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북한] ③김정일, 후계자 ‘유산’ 마련 급선무

내년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를 정하거나 후계구도 마련에 본격 착수할까.

김 위원장은 2008년 66세가 된다. 아직 김 위원장의 후계자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정통한 대북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김 위원장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62세에 김 위원장을 후계자로 공식 지정한 것에 비하면 김 위원장의 후계자 지정은 이미 수년 늦은 셈이다.

김 위원장의 건강도 예전같지 않다. 지난 10월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외부에 드러난 그의 모습은 세월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음을 역력하게 보여줬다.

그가 남북정상회담에서 당뇨병과 심장시술 보도를 부인하기는 했지만, 66세의 나이는 언제든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어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다.

김 위원장도 이제는 후계문제를 마냥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일 위원장이 2005년까지만 해도 레임덕 등을 의식해 후계 문제를 일절 거론하지 말라고 지시했으나 최근에는 조금씩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입장에선 당장 누구를 후계자로 선정할 것이냐가 급한 것이 아니라, 후계자에게 물려줄 유산 마련이 시급한 과제라고 대북소식통과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후계자와 후세에 ‘업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정치.경제.외교적 환경을 확실히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

이는 단순히 김 위원장의 명성 문제가 아니라, 후계자의 취약한 권력 기반, 북한 내외 환경의 열악함 등을 감안할 때 후계자가 체제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 물적 기반을 물려줄 수 있느냐의 생존 문제이다.

사실 김 위원장은 1970년대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정치적 안정과 비교적 탄탄한 경제를 물려받은 반면 자신이 후계자에게 물려줄 것이라곤 핵무기외엔 국제적 고립과 늘 대량아사의 위기감을 안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 뿐이다.

핵무기도 자위적 목적이라지만 국제적 비난과 압박을 자초하는 애물일 수 있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붕괴 후 북한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체제에서 고립된 섬 처지를 면치 못하고 있고, 혈맹이던 중국마저 북한에 대해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지향하고 있어 오늘날 북한의 정치.외교적 환경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후계자가 된 이후 어려워지기 시작한 경제는 1990년대 중반 수백만명의 아사자를 냈고, 그후 경제강국 건설을 외치고 있지만 북한의 현실은 이를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게 한다.

김 위원장도 이같은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며 “식량난과 경제난에 허덕이는 거덜난 국가를 후계자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대북소식통들은 전한다.

또 북한이 1980년 제6차 당대회 이후 27년이 지난 현재까지 7차 대회를 열지 못하는 배경에는 “아무런 경제적 성과없이 당대회를 개최할 수 없다”는 김 위원장의 고민이 있다고 고위층 탈북자들은 증언한다.

당대회조차 못 열고 있는데 하물며 체제의 운명을 좌우하는 후계자 선정을 아무런 유산없이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연철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그동안 사회주의권이 붕괴했고, 북핵 문제가 부상했으며,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최악의 경제위기를 거쳤다”며 “북한은 후계구도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쩌면 후계구도를 형성할 수 있는 시점을 놓쳤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결국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는 후계자를 위해서라도 핵문제 해결을 통한 북미관계 정상화 등 대외관계를 개선하고 대북투자를 유치해 경제를 회생시켜 유리한 대내외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은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변화하는 가운데 오랜 숙원인 북미간 갈등과 대립을 청산하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유리한 정치.외교적 환경을 조성하는 동시에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강성대국 건설의 토대를 후계자에게 물려주려는 구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남북정상회담 오찬 중 정세현 민화협 상임의장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최대한 빨리빨리, 성의껏 하겠다. 미국이 하자는대로 하겠다”고 말한 데서도 정상국가 진입에 대한 북한의 조급함이 엿보인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서 해군기지가 있는 해주지역의 경제특구 건설 방안을 수용하고 남포.안변지역에 경제특구를 개발하는 등 남북경협을 한 단계 도약시키기로 전격 합의한 것이나, 이후 보여준 ‘빨리빨리’ 행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연철 교수는 “북한의 후계문제는 북미관계나 남북관계 등 전통적으로 통용되던 협상에서의 시간 문제를 역전시키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협상 과정에서 북한은 5년이나 4년마다 대통령이 바뀌는 남한이나 미국과 달리,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었지만 김 위원장의 나이와 건강을 고려할 때 이제 시간은 김 위원장에게 제약 요소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북한이 지난 1일 폐막된 전국지식인대회에서 김 주석의 생일 100돌을 맞는 “2012년에 기어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야 한다”며 강성대국 목표 기한을 처음 밝힌 것은, 후계자에게 물려줄 정치.경제.외교적 유산을 준비하는 기간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2012년을 강성대국 목표 연도로 잡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후계 준비기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라며 “2012년은 김 위원장의 나이가 70세가 되는 해인 만큼 후계구도의 윤곽이 드러날 시점으로 보이고, 이를 위해 북한은 내년부터 5년간 후계 준비에 주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부 대북 소식통과 전문가들은 후계자 선정과 관련, 국방위원회의 시스템에 유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후계자는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집무를 시작한 김 위원장과 달리 국방위원회에 뿌리를 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당 조직지도부에서 첫 업무를 시작했다고 그의 후계자도 반드시 조직지도부에서 업무를 시작할 것이라고 단정해선 안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자신의 ‘선군정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만큼 그의 후계자는 국방위에서 출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들어 북한이 국방위원회의 전임직책을 대폭 늘리는 등 ‘최고의 권력기구’ 답게 상근 기능과 상설기구로서의 외형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앞으로 국방위원회는 노동당처럼 수백명의 인원이 근무하는 실질적인 조직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김 위원장은 당을 통해 후계통치에 성공했다면 김 위원장의 아들 중 하나가 후계자가 될 경우는 국방위를 통해 통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연철 교수도 최근 국방위원회의 실무기능이 확대되고 있는 데 주목, “국방위는 당의 제도적 기능이 약화된 상태에서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부상했고, 핵문제나 남북관계에서의 군사적 신뢰구축 등 핵심 국정 현안을 다루고 있다”며 “국방위의 실무기능 강화는 선군정치의 자연스러운 결과인 동시에 북한 후계구도 형성의 핵심기반 형성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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