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선언 1년] 남북관계의 현주소

10.4선언이 채택되던 2007년 10월4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관계에 일종의 ‘못질’을 해두려는 측면에서 의기투합했다는게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임기 종료를 5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노 전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 여부에 관계없이 합의대로 이행만 하면 남북관계의 흐름이 이어질 수 있는 ‘물길’을 만들어 두고 싶었고 김 위원장은 남한 대선이라는 변수를 앞두고 일종의 ‘담보장치’를 만들어 둘 필요를 느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 후 1년간 남북관계는 전문가들이 분석한 두 지도자의 속내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2월말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연계한 비핵.개방 3000을 공식화하고 6.15선언에 담긴 ‘우리 민족끼리’ 정신 대신 국제공조를 통한 대북접근법을 표방하자 북한은 3월 말 반발감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정부는 3월 대북 대화 제의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북측이 개성 남북경협사무소 당국자 추방, 서해상에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남측 당국자의 방북 불허, 이 대통령을 ‘역도’로까지 칭한 노동신문 논평 등으로 쉴새없이 대남 공세에 나서면서 대화제의의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은 북핵 협상과 맞물린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진전에 열을 올리면서 남측과는 ‘무대화’ 기조를 유지했다. 우리 정부가 주겠다는 옥수수 5만t도 거절했다.

국민들은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나마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지만 그마저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총격 피살사건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이 사건과 남북관계를 분리한다는 입장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북이 사건 해결을 위한 우리의 현지 조사 요구에 응할 때까지 각종 대북 물자 제공과 인도적 지원을 잠정 보류하기로 하고 민간단체의 대규모 방북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북한도 남측의 요구를 수용하기는커녕 8월 금강산 지역에 체류하던 남측 인원을 최소 인원만 남긴 채 철수토록 하는 등의 ‘맞불작전’으로 대응하면서 남북관계는 회복의 실마리를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북한의 정권 수립 60주년 기념일(9월9일)을 즈음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불거지면서 남북관계는 더욱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정부는 남북관계의 상황 관리 등 차원에서 북한이 극력 반발하는 비핵.개방.3000 대신 상생.공영을 대북정책의 공식 슬로건으로 내세웠지만 아직은 대내용 구호 이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 민간의 대규모 방북을 허용하고 인도적 대북지원 의지를 천명하는 등 대화재개의 분위기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1년 전 남북의 최고지도자는 10.4 선언에 서명하면서 남북관계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으로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한 해 동안 생긴 변화는 10년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 속에 다져온 남북관계의 기반이 생각보다 허약하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는 게 중평이다.

현재의 남북관계를 두고 정부는 ‘과도기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호혜적이며, 갑을 관계가 분명한 남북관계를 만들기 위한 산고의 시기인 만큼 기존에 내세운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북한이 우리의 대화요구에 호응하길 기다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류인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인식 이상으로 현재 남북관계를 심각하게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우선 북한은 단순한 ‘기싸움’ 차원에서 남측과 거리를 두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새 대북정책이 비핵화와 개방이라는 큰 변화를 전제로 깔고 있다는 경계심에 바탕해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간단히 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것이다.

실제 북한이 남측의 6.15, 10.4선언 이행 약속에 집착하는 것도 두 선언이 북한 체제의 정치.경제적 안전판이란 인식에 따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런 만큼 무작정 시간이 흐르면 북한이 우리가 내민 손을 잡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대신 북한이 상생.공영에 대한 우리의 진정성을 믿고 대화에 나설 수 있게끔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