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일] “김정은, 관계개선 바란다면 이산상봉 성사시켜야”

▶전날 북한 주민들이 청취한 대북 라디오 방송 중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자유조선방송/2월 3일>

논평-어째서 이런 꼼수를 자꾸 쓰려 하는가.

김정은 정권이 5일이나 6일에 판문점 통일각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열흘 넘게 남한 정부가 실무접촉을 갖자고 촉구해도 한 마디 대답이 없다가 오늘 드디어 입을 뗀 겁니다. 이걸 보면 이산가족상봉을 순수한 인도주의적 차원이 아니라 한낱 자기들의 정치적 도구로 써먹으려 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에서는 2월에 김정일 생일 행사로 전체 인민이 동원되어 몸살을 앓는 때입니다. 남한에서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이 2월 말부터 진행됩니다. 때문에 음력설을 계기로 이산가족상봉을 하려고 한다면 남북 모두가 편리한 날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때문에 남한 정부는 북한 당국이 이산가족상봉에 호응해오자 남북한 모두가 이견이 없을 17일~22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실무접촉을 빨리 갖자고 열흘 넘게 재촉했던 겁니다. 

물론 5일이나 6일 실무접촉 때 순조롭게 행사 일정을 잡고 상봉행사를 치른다면야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열흘 넘게 한 마디 뻥끗하지 않다가 오늘 별안간 실무접촉 날짜를 잡은 걸 보면 실무접촉 때 어떻게 나올지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준비하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2월 말이나 3월 초로 하자고 하면서 분위기 마련차원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취소하라고 할 것입니다. 이를 빌미로 몇 차례 실무접촉을 가지다가 이산가족상봉 행사 파탄의 책임을 남한 정부에 뒤집어씌울 것은 너무도 뻔합니다.

작년 9월에도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나흘 앞두고 저들 마음대로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렸고 지금도 중대제안을 받아들이라며 뚱딴지같은 말만 연일 남발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입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애초에 말이나 하지 말 것이지, 음력설을 계기로 이산가족상봉을 왜 하자고 호응을 했단 말입니까. 음력설을 맞아 가뜩이나 고향에 남겨둔 가족 친척들이 눈에 밟혀 그리움에 애가 타는데 이들의 아픔을 또 한 번 자극해서 도대체 뭘 얻자고 한단 말입니까.

김정은 정권이 정말로 남북 관계 개선을 바란다면 이산가족상봉을 비롯한 인도적인 행사부터 성사시켜야 합니다. 그것도 아무런 조건 없이 말입니다. 매번 말하지만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다른 정치적 조건과 연계하지 말아야 하며 또 정기적으로 상봉이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남북 관계는 훨씬 좋아지게 될 것이며 국제사회 역시 김정은 정권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산가족상봉에 성실한 자세로 나서주기를 촉구해봅니다.

<북한개혁방송/1월 3일>

북한인권특강-38회 납북자의 인권 1

북조선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북조선 측이 6·25전쟁 시기와 휴전 이후에 납치해간 남조선 인사들의 인권문제와 관련해서 함께 생각하며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북조선 측이 남조선 사람들을 납치해간 일은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그 첫째는 1950년에 일어나서 약 3년간 치른 6·25전쟁 시기의 납북 즉, ‘전시 납북’이고 둘째는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된 이후 즉 ‘전후의 납북’입니다. 같은 납북이지만 시기와 성격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후 납북’은 더 큰 범죄행위입니다.

먼저 6·25전시 납북자에 대해 살펴보면 그 규모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1952년 내무부 치안국이 조사한 피랍자 수는 12만 6,325명이고 1953년 공보처 통계는 8만 4,532명 등입니다. 수치가 각기 다른 것은 전쟁 와중의 어수선한 상황 하의 조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10만 명 내외로 추정되는 규모입니다.

남녘의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에서는 이미 발견된 명부를 기준으로 중복된 분들을 제외한 납북자 명단 9만 6,013명의 명단을 분석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석자료는 전시납북자의 연령별 분포도 함께 제시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즉, 21세에서 30세까지가 가장 많은 53.6%인 5만 1,436명이고 16세에서 20세까지가 21.2%인 2만 0409명, 31세에서 40세까지가 15.4%인 1만 4,773명 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6세에서 20세까지는 다른 연령대 구분과 달리 절반의 연령대 구분인데도 불구하고 21.2%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북조선군이 남녘의 학생층을 이른바 의용군에 강제 동원한 결과로 보인다고 합니다.

한편 전시 납북자 중 귀환자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그들 대부분이 노년으로 변했고 북조선체제에 불가피하게 적응해야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또 북조선의 식량난 이후 탈북자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환 납북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 역시 대부분이 고령이고 또 납북자 본인들이 북측 가족들에게 전시 납북자 여부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으로 파악된다고 합니다.

국제법인 제네바 협약 가운데 민간인에 관한 제4협약은 제49조에서 민간인을 점령지역에서 다른 국가로 강제 이송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 제79조는 민간인의 억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조선의 민간인 납북행위는 국제법상 ‘반인도 범죄’와 ‘전쟁범죄’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968년 11월 26일 채택된 ‘전쟁범죄 및 반인도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부적용에 관한 협약’에 따라 북조선의 전시 납북행위에 대한 공소시효는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북조선은 1984년 11월 8일 그 협약에 가입했습니다.

한편 2002년 9월에 열린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남과 북은 “지난 전쟁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들의 생사와 주소확인 문제를 협의 해결할 것에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2005년 6월의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 그해 8월의 제6차 남북적십자회담, 9월의 제16차 남북장관급회담 등에서도 협의 해결하기로 잇따라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실적은 아직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2006년 3월 22일 제13차 이산가족 상봉 시 남측에서는 처음으로 전시 납북자 가족을 포함하고자 4명의 생사확인을 요청했지만, 납북된 당사자 모두 확인이 불가능했고 2006년 6월 제14차 이산가족 상봉 시에도 8명의 전시납북자 가족이 상봉신청을 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북측은 1명의 생존을 확인했으나 2주일 후 다른 사람이라고 번복한 바 있습니다.

또 2007년 5월 제15차 이산가족 상봉 시에도 남측의 4명이 의뢰했으나 사망이 확인된 1명의 가족이 상봉하고, 3명은 확인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0년에도 5명의 생사확인 의뢰가 있었으나 전원 확인 불가능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전쟁이 멎은 지 60년, 그러니까 두 세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전시에 헤어진 가족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비극입니다. 당사자와 가족은 물론이려니와 온 겨레의 아픔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전시에는 자의든 타의에 의해서든 많은 사람의 이동이 따르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20년 또는 30년이 지나면 그로 인한 고통,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포함한 대부분의 고통은 풀려나가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겨레의 경우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고통의 실마리도 풀리지 않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타의에 의해서 이산가족이 된 그들의 인도적 고통은 하루빨리 해소되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생사와 주소의 확인입니다. 그다음 소식을 주고받고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희망에 따라 재결합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 이 시간에 이어서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