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 특집⑤] 김정일, ‘혁명적 수령관’으로 黨을 정치적 도구화

최근 김정일 이후 북한 내 권력 구도 변화에 관심이 증대되며 조선노동당(노동당)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한 궁금증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에 따르면 노동당은 모든 국가기관과 사회단체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로서 내각이나 군부보다 우위에 위치해 있다. 여타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정치체제에서도 노동당은 권력의 원천이요, 모든 국가기관과 사회단체의 지도적 핵심인 것이다.

김일성은 해방 후 북한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르기 위해 가장 먼저 정적들을 제거하는 것과 함께 당권 장악에 나섰다. 김정일도 당을 장악하며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다졌고, 이를 통해 결국 북한 최고지도자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김정일의 일인지배체제 확립 과정과 동시에 노동당의 성격도 변화해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노동당은 북한 체제 전반을 이끌어가는 엘리트들의 결합체로 북한 체제의 머리라고 볼 수 있다”며 “김정일도 당을 장악하면 다른 모든 부분을 장악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후계자 지명 이전부터 당권 장악을 위해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정일은 1973년 조직비서에 임명되며 당·정·군 고위 엘리트들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하게 됐고, 이것이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되는데 가장 주요한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김정일이 노동당을 장악하며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과정을 크게 3단계로 나눴다. 기반조성단계(1964년~1974년 초)와 기반 확대단계(1974년~1980년)를 거쳐 당권행사단계(1980년~1990년)까지를 거치며 노동당을 장악했다는 것.

◆ 조직지도부 활동 시작…정치적으로 ‘주목’=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1964년 조선노동당에 발을 들여놓는다. 조직지도부에 배속 받은 김정일은 이 시기에 정치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다.

김정일은 당 비서국 조직지도부 중앙지도과 중앙기관담당 책임지도원으로 유일사상체계확립에 반대하던 당내 ‘갑산파’ 숙청을 주도하게 된다. 또한 이후에도 유일사상체계확립을 명분으로 후속 숙청작업을 주도하고, 권력의 핵심에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후 김정일은 선전선동부 문화예술지도과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사상사업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진급한 다음에는 1956년 이래 형성되기 시작한 수령제를 확립하기 시작했다. 유일사상체계확립을 김일성 개인숭배와 연관시키며, 수령이 당을 대체하는 작업을 추진한 것이다.

1960년대 후반에는 유일사상을 바탕으로 유일지도체계확립을 추진했고, 유일지도체계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 ‘혁명적 수령관’을 제시했다. ‘혁명적 수령관’은 당을 사실상 수령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키는 계기가 됐고, 이를 통해 후계자 문제도 자연스럽게 대두됐다.

이 시기 혁명 1세대가 주도하고 있는 정치국보다는 비서국에 당내 일상업무가 집중되며, 비서국을 통한 김정일의 당권장악이 본격화된다.

▲ 1970년대의 김정일

◆ 김정일 후계자 지명…유일적지도체제 수립=김정일은 이후 1973년 9월 당 중앙위원회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당 비서로 선출되며 권력의 핵심에 진입하게 된다. 김정일은 31세의 나이로 조직 및 사상담당 비서로 선출되며, 당권 장악을 위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게 된 것이다.

김정일은 이후 1974년 2월 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으로 선출되며 명실상부한 후계자의 위치를 확보했다. 특히 김정일은 후계자로 지명된 후 당권 장악을 위해 당의 조직과 사상부분의 장악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를 위해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의 기능을 강화함에 동시에 이 양대 조직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도록 했다.

또한 김정일은 유일적 지도체제의 확립을 통해 후계체제의 당위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김정일 후계자 지명 직후 유일적 지도체제를 내세운 것은 김일성의 권위를 바탕으로 자신의 지도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유일적 지도체제확립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를 강화시켰다. 김정일은 우선 조직개편을 단행해 중앙당으로부터 지방조직으로 내려가는 모든 지시와 문서가 김정일의 승인 하에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당 조직을 위에서 아래까지 철저히 장악하려고 했다.

김정일은 이외에도 후계자 지명 이후 권력기반을 확대시키는 중요한 수단으로 대중동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우선 지금까지 김일성이 지도하던 3대혁명소조운동을 자신이 직접 지도하기 시작,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 김정일의 당권 장악 과정에 있어서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가 첨병역할을 하며, 이들 부서의 권한이 자연스럽게 증대됐다. 특히 조직지도부의 경우 조직개편을 통해 간부사업, 검열사업 등을 총괄 지도하게 되는 등 조직의 확대와 함께 당의 핵심부서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또한 김정일은 1970년대 중반부터 당 내 유일적 지도체제확립을 발판으로 권력기반을 확대하기 시작해 군과 정무원, 그리고 대남사업분야까지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정일에게는 후계체제 확립의 최대 걸림돌이 존재했으니, 바로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 일파였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1974년 6월 평양시당 전원회의에서 김성애와 측근들이 대거 몰락하게 된다. 이후 김성애와 그 형제, 자식은 ‘곁가지’라 하여 철저히 견제됐고,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져 갔다.

▲ 김일성과 함께 있는 김정일

◆ 김일성-김정일 시대…실질적인 당권 행사=김정일은 1980년 10월 제6차 당 대회에서는 공개적으로 2인자 자리에 오르게 되고, 후계자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김정일은 이미 1970년대 말 당내 인사권을 폭넓게 행사했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 실질적으로 당권을 행사하는 단계에 이른다.

김정일은 1970년대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를 통해 광범위하게 당권을 장악했지만, 공개적으로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6차 당대회를 계기로 전면에 나서게 시작하는데, 6차 당대회는 앞으로의 중요 과업을 대를 이어 혁명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김정일 후계구도가 확고한 당의 진로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한 김정일 후계체제 확립을 위한 조치로 정치국 상임위원회가 부활했다. 상무위원회와 비서국 군사위원회에 모두 선출된 사람은 김일성을 제외하고는 김정일뿐으로 단순한 후계자의 위치를 넘어서 실질적 통치자로서의 김정일의 위상이 공식화됐다. 이와 함께 이 시기에는 김정일 시대를 열어갈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당 지도부에 포진했다.

또한 이 때부터 김정일에 대한 위상 강화가 김일성 수준으로 이루어졌다. 1982년 김정일의 생일이 공식 공휴일로 지정됐으며, 김정일을 찬양하는 출판물도 간행되기 시작했다. 1986년에는 김일성의 생일과 마찬가지로 이틀을 공휴일로 했다. 1984년부터는 김정일의 백두산 밀영 출생설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 들어서 김정일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광범위해졌다. 외국의 국가원수를 접견하거나 김일성만이 했던 현지실무 지도를 수행하는 등 활동의 수준도 김일성과 버금가게 격상됐다.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며 북한 정치 정치체제는 김일성-김정일 공동 통치시대를 거쳐 김일성이 ‘반은퇴’하는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 1990년대의 김정일

◆ 김일성 사망…노동당 총비서 추대=1980년대 이미 당을 통해 실질적으로 북한체제를 움직여왔던 김정일은 1990년대 들어서 공식적인 2인자 지위를 확보해 나갔다.

김정일은 1990년 5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 1부위원장으로 선출된데 이어 1991년 12월 24일 당 중앙위원회 제6기 19차 전원회의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며 김일성 유고를 대비한 군권 장악을 확립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한 후에는 김일성에 대한 주민들의 애도와 이에 대한 자신의 배려를 이유로 공식적인 승계를 지연시키며 ‘유훈통치’를 하게 된다.

‘유훈통치’ 기간 중에는 우상화 작업과 김일성의 카리스마 전이 등을 통해 김일성이 누렸던 권위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수령중심제 정치체제인 북한에서 당 총비서나 국가주석에 취임하는 것보다 수령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한 지 3년 3개월 후인 1997년 10월 8일 조선노동당 총비서직에 취임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이를 통해 북한에서 ‘김정일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이미 1980년대부터 당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던 김정일에게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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