의 우선순위 앞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6자회담의 미래, 그리고 북한의 미래도 중대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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