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전대통령 서거] 10·4선언 어떻게될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서거함에 따라 2007년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간 정상회담의 합의문인 ‘10.4선언’의 미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10.4선언이 작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간 입장차 속에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터라 노 전 대통령 서거가 이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남북 민.관의 대응 여하에 따라 상징성만 남은 정치적 문서로 전락할 수도 있고 의외의 생명력을 얻게 될 수도 있다고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산고끝에 태어난 10.4선언 =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부침이 끊이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 시절 10.4 선언은 산고 끝에 태어난 ‘옥동자’ 대접을 받았지만 정권교체 후에는 뒷전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이던 2003년 1월 일본 아사히 신문 인터뷰에서 “조건이 맞으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국 정상회담은 임기종료를 불과 4개월여 앞둔 시점에 야 성사됐다. 결과적으로 너무 늦게 열린 정상회담은 10.4선언의 태생적 한계로 작용했다.

‘햇볕정책’을 추진한 직전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큰 틀에서 계승한 노 전 대통령은 화해.협력의 흐름은 이어가되, 남북관계를 보다 제도화된 틀에서 추진하려 했지만 북의 반발로 인해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취임 초기 남북간 불투명한 ‘거래’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취지로 허락한 2003년 대북송금 특검 수사가 성과도 있었지만 이로 인해 남북관계는 상당기간 서먹해졌기 때문이다.

또 남북관계와 북핵 프로세스를 병행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었지만 2006년 북한 핵실험 이전까지 압박 위주의 대북정책을 추진했던 미국과 이에 반발한 북한이 각을 세우는 가운데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은 불가피했다.

2006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쌀.비료 지원을 끊었던 것이 그 대표적 사례였다.

결국 정상회담은 제2차 북핵위기가 2007년 6자회담 ‘2.13합의’로 봉합되고 이른바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로 불린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자금 동결 사건이 그해 6월 종결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애초 8월28~30일로 잡혔던 회담은 북한의 수재로 인해 연기돼 차기 대통령 선거를 2개월여 앞둔 10월2~4일에야 열릴 수 있었다.

비록 차기 정권에서 이행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았지만 10.4선언은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 조성, 남포.안변의 조선협력단지 조성, 철도.도로 개보수, 개성공단 2단계 개발, 백두산 관광 등 남북교류협력의 대대적 확대 방안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관련국 정상회담 추진 등을 내용으로 담아 전세계의 축복 속에 탄생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10.4선언은 이행은커녕 남북간 갈등의 소재로 전락했다.

북한은 작년 3월26일 통일부 업부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6.15, 10.4선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강조한 이후부터 ‘6.15, 10.4선언을 이행하지 않는 한 대화는 없다’는 기조를 이어갔고, 정부도 10.4 선언을 다른 남북간 합의와 마찬가지로 존중하며 이행 방안을 협의할 의사가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지만 북한이 요구하는 ‘무조건적 이행’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상태다.

◇10.4선언 어떻게 될까 = 서명의 한 당사자가 사망했다고 해서 10.4선언 자체가 무효화되거나 의미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데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는 상태다.

더욱이 남북관계가 현 정부 출범 이후 전반적으로 악화됨에 따라 10.4선언이 전혀 이행되지 않는 상황이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10.4선언 이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예상은 적다.

다만 일각에서는 10.4선언을 도출한 참여정부 세력의 구심점인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함에 따라 10.4선언의 의미를 되새기고, 기념하는 일련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럴 경우 현실적으로 이미 정치적 의미만 남은 10.4선언이 사문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10.4선언 이행에 대한 현 정부의 정치적 부담이 덜어지게 됐다는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제기된다.

한 대북 전문가는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계승’보다는 ‘극복’을 선언하고 집권한 현 정부로서는 노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10.4선언 이행과 관련해 정치적 부담을 적지 않게 느껴왔을 것”이라며 “이제 현 정부 입장에서 10.4선언 이행에 대한 정치적 부담은 줄어들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도 큰 틀에서 10.4 선언의 미래와 무관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조문 사절단 파견 등으로 순수한 애도의 뜻을 표하느냐,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 대남 비난 공세에 활용하려 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 전반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현재 남북관계 상황에 비춰 가능성은 낮지만 북한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사망때 조문단을 보낸 것에서 보듯 남북관계에 기여한 기여한 인물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차원에서 조문사절단을 보내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반대로 남북관계와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싼 남한 사정을 한데 엮어 대남 공세를 해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가뜩이나 꽉막힌 남북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고 이럴 경우 10.4 선언의 이행 가능성은 더 아득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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