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상봉] “내가 어머니를 어떻게 알아보겠어요”

남녘의 박찬옥(82)씨가 1948년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올 당시 남포시 처가에 맡겨놨던 3살배기 첫딸 김정순(62)씨는 어느덧 환갑을 넘어섰다.

대한적십자사 본사에 마련된 화상상봉장에서 딸 정순씨의 모습을 본 박씨는 충격이 너무 컸던지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떨리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화면을 바라보기만 했다.

정순씨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상봉장에 나왔지만 햇볕에 그을린 검은 피부에 환갑을 갓 넘겼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나이가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박씨의 북녘 여동생 태옥(76)씨와 영옥(73)씨는 “3살짜리 정순이가 창가에 매달려 언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라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 연방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정순씨는 박씨가 19살 때 낳은 첫딸로, 친정 어머니가 몸이 약한 박씨를 보다 못해 ’몸을 추스를 때까지 키워주겠다’며 정순씨를 데려간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박씨는 군법무관인 남편이 월남하자 처가에 “곧 정순이를 데리러 오겠다”고 말한 후 갓 낳은 둘쨋딸을 업고 38선을 넘었지만 6.25전쟁이 터지면서 끝내 북녘을 다시 찾지 못했다.

박씨는 정순씨를 키워준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사 확인도 신청했으나 돌아가신 것으로 확인됐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평남 안주시에 산다는 정순씨는 축구 지도교원을 하던 남편과 사이에 2남1녀를 뒀다.

큰 아들과 둘째 딸이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평안북도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고 자랑하던 정순씨는 막내아들이 6살 때 백혈구 감소증을 앓다 죽을 뻔 했다는 말을 할 때는 눈물을 끌썽이기도 했다.

서먹서먹한 자리가 잠시 이어졌으나 정순씨의 남녘 여동생 정혜(54)씨가 “언니는 아버지랑 똑같이 생겼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북녘의 이모들인 태옥.영옥씨는 “마을 사람들은 엄마랑 똑같다고 해”라고 받아치는 등 이산의 아픔을 잊고 화목한 분위기가 연출됐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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