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상봉] 102세 최고령 할머니 北딸 상봉

“정말 우리 어머니가 맞습니까?”. “난리 통에 5자매 중 너만 혼자 두고 와서 정말 미안하구나”

제7차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 마지막 날인 15일 오전 대한적십자사 강원지사 화상 상봉장.

남측 상봉자 가족 중 최고령으로 네 딸과 함께 상봉장에 나온 한고분(102) 할머니는 팔순이 된 북측의 딸 이두녀(80) 씨를 56년 만에 화상으로나마 만나는 순간 기쁨과 회한이 교차하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미군의 집중 폭격을 피해 둘째 딸만 북녁에 남겨 둔 채 네 딸을 이끌고 고향인 함북 흥남을 떠났다 반세기 만에 두고 온 딸과 재회했기 때문이다.

당시 24살이던 두녀 씨는 한 겨울 피난길을 떠나는 가족들이 입을 옷가지라도 챙기기 위해 이웃 마을을 다녀온 하루 사이 가족과 헤어진 것이 그만 56년의 생이별이 되고 말았다.

이날 이른 아침 119 소방대의 도움으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화상상봉장을 나온 한 할머니였지만 둘째 딸을 홀로 북한에 두고 온 그 때의 기억이 마음에 걸린 때문인지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두녀 씨는 “옷가지를 챙겨 다시 집으로 가보니 폭격을 맞아 집터 조차 사라지고 먼지만 자욱했다”며 “그 순간 모두 죽고 나 혼자만 살아 남은 줄 알고 얼마나 울었던지…수많은 밤을 가족들 생각에 뜬 눈으로 지샜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과 울먹임도 잠시뿐. 어머니와 함께 나온 남측의 큰 언니 증녀(82) 씨는 헤어질 당시 약혼식만 한 채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동생 두녀 씨의 안부가 우선 궁금했다.

그러자 두녀 씨는 “어머니께 이제 결혼 소식을 알려드려 송구하다”며 “어머니를 닮았는 지 슬하에 딸만 다섯을 낳고 겨우 아들 하나를 봤다”며 외손자인 김유철(50) 씨를 모친에게 자랑스레 소개하자 상봉장은 이내 환한 웃음 바다로 변했다.

그렇게 시작된 6모녀의 가족이야기는 반세기 동안 생사도 모른 채 지내온 이산 가족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할 만큼 정겹고 다정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 실감케 했다.

하지만 100세를 넘긴 한 할머니는 50여년 만에 들어보는 둘째 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듯 자꾸 막내 딸 후남(64) 씨의 귀엣말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큰 딸 증녀 씨는 “어머니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직접 바느질을 할 정도로 정정하셨는데 최근 갑자기 쇠약해 지셨다. 그러니 너도 건강 잃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두녀 씨도 “우리 집안은 원래 장수하는 집안이니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어서 통일이 돼 6모녀가 다시 만나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자”고 화답했다.

이윽고 기약된 화상상봉 시간이 끝나자 이들은 다시 만날 그 날을 약속하며 아쉬움을 남긴 채 화상상봉장을 빠져 나갔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