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선언 1년] ‘우울한’ 합의 주역들

작년 10월을 남북정상회담과 10.4선언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던 남북한의 주역들이 지금은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올해 2월 퇴임한 뒤 봉하마을에서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봉하마을이 관광명소가 될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10.4남북정상선언 1주년을 앞두고 마음이 편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한 시기에 대한 청산작업의 일환으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의 대북정책의 효용성과 성과를 부정하면서 10.4선언도 ‘애물단지’ 취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 참모들 주도로 10월 1~2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개최되는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식 및 국제학술대회에 참석, 특별강연을 할 예정이어서 퇴임 이후 가장 주목받는 행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연설문을 참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구상에 따라 준비해온 것으로 전해져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의 현황과 앞으로 방향에 대해 특유의 직설적인 언급을 쏟아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년 전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맞이하면서 노쇠한 모습을 드러냈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뇌 관련 질환으로 수술받고 요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정권수립 60주년 기념행사에 불참하는 등 50일 가깝게 두문불출하고 있어 신체 상태가 아직 완전 회복되지 않은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김 위원장은 작년에는 1년 넘게 골칫거리였던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가 풀려 북미관계가 빠르게 진전되고 남북관계에서도 10.4남북정상선언을 통해 남북 경협이 본격화되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으나 현재 북핵문제와 북미관계는 검증문제에 걸려 북한의 당면 최대 목표인 테러지원국 해제도 미뤄진 상황이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8월11일로 예상했던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가 미뤄지자 울화가 치밀어 쓰러진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했던 남북 양측의 실무책임자급 인물들도 우울하기는 매한가지.

정상회담 발표에 앞서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북측과 협상을 벌이는 등 정상회담 준비를 주도했던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은 작년 대선 전날 방북해 자신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나눈 대화 등이 담긴 문건을 언론에 유출한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고 6일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도 출석해야 하는 처지다.

그는 검찰이 수사 8개월이 지나도록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적용 가능성을 따지며 기소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어 발목이 묶인 상태다.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김 전 원장이 공개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 아니겠느냐”며 “사법 당국의 판단이 있어야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의 파트너로 정상회담 전과 후에 서울을 다녀가기도 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일거리가 대폭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러나 지난 6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중국의 차기 국가주석으로 예상되는 시진핑(習近平) 부주석 간 면담 자리에 ‘중국통’으로 배석하는 등 건재를 과시했다.

남북한의 고위 실무 관계자들도 대부분 현직을 떠나 강단 등에서 제2의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초안을 다듬고 정상회담 때는 기록자로 배석했던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 비서관은 친정인 통일부로부터 6개월간 보직을 받지 못한 채 교육대기 상태이다가 최근 사표를 냈다.

정상회담 준비기획단 사무처장을 지낸 이관세 전 통일부 차관은 이미 현직을 떠나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대한적십자사 총재 특보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 정상회담에 이어 2007년 정상회담에도 참여해 ‘정상회담 전문가’라는 평을 듣기도 한 서훈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은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전문성을 전수하고 있다.

북쪽에서 정상회담 준비접촉에 나섰던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남쪽에서 정권이 교체되면서 모습이 사라졌다.

`혁명화 교육’ 등을 받은 뒤 복귀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으나, 작년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남쪽 정세에 대한 판단실책의 책임을 지고 현직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