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상봉] 반세기의 ‘한’ 한바탕 웃음으로

“작년 8월 25일 97세로 세상을 뜨신 아버님께서는 가시는 순간까지 오빠를 생각하고 눈물 지으셨어요”

북쪽 큰오빠인 충재(75)씨에게 아버지 이우경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남쪽 여동생 영순(59)씨는 “부모님께 오빠는 그리움이고 커다란 한이고 슬픔이며 눈물이고 한숨이셨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영순씨는 대한적십자사 본사에서 진행된 화상상봉을 앞두고 ’충재 오라버니께 올립니다’는 글을 미리 작성해 왔으나 눈물이 쏟아져 차마 다 읽지 못했다.

철원에 살던 영순씨 오누이가 헤어진 때는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으로 불리는 철원전투가 심해지며 남측이 현지 주민을 모두 대피시킨 1952년.

전투가 심해지면서 가족들이 모두 서울로 왔으나 할아버지 댁에 가 있던 충재씨만 가족과 떨어져 북녘땅에 남게 된 것이다.

영순씨는 “57년만에 처음으로 오라버니라고 부를 수 있고, 실제 만나뵐 수 있다는 이런 기적이 다 있나 싶고 꿈만 같다”며 연방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으나, 상봉장은 북쪽 오빠의 쾌활함으로 금세 웃음바다가 됐다.

북쪽 가족들의 이름을 족보에 올려야겠다는 남쪽 가족의 말에 충재씨는 “족보는 한문으로 돼 있어 난 못 봐”라고 말한 뒤 자신이 북쪽에서 낳은 맏아들 진영(50)씨에게 한자로 적힌 아들.손자 이름을 보여주다 말고 무안한 듯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충째씨는 또 “아들 넷이고 딸 둘인데, 손자는 11명이나 돼”라며 상봉장이 울릴 만큼 큰 소리로 웃으며 흐뭇해했다.

전쟁 직전 집 인근에 있던 ’재판소’ 얘기가 나오자 충재씨는 “아버지는 의사가 되라고 했지만 나는 크면 변호사가 되겠다고 했지…”라고 어릴 적 꿈을 소개하기도 했다.

충재씨가 사망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추석 등 명절 때마다 차례를 지내왔다는 남측 가족들과 충재씨가 만난 상봉장에서는 2시간 남짓한 시간 내내 가족.친지들 소식이 오가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