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전대통령 서거] 남북관계에 남긴 유산

집권시절 ‘평화.번영’의 대북정책을 내세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그것을 넘어선 동북아의 새 안보질서 창출이라는 목표 속에 풀어 나가길 원했다.

이 같은 노 전 대통령의 의지는 임기종료를 불과 4개월여 남긴 시점에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관련 당사국간 정상회담 추진 방안을 정상회담 합의문에 포함시키고 이의 성사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정권교체 후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지난 4월 5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6자회담 틀이 와해 위기에 놓임에 따라 노무현 정부 5년의 ‘공든 탑’ 역시 사실상 무너지는 듯한 형국이다.

그러나 여러 질곡에도 불구, 남북관계의 끈을 이어가면서 한반도 문제 논의의 틀에서 나름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애썼던 대목은 평가받을 만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남북관계, 햇볕의 계승.발전 추진..북핵 ‘걸림돌’ = 노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전임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했다. 또 2003~2006년 정동영.이종석 장관 시절 외교안보 의사결정 과정에서 통일부에 힘을 실어준데서 보듯 대체로 남북관계를 대외정책의 중심에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막혀있던 남북관계를 뚫었던 전임 DJ정부가 대북송금과 같은 ‘물밑거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집권초기 남북간 ‘탐색전’ 및 ‘기싸움’ 국면을 길게 만들었다.

임기 첫해인 2003년 남북관계의 ‘제도화’를 명목으로 노 전 대통령이 승인한 대북송금 특검수사가 결국 북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던 것이다.

이후 2004년 7월 베트남에서 탈북자 468명을 받아들인 것도 결과적으로 북한의 대남 접근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취임 직전부터 본격화된 제2차 북핵 위기와 그로 인한 북.미 간의 심각한 갈등 구조는 남북관계를 그 자체의 논리로만 풀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를 병행 발전시킴으로써 두 트랙이 ‘선순환 구조’를 형성토록 한다는 기조를 세웠다.

그 목표 아래 6자회담에서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고 2006년 미사일 발사 후 쌀.비료 지원을 중단할때까지 정부 차원의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는 등 남북관계를 지렛대 삼아 북한의 핵도발을 막으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특히 2005년 6자회담의 첫 열매인 9.19공동성명 채택에 앞서 북한에 정동영 당시 통일장관을 특사로 파견,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6자회담 복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이끌어 낸 것은 우리 정부의 역할을 돋보이게 한 대표적 사례였다.

그러나 북한은 2006년 7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뒤 우리 정부가 쌀.비료 제공 보류라는 강수를 뒀음에도 불구,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남북관계를 북핵해결의 지렛대로 만들려던 참여정부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김대중 정부때부터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제기된 ‘퍼주기’ 논란에서 노무현 정부 역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임기말에야 북핵진전 속 남북관계 기회 = 결국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초기단계 비핵화 로드맵을 담은 6자회담 2.13합의가 도출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제2차 정상회담을 통한 남북관계 도약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었다.

그러나 2.13 합의를 계기로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 해제를 결정했음에도 마카오의 중국계 은행에 동결됐던 북한 자금의 송금 문제가 지연되고 그에 따라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지연시키면서 남북정상회담은 임기 종료를 4개월여 남긴 시점에야 열릴 수 있었다.

정상회담의 합의문인 10.4선언은 다방면에 걸친 교류.협력 방안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구상들을 대거 담았지만 내용이 너무 방대해 결국 실질적 이행은 다음 정부로 넘어갈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돌이키기 어려운 ‘반석’ 위에 올려 놓는다는 생각으로 10.4선언에 서명했지만 2개월여 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된 뒤 남북관계가 갈등국면으로 접어들면서 10.4선언의 이행은 안개속에 빠진 형국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 2003~2007년 매년 남북 장관급회담이 개최된데서 보듯 참여정부 시절 남북관계가 계속된 부침 속에서도 대화의 흐름을 이어갔다는 점을 평가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또 지금은 폐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북핵 위기 속에서도 남북한 상생의 협력모델인 개성공단 사업을 뚝심있게 추진한 점을 평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6.15선언을 계승하되 남북관계를 제도화된 틀 위에 올려 놓으려 했지만 남북관계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속도를 내지 못했다”며 “2007년 10월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제도화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고자 했지만 정권 교체를 계기로 그 징검다리가 휩쓸려 간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다만 6자회담 틀 속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한 뒤 장기적으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체제를 만들자는 이른바 ‘그랜드 디자인’ 아래 외교.통일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는 점은 평가받아야할 대목”이라고 말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